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Romance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_ 무드 인디고, 미셸 공드리 감독

그냥_ 2019. 12. 7. 06:30
728x90

 

 

# 0.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 상징과 직설적 은유가 쏟아집니다만 감흥은 없습니다. 영화와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합니다. 스타일만 널브러져 있는 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나름의 정서가 있긴 합니다만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법이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메시지만큼 공허한 것도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리드할 선명한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나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

『무드 인디고 :: Mood Indigo』입니다.

 

 

 

 

 

# 1.

 

미친 것 같습니다.

 

미친 듯이 피곤합니다. 피아노를 치며 칵테일을 만드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영화 시작 5분여 정도만 오호라? 하고 솔깃한 뿐입니다. 이후부터는 넘쳐나는 과잉에 체력이 쭉쭉 빨려나가는 느낌을 받게 되죠. 많아도 너무 많고, 과해도 너무 과합니다. 이놈의 빌어먹을 오브제들이 열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습니다.

 

늘어선 타자기, 욕조 뚫는 드릴, 사람 모양의 생쥐, 움직이는 요리와 요리하는 변호사, 대화하는 티브이, 국화잎을 담근 진과 리튬 탄산수로 만든 크림을 끼얹은 장어, 수도꼭지에서 나타나는 뱀장어, 창밖의 서점을 찾는 망원경, 거미처럼 기어 다니는 자명종, 빙글빙글 돌아가는 악수하는 손목, 연주에 맞춰 칵테일을 만드는 피아노, 물결처럼 구불구불한 테이블, 스케이트 타는 식탁, 커피 그라인딩 하는 축음기, 메모가 쓰여진 큐브...

 

고작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등장하는 오브제들입니다. 이 같은 밀도로 95분 동안 과잉된 이미지가 쏟아지다 못해 스크린을 넘어 바닥에 줄줄줄 흐릅니다. 화면은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회전하고 흔들리기까지 하죠. 대상과의 거리나 화면의 질감 따위의 양식에 테마나 목적의식은 희미합니다. 미장센에 대한 감상 이전에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까부는 ADHD 걸린 꼬마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먼저 느끼게 된달까요.

 

 

 

 

 

 

# 2.

 

애니메이션의 방식입니다.

특히 주목을 확 끌어당겨야 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방식 말이죠.

 

<인어공주>에서 아리엘의 주변을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해산물이나, <미녀와 야수> 속 벨 옆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촛대와 주전자 같은 애들을 다루는 방식 말입니다. 이 정신 사나운 방법으로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사랑스러운 코미디가 아닌 육중한 비극적 로맨스를,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를 만들어 뒀습니다. 스타일과 장르의 완벽에 가까운 미스매치죠. 피곤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연출을 실사 영화에 적용할 수는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의 재해석은 해줬어야 합니다. 영화는 그냥 지르고 싶은 스타일들을 모아다가 냅다 때려 박은 느낌입니다. 이러지 말고 아싸리 이 콘티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그러셨어요.

 

 

 

 

 

 

# 3.

 

로맨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감정이입을 위한 스토리텔링입니다만,

스타일에 영상이 잠식되는 바람에 철저히 실패합니다.

 

인물들은 정서와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곁다리 설정을 대사로 풀어놓기 바쁩니다. 사랑스러움을 내가 느끼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정확히는 사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관람하는 것에 가까워져 버리고 말았죠. 정서를 차근차근 쌓은 후 관객과 합의를 하고 나서 그걸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양새입니다.

 

⑴ 연인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⑵ 사랑한다고 말한다. ⑶ 뽀뽀를 한다. ⑷ 행복함이 표정에 드러난다. ⑸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오른다. 가 아니라 연인이 냅다 하늘을 날아서 눈앞으로 지나가 버리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표현됩니다. 이런 식의 표현을 마구잡이로 눈 앞에 집어던지며 투정을 부립니다. 왜 이러는지 알지? 느낌 알잖아?! 나도 아니까 너도 알 거 아냐. 모르겠다고? 그건 니가 이상한 거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 4.

 

물론 파편적으로 찢어가면서 보면 의도를 알 수 있기는 합니다. 문학적으로 저런 상황을 묘사한 거겠구나 하고 되짚어 추론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죠. 데이트 순간의 설레임을 투영한 구름이나,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에 찍히는 사진이나, 먼저 뛰쳐나가는 신발에 담긴 기대감이나, 울리고 쪼개지는 시계로 표현된 긴장감과 조급함이나, 날아갈 듯 발길이 가벼운 순간 진짜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도 유추가 도저히 안 되는 요소들 역시 너무나도 많거나와, 애초에 퀴즈 풀듯이 그런 잡생각들을 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수는 없죠.

 

모르긴 몰라도 감독은 작품을 보고 환상적이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은 이미 감정이입이 되어 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휘황찬란한 미장센들을 봤을 테니 얼마나 황홀했겠어요. 하지만 관객은 그러지 못했다는 게 문제죠.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작품을 혼자 끌어안고 사랑에 빠진 화가의 그림같은 영화랄까요. '팀 버튼'과 같은 괴짜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나르시시스트의 영화랄까요.

 

 

 

 

 

 

# 5.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기계적으로 영화에 이식하다 보니 특유의 조잡함이 불쾌한 골짜기를 미친 듯이 건드린다는 것도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입니다. 신비로움 이전에 괴기함이 덜컥 덜컥 걸린다는 거죠. 골짜기를 완화하기 위한 친절함이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관객을 더욱 불쾌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런타임이 절반쯤 왔을 때부터 이미 인내심이나 체력이 바닥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보고는 있지만 이후 어떤 식으로 영화가 흘러가든지 딱히 관심이 없어졌달까요. 세상에. 스토리가 증발된 영화라니요. 사랑스럽지 않은 로맨스라니요. 감흥이 없는 미장센이라니요. 여긴 지옥인 걸까요? 중반 이후부터 화면이 색을 점점 잃어가며 비극으로 치닫는데요. 앞서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과잉된 표현이 범람하지만, 전 이 시점을 전후로 작품과의 교감을 완전히 포기했기에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 또한 없다고 해야겠군요.

 

음... 그냥. <이터널 선샤인> 보시구요. 만약 <이터널 선샤인>을 이미 보셨고 그래서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를 찾으시는 거라면 그냥 다른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적어도 이 영화만큼은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 <무드 인디고>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