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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완벽 ⅱ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냥_ 2019. 2. 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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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

morgosound.tistory.com

 

 

# 7.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의 눈앞에 우주정거장 ISS가 보입니다. 버틸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산소와 연료가 긴장감을 더하죠. 중력을 잃고 표류한다는 건 위태롭고 숨 막히는 일입니다. 충분하지 못한 연료 탓에 안정적으로 ISS에 닿지 못한 두 사람.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가려는 찰나 가까스로 박사의 발에 끈이 걸립니다만 헐거운 끈은 두 사람의 체중에 부합하는 운동량을 버텨내지 못합니다.

 

이대로는 둘 다 위험할 것이라 판단한 코왈스키는 레니 할린 감독의 <클리프 행어>의 한 장면처럼 스스로 줄을 놓습니다. 매달려 붙잡으려 하지만 떠나가버리는 코왈스키는 예고 없이 훌쩍 떠나버린 딸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딸 새나와는 달리 코왈스키는 죽음을 예정한 마지막 유영을 하면서도 스톤 박사가 살아갈 길을 알려줍니다. 억지로 감당하게 된 두 번째 맞이하는 이별은 외면하지 않고 집중해 들으며 극복해야만 합니다.

 

결국 코왈스키의 조언에 힘입어 무사히 우주정거장에 들어갑니다. 우주 한복판에서 오롯이 혼자 됨을 절감합니다. 우주가 고요해서 좋다던 그녀는 어느새 누구든 상관없이 응답이 들려오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 8.

 

홀로 들어간 우주 정거장. 가쁘게 또 깊게 숨을 몰아쉽니다.

영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산드라 블록의 표현에서 설명하기 힘든 깊은 생명력을 전달받습니다. 무거운 우주복을 벗어던지며 평온한 얼굴로 무중력실에서 둥글게 몸을 마는 것이 꼭 태아의 그것 같죠. 온전히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순간 우주선 내부의 호스가 자연스레 스톤 박사의 배꼽 위에 자리합니다. 탯줄처럼 보이도록 말이죠. 박사는 스스로 거부한 중력의 공백을 인정하며 새로운 탄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녀의 정적인 모습 위로 삶에 대한 충만한 의지가 역설적으로 전달됩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황급히 코왈스키에게 무전을 해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발 수다스러운 모습 그대로 돌아와 달라고 애타게 찾아보지만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Please, Tell to me." 아무 말이라도 해 달라는 박사의 말과 함께 감독은 창밖 지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코왈스키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가 진정 바라는 건 코왈스키라는 개인이 아닌 '관계'라는 관념 그 자체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 9.

 

평온은 잠시 뿐입니다. 우주정거장은 새롭게 태어난 스톤 박사가 최종적으로 닿아야 할 목적지가 아니죠. 박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구와 연락을 취할 방법을 찾습니다. 이 지점부터 우주정거장 안에서의 유영이 흥미로운 데요. 영화가 절반 가까이 흘러오는 동안 처음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진 통로를 이동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주 정거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박사는 전후좌우상하의 막힘없는 공간 안을 부유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탄생을 거친 후 처음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일관된 방향으로 운동하죠. 코왈스키에게 의존하고 딸에게 의존하던 사람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인간으로 성장했음을 동선으로 은유됩니다.

 

불길에 폭발하는 정거장에서 쫓겨나듯 간신히 소유즈에 올라탑니다. 딸을 잃고 온종일 운전만 했다던 사람이 우주에서 또 운전을 하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이번 운전은 이전과는 달리 뚜렷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소유즈를 타고 탈출하려는 찰나 정거장에 엉켜 붙은 끈이 마치 그녀를 수년간 놓아주지 않던 미련처럼 붙들어 맵니다. 날아드는 잔해에 산산이 부서지는 정거장을 보며 말합니다. "I hate Space." 언젠 우주가 고요해서 좋다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군요.

 

 

 

 

 

 

# 10.

 

"It'll be one hell of a ride. I'm ready"

 

간신히 올라탄 소유즈 이건만 연료 부족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절망적이죠. 연결된 무전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와 개가 짖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입니다. 박사는 웃음과 울음 그 중간 어딘가의 감정으로 따라 짖죠. 박사에게 필요한 건 '어떠한' 관계가 아닌 '관계' 그 자체라는 메시지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군요.

 

절망에 빠진 박사는 결국 소유즈 내 산소농도를 낮추며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 합니다. 그 찰나 당연히 죽은 줄만 알았던 코왈스키가 소유즈로 돌아옵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숨겨둔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곤 지구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애써 감추지 않으면서 그 편안함보다 더 나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삶이란 실패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실패하고 상처 받고 불편하더라도 살아가는 것 그래서 멋있는 것이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코왈스키는 환각이었습니다. 인간성까지 내팽개치면서까지 무언가와 대화하고 싶었던 스톤 박사에게 환각이라고 관계의 대상이 되지 못할 건 없어 보입니다. 큰 위안을 얻은 박사는 시뮬레이션에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착륙 방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책을 되짚어가며 걸음마 떼듯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장하는 거죠. 중국 국적 우주 정거장으로의 드라이브를 나서며 박사는 코왈스키에게 담담히 독백을 건넵니다. 딸 새라에게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물건을 찾았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전해달라 말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 묶인 사람이 아닙니다. 소유즈를 운전하는 박사는 이렇게 말하죠.

 

"no more just driving. let's go home."

 

 

 

 

 

 

# 11.

 

딸과의 과거에 묶여 있던 시점은 '죽음', 코왈스키의 희생에 간신히 우주정거장에 도달한 시점을 '탄생'이라 본다면, 우주의 공허함에 진절머리를 내고 절망하다 그 절망으로부터 일어서는 이 지점은 '성장' 정도로 정의할 수 있어 보입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다시 태어나 성장을 했으면 마지막엔 뭘 할까요? 그렇죠, 새로운 인물로 '진화'하겠네요. 따라가 봅시다.

 

간신히 다다른 중국의 정류장 앞에서 전보다 훨씬 외로운 유영을 하게 되는 스톤 박사. 이번 유영엔 믿음직한 동료도 안정적인 장비도 신뢰할만한 기약도 없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위태로운 상황에서 소화기 하나에 의지해 텅 빈 우주공간을 유영해야 하지만 이전과 달리 화면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상황은 위태로워도 그녀의 내면은 이전과 달리 한없이 단단하고 안정적이니까요. 끝내 정류장에 도착한 그녀는 자그마한 귀환선에 몸을 싣고 지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하는 가장 중요한 대사가 나옵니다. 감상하시죠.

 

"all right, the way i see it... there's only two possible outcomes. either i make it down there in one piece... and i have one hell of a story to tell... or i burn up in the next 10 minutes. aah. either way, whichever way... no harm, no foul! ahh! because either way... it'll be one hell of a ride. i'm ready"

 

"내가 보기에... 예상되는 결과는 두 가지다. 멀쩡한 상태로 내려가...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거나... 앞으로 10분 안에 불타 죽거나, 아. 어느 쪽이든...밑져야 본전이다! 어떻게 되든... 엄청난 여행일 거다. 난 준비됐다."

 

 

 

 

 

 

# 12.

 

다행히 멋진 모험담을 들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환선이 잘 버텨준 덕에 무사히 지구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거든요. 그런데 하필 떨어진 곳이 깊은 물속이네요. 구 형상의 귀환선에 들이치는 물을 역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앞서서의 탯줄과 관련된 연출과 맞물려 마치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탈출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물이 통상 탄생을 의미하는 문학적 아이템이란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추측인 것 같네요. 물을 거슬러 나오는 박사의 앞으로 뜬금없이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개구리는 올챙이에서 극적으로 '변태' 하는 동물이죠. 박사 역시 이전의 올챙이와 같던 삶에서 진화해 한 마리 늠름한 개구리가 되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연상합니다.

 

깊은 물을 살아서 오르는 박사. 그녀의 앞으로 짙은 진흙 바닥이 펼쳐져 있고 그 흙을 힘 있게 움켜쥐는 모습에서 어마어마한 생동감이 전달됩니다. 엎드려 있던 박사가 무릎을 꿇고 일어서려다 다리가 풀렸는지 살짝 비틀거립니다. 막 태어난 송아지의 비틀거림처럼 말이죠. 하지만 여느 생명과 마찬가지로 새로 태어난 라이언 스톤 역시 끝내 스스로의 발로 우뚝 서는 데 성공합니다.

 

# 13.

 

'생명력'이란 관념을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는 기분입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유대감'이란 주제의식을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최대치를 목격하는 기분입니다. SF 물로서도 드라마로서도 체험형 영화로서도 이곳이 최대치라는 걸 선언하는 듯한 영화입니다.

 

90분에 걸쳐 주인공은 중력을 갈구하지만 결국 스스로 찾아가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는 주제의식과 그런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이야기 모두 환상적입니다. 우주에서 귀환하는 이야기와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이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이야기에 깊이 있고 섬세한 묘사가 완벽에 가까운 합치를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구요? 제발 재개봉 좀.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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