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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냥_ 2019. 2. 2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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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원해 시각과 청각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을 이상적인 형태로 총집합시켜놓은 듯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600km 상공에선 생명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투적인 문구와 함께 시작합니다. 사실 일련의 문구들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관객이 스크린을 가까이에 있는 평면으로 받아들이게끔 하기위해 동원된 문장에 불과하죠. 관객의 등을 의자에서 떼어 내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긴 감독은 연이어 600km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여줍니다.

 

눈 앞에 있던 평면에 어마어마한 깊이감이 생깁니다. 닫힌 문을 열었더니 그 앞으로 대양이 펼쳐져 보이는 듯한 기분이죠. 그와 동시에 미세하게 들려오던 사운드를 딱 죽이는데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사라지면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호흡을 참게 됩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의 영역이죠.

 

높은 집중력과 숨 막힐 듯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소리가 죽으며 모든 감각은 눈으로만 집중됩니다. 시각이 모든 감각을 지배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실에서 먹는 음식처럼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생생한 감각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딱 영화 도입 50초죠. 남은 89분은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건가요.

 

 

 

 

 

 

# 2.

 

작은 무전 소리가 들립니다. 죽여뒀던 청각이 되살아나며 감각이 확장됩니다. 관객은 죽였던 호흡을 되찾으며 자연스레 시각적 충격으로부터 압도되는 상태를 벗어나 황홀한 전경에 감탄하는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호흡을 추스르며 서서히 커져오는 무전 소리와 점점 시야에 들어오는 허블망원경과 익스플로러 호를 보게 되죠.

 

도입부에서의 시퀀스는 황홀합니다. 가까이의 글자, 드넓은 화각, 멀리 떨어진 익스플로러라는 작은 점, 점점 가까워지는 우주비행선, 그 앞을 갑작스레 지나는 코왈스키까지. 관객이 바라보게 될 심도를 손쉽게 가지고 놀며 완벽에 가까운 스펙터클을 선사합니다. 청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사운드, 갑작스러운 정적,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겨우 알아차릴 정도의 미세한 소음에서 점점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을 법한 대화로 커져 나가는 무전. 시각과 마찬가지로 청각의 심도를 흔드는 거라 할 수 있겠네요.

 

 

 

 

 

 

# 3.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정작 계系는 정적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스펙터클을 만들기 위해 고정된 시야에서 대상물들이 현란하게 운동하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정지한 계를 영화적 표현을 최대한 동원해 효과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자유자재로 완급을 조절하며 관객의 감각을 요리하는 건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가까이 있는 라이언 스톤 박사를 보여주다가 그 뒤로 갑자기 뒤집힌 지구가 머리 위를 스칩니다. 다시 시선은 가까이 있는 코왈스키에게 넘어가나 싶더니 또 어느샌가 그 뒤로 작게 유영하는 샤리프가 잠시 시선을 훔치죠. 대사를 통해 다시 관객의 관심을 가져온 코왈스키가 스톤 박사를 돕는 순간 관객이 있는 방향으로 볼트 하나가 날아듭니다. 관객은 크게는 수백 킬로미터, 짧게는 수십 미터, 아니 수십 센티까지 시각의 깊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됩니다. 마치 눈으로 듣는 리드미컬한 소울 음악 같죠.

 

 

 

 

 

 

# 4.

 

인공위성들 간의 연쇄 충돌이 일어납니다. 소위 케슬러 신드롬이라는 것이죠. 온갖 우주 쓰레기들과 파손된 인공위성들의 파편이 초당 수 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속도로 쏟아집니다. 이전까지의 장르가 우주 SF의 장엄한 풍경을 관람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여기서부턴 목숨을 건 어드벤처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이 장면부터는 같은 깊이의 공간 안에서 상하좌우 가리지 않는 운동성으로 어드벤처를 확보합니다. 충돌 이후 스톤 박사 일행과 잔여물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스크린을 종횡무진합니다. 카메라는 일정한 궤도로 회전하면서 대상물들은 그 역방향으로 크게 회전시키는데요. 이를 통해 관객은 어지러움은 최소화시키면서도 압도적인 속도감을 전달받게 됩니다. 관객의 스트레스를 비용이라 본다면 상당히 경제적인 연출인 셈이죠.

 

 

 

 

 

 

# 5.

 

결국 우주로 튕겨나가는 스톤 박사. 지금까지가 관찰자로서 시청각적 자극의 극한을 경험하게 하는 영역이었다면 이젠 그 재난적 상황 안의 체험자로서 공감의 극한을 경험하게 하려 합니다. 우주로 날아가는 순간 화면 한 가득 스톤 박사만을 고정적으로 잡습니다. 이건 지금까지의 문법과는 다른 표현방식이죠. 눈앞에 어떤 사람이 대문짝만 하게 자리하는 건 관객이 그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게끔 하기위해 감독들이 자주 활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멀리 표류될 위기의 스톤 박사의 전신에서 상반신과 얼굴, 표정을 잡다 못해 헬멧 안으로 들어가 결국 카메라를 스톤 박사의 눈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언제부터 숨을 멈추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스톤 박사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앞에 숨쉬기 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그건 강제로 상황을 이입당한 관객도 마찬가지죠. 간신히 평정을 되찾는 그 순간 터져 나오는 박사의 거친 호흡과 "god damn it!"이란 욕설이 주는 관객과의 밀착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감독은 아직 관객을 쉬게 둘 생각이 없습니다. 표류된 스톤 박사가 간신히 코왈스키의 손을 붙잡는 안도의 순간 처참히 얼굴이 사라져 버린 샤리프의 시신을 가감 없이 들이밉니다. 파손된 익스프레스호에서 삐져나온 귀여운 장난감 뒤로 역시 대문짝만하게 시체를 보여줍니다. 감독은 두 번의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주의를 줍니다.

 

'이제부터 잠시 쉬어갈 건데, 그렇다고 긴장은 놓지 마.

너와 스톤 박사는 여전히 가혹한 우주 한복판에 있어.'

 

 

 

 

 

 

# 6.

 

시간을 지워버린 듯 압도적인 스펙터클이 쏟아진 지 25분. 지친 관객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부여됩니다. 옅게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와 멋들어진 장엄한 석양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관객을 위한 감독의 배려죠. 규모가 있는 롤러코스터들의 경우 첫 낙하가 있고 나서 무난하게 주행하는 완급조절 구간이 있잖아요? 롤러코스터로 치자면 이 부분이 그 첫 번째 낙하 이후 쉬어가는 구간인 셈입니다.

 

우주가 고요해서 좋다는 스톤 박사는 딸을 잃고 홀로 된 엄마입니다. 딸이 죽던 날 운전을 하고 있었다는 그녀는 딸의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모든 관계에 실망하고 도망쳐 나온 인물이죠. 멘트 없는 라디오를 들으며 정처 없이 운전하던 스톤 박사는 후회스럽고 한스러운 과거에 묶여있는 인간입니다. 그녀는 라디오 속 생면부지의 DJ의 말 조차 거부할 만큼 관계가 만드는 인력을 두려워하죠. 그녀의 외로움 뒤로 영화 처음으로 음악다운 음악이 배경으로 흐릅니다. 이 지점은 우주에서 표류된 현실에서 잠시 떨어진 감성의 영역이라는 감독의 이정표입니다.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박사의 모습이 코왈스키의 손목 거울을 통해 비춰집니다. 마치 손목 뒤의 지구로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듯하죠. 중력의 대상에서 떨어져나와 빙글빙글 표류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시각적으로 또 동시에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멋진 장면입니다.

 

하지만 짜잔! 휴식시간 3분이 끝났네요. 눈 앞으로 우주정거장이 보이며 다시 롤러코스터의 두번째 자유낙하가 시작되는 데요... 그건 다음 글에서 이어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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