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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_ 코렐라인, 헨리 셀릭 감독

그냥_ 2018. 12. 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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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한국의 배급사들은 애니메이션 뒤에 부제를 안 달면 죽는 병이 걸린 게 아닐까요? 롤링이 버릇 다 버려놨습니다. 뭔가 해리포터스러운 발랄한 폰트, 어드벤처를 강조하는 부제, 가족영화라도 되는 듯한 발랄한 색감의 국내판 포스터에 낚여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단추와 바느질의 가위눌림에 밀어 넣으셨죠.

 

영화는 '코렐라인'이라는 아이가 엄빠 따라 이사 갔다 환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넘어 눈이 매력적인 마녀에 홀리나 싶더니 결국 역관광에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하죠. 크게 보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판의 미로>나 최근의 <속에 숨은 마법시계> 등과 같은 아동용 어드벤처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영화입니다. 환상의 나라를 돌아다녀봤자 재밌는 건 잠깐이고 결국 집 떠나면 개고생이니 엄마 아빠 말 잘 들어! 라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교훈극. 애들 영화가 다 그렇죠 뭐.

 

 

 

 

 

 

 

 

'헨리 셀릭' 감독,

『코렐라인 :: Coraline』입니다.

 

 

 

 

 

# 1.

 

하지만 짜잔! 이 영화를 이렇게 생각하고 보시면 큰코다치실 수 있습니다. 영화는 무섭지만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서글프며 환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소름 끼친 애니메이션 호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상상과 언젠가 반드시 아이였을 어른들의 상상의 맹점을 파고들어 깔끔한 박음질에 성공한 예리한 바늘과 같은 영화죠.

 

스톱모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화려한 영상과 감각적인 색감, 수려한 음악이 100분의 런타임을 순식간에 10분처럼 만들어줍니다. 말인 즉 크리스마스가 90분이나 줄었단 뜻이죠. 나이스! 영화의 매력은 대부분 표현과 은유에 몰빵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고려한 영화답게 서사는 평이합니다. 해서 오늘은 영화 내적인 얘기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영화를 보셨다고 가정하고 영화를 보며 맘에 걸렸던 지점들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좀 부려볼까 합니다. 왜요? 뭐요? 크리스마스에 솔로가 억지 부리는 거 처음 보세요?

 

 

 

 

 

 

# 2.

 

우선 왜 하필 환상의 공간을 현실과 같은 곳으로 만들었을까? 라는 점입니다. 사실 비밀의 문을 통해 넘어간 세상은 훨씬 다채롭고 환상적인 공간이어도 되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비슷한 류의 어드벤처 영화의 경우 대부분 환상의 공간은 정말 환상적인 판타지로 그립니다. 말하는 사자와 검은 보자기 쓴 귀신, 과자로 만든 집이나 하늘을 나는 용 같은 거 말이죠. 하다 못해 아빠 엄마와 꼭 가고 싶었던 테마파크라던지 멀리 떨어져 버린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예전 동네 정도는 그리는 게 보통이죠.

 

하지만 코렐라인의 환상은 고작해야 조금 더 잘 놀아주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맛있는 식사가 전부입니다. 코렐라인이 상당히 활발하고 당찬 아이란 걸 생각하면 더욱 어색합니다. 어쩌면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중간에서 장난을 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관객과 코렐라인 모두에게 어느 순간 지금 있는 곳이 환상인지 현실인지를 혼동하게끔 하기 위한 장치였다면 어떨까요. 굳이 대문짝만 하게 그것도 수차례 반복적으로 Pink Palace apartments라는 이름을 보여주는 건, 공간을 한정 지어 배경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기 위함이었진 않았을까요?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다시 보며 매 순간 지금 있는 곳이 환상인지 현실인지를 되짚어보면 색다른 맛이 납니다.

 

 

 

 

 

 

# 3.

 

비밀의 문이 하나뿐일까? 란 의문도 흥미롭습니다. 코렐라인이 처음 비밀의 문을 열기 전에 코렐라인에겐 자신과 꼭 닮은 마녀의 인형이 전달되거든요. 누가 어느 경로로 어떻게 전달한 걸까요. 당장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우물이겠죠. 우물과 비밀의 문은 상당히 많은 지점에서 유사하면서 동시에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둘 모두 통로로 인지되며 방향성이 존재하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폐쇄되어 있으며 그 넘어의 공간을 알 수 없고 묘한 불안함을 유발하죠. 반면 비밀의 문은 집 안에 있고 수평적인 데 반해 우물은 집 밖 멀리 있고 수직적이네요. 문을 통한 통로는 평지인 탓에 양방향적이지만 우물은 일방향적입니다.

 

우물은 간접적인 마녀의 영향력은 전달되되 직접적으로 건너올 수 없는 중간적인 길이네요. 진짜 인형은 이 우물을 통해 전달된 걸까요? 그렇다면 스스로 정원 밖을 나가 닫힌 우물을 열고 인형을 전해받아 와이비에게 전달한 건 누구였을까요. 영화 초반 우물 안에선 대낮에도 별이 보인다라는 말은 우물 넘어의 장소가 환상의 세계라는 복선으로 들립니다. 종반부 아이들의 눈을 찾아 나선 코렐라인의 머리 위로 단추에 달이 덮이는 월식이 일어나는 것과 열쇠를 버린 우물의 뚜껑이 마치 월식처럼 덮이는 게 묘하게 함께 읽히는데요.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결국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는 마녀의 손에 들어간 건가요?

 

 

 

 

 

 

# 4.

 

영화 초반 다우징 머신을 들고 수맥을 찾아 나서는 코렐라인은 자신이 마녀라면 벌써 우물을 찾았겠지? 라며 우물 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우물을 찾은 거죠. 우물을 찾은 사람은 마녀다라는 그녀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코렐라인은 마녀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오래전 누군가가 코렐라인과 같이 다우징 머신을 들고 정원 밖 우물터를 헤맸다면 불행히도 그 사람은 우물에 빠졌을 겁니다. 혹시 환상의 세상 속 마녀 역시 코렐라인처럼 어린 나이에 우연찮게 우물에 빠지며 환상의 세계에 갇혀버린 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마녀는 '딸'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환상에 갇혀버리던 순간의 자신과 같은 '또래'를 수집하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홀로 새하얀 세계에 갇혀버린 소녀가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건 아닐까. 그래서 마녀는 아이들을 잡아먹거나 죽이는 게 아니라 선물을 주며 눈을 가리고 곁에 두려고만 했던 걸까. 그녀는 어쩌면 외로웠던 게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마녀에게도 조금은 불쌍한 마음이 드는군요.

 

 

 

 

 

 

# 5.

 

와이비 할머니도 찝찝한 캐릭터입니다. 할머니에겐 마녀에게 붙잡혀 실종되어버린 여동생이 있었다고 하죠.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여동생이 잡혀가버린 집을 지키고 있었던 셈이네요. 왜죠? 동생을 잡아간 마녀가 두려웠다면 도망갔어야 합니다. 특히나 지키고픈 어린 손주까지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할머니는 일생을 동생을 잃은 아파트에서 보냅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 집을 지켰던 걸까요. 와이비를 그런 할머니의 목적을 위해 태어나(why born) 그 목적을 다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why be)으로 본다면 너무 나간 걸까요?

 

반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키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소극적이라구요. 어쩌면 할머니는 마녀의 시종인 건 아닐까요? 여동생의 생사나 손주의 안위 따위를 볼모로 잡혀서 말이죠. 그래서 와이비가 코렐라인에게 중요한 단서를 얘기해 주려 할 때마다 손주를 불러 방해한다고 생각하면 이 역시 제법 그럴싸합니다. 보기에 따라서 마녀의 음모를 가로막는 문지기에서부터 마녀의 하수인까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캐릭터군요.

 

검은 고양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자유롭게 포탈을 넘나드는 존재. 위기의 순간마다 코렐라인을 수차례에 걸쳐 구하는 조력자. 단순히 버디무비의 파트너일까요? 그렇다면 들고양이보단 오랫동안 코렐라인이 키우던 갈색 고양이였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설정일 겁니다. 그럼에도 굳이 고양이를 검은색으로 만들어 들고양이로 그렸다면 그건 고양이가 코렐라인을 구하는 존재보단 마녀를 방해하고픈 존재로 읽히길 바랬다고 봐야 하겠죠. 어쩌면 이 고양이는 와이비의 할머니는 모르는 마녀에게 희생당한 4번째 아이의 환생일 수도, 마녀가 마녀가 되기 전에부터 그녀를 보살피던 사람일 수도, 극단적으론 마녀를 우물에 밀어 넣어 마녀로 만든 존재일 수도 있겠네요.

 

 

 

 

 

 

# 6.

 

어떠신가요? 안 그래도 으스스한 영화가 조금 더 오싹해지셨나요? 부디 그러셨다면 좋겠습니다. 역시 크리스마스엔 로맨스 따위보단 호러죠. 커플 망해라. 전 이만 눈물 닦고 25시간 동안 비밀의 문 넘어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 줄 수면 보조제를 먹으러 가겠습니다. 26일에 만나요. 헨리 셀릭 감독, <코렐라인> 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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