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화려한 상상과 호쾌한 액션으로 역사를 통찰한다.
라이언 존슨 감독,
『루퍼 :: Looper』입니다.
# 1.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절친을 팔았던 사람이, 아무 연고 없는 세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수밭과 같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과정이다. 조는 방탕하고 쾌락적인 인생에 집착하는 보신주의적 인물로, 삶에 대한 태도는 지하실에 숨겨둔 은괴 가득한 금고가 증언한다. 과거의 조가 세라에게 수수밭을 태워버리자 말하는 대목이 있는 데, 이는 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내일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이고, 그 폭력의 기저에 두려움과 나약함이 숨어있다는 진단은 단호하다. 그런 그가 아무 연고 없는 모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 변화.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던 사람이 타인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사람이 되는 동안의 성찰은, 화려한 SF적 상상과 호쾌한 액션 아래 깔린 진정한 작품의 의의다.
선택에 대한 영화라는 말은 책임에 대한 영화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업을 미래의 자신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것은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주제의식이다. 내일을 외면하는 마약은 두통과 갈증으로 정직하게 돌아온다. 자신이 쏜 총알은 30년의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태도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자신이 떠넘긴 위기에 미래의 자신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세스의 처참한 최후가 몸소 증명한다.
깔끔한 마무리는 스스로 책임을 진 조에 대한 감독의 치하다. 결과적으로 미래에서 넘어온 에이브와 일당들, 키드 블루를 비롯한 겟 맨들과 루퍼들까지 모조리 몰살당한다. 세라의 모자도 어쨌든 잘 살아갈 것이고, 중국인 아내 역시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인데, 이들 모두는 조가 책임진 결과다. 영화는 화려한 미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성찰한 인간의 날갯짓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태풍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찝찝한 뒷맛 따위를 남기지 않는 결말은 장르적으로도 상쾌하다. '완전범죄' 운운하며 시작한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 2.
영화는 잘못된 세 가지 삶의 유형을 지적하고 있고, 각각은 주요 인물에 대응한다. 과거의 조는 낭비적이고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삶이다. 미래의 조는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착에 얽매인 삶이다. 레인메이커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채 복수에 매몰된 삶이다. 특히 미래의 조는 아내와의 삶 이전의 자신을 멍청하고 바보 같다 처절히 반성하는데, 이는 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경험적이고 진솔한 것이다. 과거의 조는 에이브에 의해 루퍼의 세계로 끌어내려진 것을 두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말하지만 루퍼의 삶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 인생의 허무는, 가지는 족족 허비되는 은괴와, 눈앞을 가려 갈증에 잠식되게 만드는 마약과, 맹목적인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키드 블루의 가여움이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세 삶을 끊어내는 성찰로서 셋 모두 사라진다. 과거의 조는 죽음으로서, 미래의 조는 부정으로서, 레인메이커는 사랑으로서 말이다. 각각의 삶과, 사라지는 방식의 연결은 흥미롭다. 무분별한 쾌락의 끝은 죽음뿐이고, 과거에 대한 집착은 실현불가능한 허구지만, 분노와 복수만큼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결말은 맑은 하늘 아래 드넓은 수수밭만큼이나 온화하다.
과거의 조와 미래의 조만이 루프의 관계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시드까지 셋이서 순환하는 관계라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과거의 조와 미래의 조가 만나는 것은 판타지적이고, 과거의 조와 시드가 만나는 것은 현실적이긴 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이입해 후회를 이야기한다'는 면에서만큼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세 인물이 노년과 청년과 소년이라는 세대 단위로 구분되어 병렬적으로 나열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조와 미래의 조의 관계와, 과거의 조와 시드의 관계가 같다면, 과거의 조가 겪은 반성과 성찰은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같았던 어린 존재를 바른 길로 이끈다는 면에서 작게는 가족, 크게는 공동체의 의미를 반추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가여움, 그럼에도 스스로를 희생하며 책임지는 어른들, 복수의 순환을 끊고 가능성을 키워갈 아이들은 우리의 역사다. 어린 레인메이커의 이름은 시드. 조의 모습을 빌려 개개인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질문하는 영화는, 우리 사회는 내일의 씨앗을 잘 틔워나가고 있는가 함께 질문한다.
# 3.
감독이 주창하는 삶은 '선택의 기로에서 사랑과 책임을 잊지 않는 삶'이다. 조는 세라와 시드를 통해 마약 대신 치료를, 갱 대신 아이와 대화하는 진정한 삶을 경험한다. 시드는 세라가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 말한다. 시드의 오해이기도 하지만, 엄마는 태어나게 한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고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하면 과거의 조 역시 낳은 사람은 아니지만 시드를 성장시킨다는 면에서 시드의 아버지나 다름없다. (다소 갑작스러운 배드신이 들어간 이유다.)
삭막하고 어두운 방에서 은괴가 가득한 지하실을 내려다보던 조는, 제시를 피해 숨어든 지하실에서 바깥의 드넓고 맑은 세상을 올려다본다. 조는 어린 시드에게 엄마의 사랑과 자신이 겪은 과거에 대해 진솔하게 조언한다. 그는 한 발짝 먼저 지하실을 나와 아직 지하실에 있는 시드에게 손을 내미는 데, 이는 어린 시드를 구원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금의 시드가 겪고 있는 갈림길에 있었던 과거 자신의 유년기를 구원하며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말에서 분노에 휩싸인 시드는 세라의 사랑한다는 말과 조의 희생으로 구원받으며 일련의 주제의식은 다시 한번 강조된다.
어떻게 태어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미래의 조는 생년월일이 포함된 병원코드로 어린 레인메이커를 추적한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난 아기들이지만 누군가는 평범한 가정에서, 누군가는 홀어머니 밑에서, 누군가는 창녀의 품에서 자란다. 미래의 조가 어느 집을 먼저 찾아가느냐에 따라서도 운명은 또 갈렸을 것이다. 아이가 레인메이커가 되느냐 천재소년이 되느냐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 4.
이처럼 라이언 존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다. (스타워즈 팬들에겐 유감이지만 말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세스의 활용이다. 세스는 미래에서 온 자신을 죽이지 못해 생기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시현하는 캐릭터로서,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관계,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흉터로 소통하는 방식, 미래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을 공격할 수 없음과, 과거의 자신이 공격당하면 미래의 자신도 소멸한다는 정보를 패키지로 엮어 간명히 전달한다.
장르적인 면에서 미래의 조가 거짓말처럼 쓱 사라지는 결말은 매우 중요한 데, 그 감동을 온전히 느끼려면 '왜 없어졌지?'가 아니라 '아! 과거의 조가 죽어 미래의 조가 없어졌구나!'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감독은 세스의 최후를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라가 동전이나 띄우며 꼬시려 드는 시시껄렁한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세스의 존재를 붙잡고 있게 만드는 서술적 장치다. 마다마다 요긴하게 쓰이는 호버바이크와 산탄총 역시 마찬가지 목적의 요소이고 말이다.
여담으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피 흘리는 소시민적 브루스 윌리스 덕에 다이하드를 끌고 들어오는 맛도 있다. 미래에서 온 초인의 살육극이라는 면에서 터미네이터의 영향이 발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초현실적 현상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사건과, 내막을 향해 꼬아내는 플롯, 인본주의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주제의식에서 샤말란스러움이 느껴진다는 평 역시 설득력은 크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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