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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파국이다 _ 이제 그만 이혼해, 클리어 듀발 감독

그냥_ 2019. 2. 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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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적당히 제한된 공간 보통은 누군가의 집이죠. 얼추 예닐곱 명 정도의 인물들을 한데 몰아넣고 옹기종이 주야장천 수다만 떨게 하다가 끝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적당한 몸값의 배우들 우르르 불러다가 반쯤 즉흥적인 대사를 서로 쏟아내는 걸로 런타임을 때우는 식의 이런 독립영화들을 멈블코어인지 덤블도어인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만, 뭐 역시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겠네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알아서들 꺼무위키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클리어 듀발' 감독,

『이제 그만 이혼해 :: The Intervention』입니다.

 

 

 

 

 

# 1.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로 기깔나는 미장센에 쏟아지는 대사와 낭자하는 피를 끼얹으면 <헤이트 풀 8>, 기발한 SF적 상상력을 동반한 심도 있는 종교철학과 벽난로를 끼얹으면 <맨 프롬 어스>, 센스 있는 언어유희와 벨소리를 곁들인 블랙코미디에 뜬금없이 인셉션을 소환하면 <완벽한 타인>이 됩니다만, 이런 영화들은 제아무리 변주해봐야 결국 가장 큰 목적은 관음입니다. 서로 투닥거리면서 싸우고 망가지고 어그러지는 걸 변태처럼 숨어서 관찰하는 묘미 그거 하나 믿고 보는 영화들이죠.

 

이 영화는 멈블코어류 관음물에 부부싸움을 끼얹은 소위 '치정극'입니다. 각자 친구 사이 혹은 자매 사이로 얽힌 네 쌍의 커플이 한 별장에 모여 파티를 하게 되는데요. '피터'와 '루비' 커플은 이혼하기 직전의 위태로운 부부고, 알코올 중독 환자 '애니'와 그의 남친 '맷'은 결혼을 4번이나 연기했죠. 감독이 열연한 '제시'와 <오뉴블>에서 니키로 열연 중인 '나타샤 리온'의 '사라'는 같이 살기를 두려워하는 레즈비언 커플에, 나머지 한 커플인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 '잭'과 양성애자 '롤라'는 삼촌 조카뻘도 넘을 법한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얘네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대법관질을 하며 일침을 날려대면서 간섭질을 한다는 게 영화 줄거리 전부죠. 쉽게 말해 영화판 <사랑과 전쟁>인 셈입니다. 재미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겠네요.

 

각 커플들 모두 나름의 위태로움을 가진 가운데 그 위태로움을 교정하려는 타인의 중재, 정확히는 오지랖이 불러일으키는 예상치 못한 전개를 즐기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도 중재라는 뜻의 The Intervention 이죠. 이걸 또 우리 수입사에선 <이제 그만 이혼해>라는 끔찍발랄한 제목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박수 세 번 짝짝짝.

 

 

 

 

 

 

# 2.

 

최근에 봐서였을까요. 보는 내내 <완벽한 타인>을 함께 생각나게 합니다.

 

여러모로 비슷하고 또 여러모로 다른 영화입니다. 한 집에 네 쌍의 커플이 모여있다는 것, 그 네 쌍의 커플이 동년배 절친이라는 것, 그리고 동떨어진 어린 여자가 한 명 끼여있다는 것까지 비슷하죠. 한 커플은 이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냉랭하고, 한 커플은 속앓이를 하지만 겉보기엔 무난해 보이며, 다른 한 커플은 동성애자 커플이면서, 어린 여자가 속한 커플은 한창 열렬히 불타는 중이란 점도 비슷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커플 관계 외의 치정이 숨어있다는 것도 비슷하고, 큼지막한 달덩이가 화면에 심심하면 등장한다는 것도 비슷하네요.

 

반면 <완벽한 타인>이 사적인 영역이 붕괴될 때 발생하는 불편함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사적 관계의 영역에 타의가 개입될 때의 불편함을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반대죠. 결말에 있어서도 <완벽한 타인>은 밑도 끝도 없는 파국으로 치닿는 반면 이 영화는 어찌어찌 전부 다 더 나은 결말로 귀결된다는 것도 대칭적입니다. 전자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반면, 후자는 시간대에 따른 햇빛으로 분위기 전환을 이룬다는 점도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점들 덕에 전자는 개개인이 분화된 코미디물로서 작동하게 되고 후자는 관계에 집중하는 심리 드라마로 작동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저예산 영화 안에서 쏟아지는 대사 사이사이 단타로 치고 빠지기에 코미디는 유리하지만 드라마란 장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인물 간의 관계라는 영화의 핵심에 있어 다소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묘사에 그치고 맙니다.

 

 

 

 

 

 

# 3.

 

평면적인 인물들과 단편적인 관계에 이리저리 꼬일 대로 꼬인 치정이 끼얹어지면

짜잔! 막장 드라마가 완성됩니다.

 

인물들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니 하나같이 멍청하고 한심하게만 보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유치하고 무신경한 오지랖을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에게 끼얹습니다. 상처도 받고 위로도 받고 개판 5분 전인 상태로 푸닥거리하지만, 마무리할 때쯤 되면 우당탕탕 정리가 막 되면서 또 해피엔딩 짜잔!! 이런 식이죠.

 

막장 드라마가 인기 좋은 이유는 좋은 이야기여서는 아닐 겁니다. 적당히 감정 동화를 하기도 쉽고 적당히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쉽고 적당히 인물들을 비난하기도 쉽고 끝나면 적당히 마음의 짐 없이 덜어내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 동안 일상의 피곤에 지친 몸을 한 시간여 동안 소파에 비벼댈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거죠. Killing Time에 최적화된 장르랄까요.

 

# 4.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쉽고 적당히 욕할 수 있고 적당히 불편하지 않고 적당히 공감도 되면서 또 적당히 재밌어요. 딱히 남는 건 없고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와 말도 안 되는 치정극을 막 벌이는 데 생각 없이 보노라면 시간은 또 은근히 잘 갑니다.

 

시간을 내서 보실만한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신 그런 거 있잖아요 왜. 밥 먹거나 인터넷 같은 거 하는 동안 그냥 적당히 켜 둘만한 거 찾을 때. 집에 소리가 없는 게 좀 찝찝할 때. 그럴 때 이거 틀어 놓으시고 쓱쓱 스쳐 지나다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낯익은 배우도 보이고 해서 앉은 김에 쭉 본다는 느낌으로 보시면 시간 잘 가고 괜찮으실 겁니다. 제가 말하고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클리어 듀발' 감독 『이제 그만 이혼해』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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