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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비상한 야심 _ 만델라 이펙트,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그냥_ 2023. 8.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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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Hello, IT, have you tried turning it off and on again?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만델라 이펙트 :: The Mandela Effect』입니다.

 

 

 

 

 

# 1.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 하지 않았던 거짓된 기억을 사실인 양 공유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가 80년대 즈음 감옥에서 죽었다 기억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데요. 실제 만델라는 2013년에 타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80년대 고생스러운 옥살이를 하다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적당히 죽었겠거니 하는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유통되다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정설이라 합니다.

 

만델라 효과의 사례는 그 외에도 제법 많습니다. 베렌스테인 베어스라는 그림책 제목의 스펠링을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다거나, 우리나라에서는 데드카피판 부루마블로 더 잘 알려진 모노폴리의 캐릭터가 단안경을 쓰고 있다 잘못 기억한다거나,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 루니 툰의 스펠링을 잘못 기억한다거나 하는 식인데요. 이들 모두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이 만델라 이펙트에 집착하는 근거들로 동원되고 있죠.

 

영화에는 만델라 효과만큼이나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시뮬레이션 우주론(Simulated reality)이라는 건데요. 대충 우주가 사실 거대한 시뮬레이션이 아닐까?라는 가설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이를 테면 고도로 발전한 게임 속 NPC는 자신이 NPC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했을 때, 네가 그런 NPC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사고실험인 것이죠. 통 속의 뇌는 최소한 뇌가 있기라도 하지. 이 가설에서라면 우리는 데이터 더미로 전락하니 조금 더 비참한 처지라 할 수 있겠군요.

 

두 개념 모두 다소 생소할 수 있기에 전반부는 만델라 효과와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전달하는 데 전력합니다. 존 윅 1편에서 킬러 해리를 연기했던 클라크 피터스의 모건 프리먼 짝퉁 같은 연기를 통해 끝도 없이 설명하고 있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느니, 평행우주라느니 하는 몇몇의 과학적 용어들과 프리시저를 비롯한 개발 용어들이 난립하는 데요. 전문가 수준까지는 못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맥락으로 하는 말인지 알아들을 정도의 이해력은 요구됩니다. 영세한 와중에 시각적 효과들, 이를테면 쥐가 길을 탐색하는 미로라거나 풍경에 오버랩되는 시뮬레이션 그래픽 따위가 인서트 되어 개념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일련의 서술로 채워진 전반부가 다소 지루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 2.

 

영화는 주인공 부부의 딸 '샘'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데요. 딸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지만 결국 상실을 받아들이고 방을 정리하는 아내 클레어는 운명에 순응하는 보통의 인간을 대변합니다. 남편 브렌던 역시 처음에는 딸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는데요. 만델라 효과를 근거로 세계의 불완전성을 발견한 후, 비가역적인 순리라 생각되던 죽음이라는 현상까지 점점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전반부 교회를 찾아가 목사에게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은 그의 사상이 파편적 현상에서 기성의 우주론에 대한 철학적 불신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묘사하는 주요 장면이라 할 수 있죠.

 

세계의 불완전성에 혼란스러워하던 브렌던은 끊임없이 인터넷을 탐색한 끝에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라는 가설에 도달합니다. 해당 이론을 설파하고 다니던 폭스 교수와 만난 브렌던은 그와의 대화 끝에 세계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넘어 코딩을 통해 '수정'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데요. 결국 프로그래머로서의 역량과 양자 컴퓨터를 통해 우주의 원리에 직접 개입하게 되고 그로 인한 문제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는, 뭐 고런 이야기죠.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이 표면적이고 파편적인 현상에서 시공간을 통할하는 세계의 원리를 향해 나아가는 서사라는 건데요. 아무런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사회과학적 현상(만델라 효과)과, SF적 세계관(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공학적 기술(프로그래밍)을 접붙여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비상한 야망'이야말로 이 영화의 존재 의의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딸과 관련된 드라마적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작품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세 요소를 연결하는 접착제이자, 주인공으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동력원이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죠.

 

 

 

 

 

 

# 3.

 

후반부 주인공의 코딩으로 딸이 되살아나기는 하지만 되려 아내 클레어가 이상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남편은 '버그'를 재차 수정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하게 되고, 결국 시스템이 드롭되는 지경에 이르는데요. 세계라는 시뮬레이션이 무너지다 못해 꺼져버린 후 리부트(Reboot) 되어 순식간에 롤백(Roll Back)되는 장면이 제법 감각적으로 연출됩니다.

 

다시 도입의 해변으로 돌아온 세 가족. 시스템 전체가 브렌던이 손 대기 전으로 복구되었다면 딸 샘은 다시 한번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등장하죠. 딸이 죽는 이유가 되었던 인형을 아빠가 가져가며 영화는 마무리되는 데요. 즉, 시뮬레이션이 브렌던이 아닌 '어떤 존재'에 의해 수정되었다는 결말인 것이죠.

 

관객은 이전까지 시뮬레이션된 우주의 존재를 관람했다 한다면 일련의 결말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통제하는 초월적 존재를 목격한 셈이 됩니다. 그 존재는 브렌던이라는 '바이러스'가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것을 막은 것일 수도 있고,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보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쪽이 되었든 대단히 인간적인 감정과 사고를 가진 존재라는 면에서 두근거림이 발생합니다. 초월적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던 브렌던은 정작 시뮬레이션을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를 의심하며 따라가던 관객은 해당 존재를 몸소 목격하게 된다는 아이러니 또한 발생하게 되구요. 일련의 결말은 실제 복구툴을 돌리는 초월자를 직접 보여주는 등의 유치한 방식이 아니라, 짤막한 단서를 통해 최대한 간접적으로 보여준 후 여백을 관객의 상상에 던진다는 면에서 준수한 SF적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

 

어떤 면에선 제법 무식한 영화라는 평을 하게 됩니다.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비상한 야심'이라는 놈을 관철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연출 전반은 영세하고 촌스럽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저기 엉성합니다. 억지를 부리는 순간들도 적지 않구요, 대충 넘어가자고 우기는 순간들과 전반부의 지루함은 분명한 단점이죠.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수작은 택도 없음에 분명합니다.

 

다만 그래서 뭐 싶기도 합니다. 감독이 깔아놓은 이 상상이 마냥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루니 튠즈의 스펠링이 바뀌며 주인공이 새로 짠 코드가 컴파일된 우주로 넘어가는 장면은 제법 인상적이구요.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프로그램이 뻑 나는 장면으로 시각화한 것 역시 재기 발랄합니다. 결말의 강렬함은 재차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죠. 양자 컴퓨터고 나발이고 개발자는 버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통렬한 지적과 직업적 애환까지 곁들여지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는 못되지만 그래도 저예산에 1시간 20분도 채 되지 않는 런타임에서 이 정도 성취는 칭찬받아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도전 의식이 높은 SF 팬들에게라면 한 번쯤 추천해도 괜찮을 듯한 작품이랄까요. 특히 확실한 것은 최소한 <더 문>의 천하제일기술자랑식 눈물의 차력쇼보다는 차라리 이게 2만 배는 더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SF라는 장르에 대한 진정성도 이 쪽이 훨씬 우세합니다. 데이빗 가이 레비 감독, <만델라 이펙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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