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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이연복의 피카츄 돈까스 _ 외계+인 2부, 최동훈 감독

그냥_ 2024. 1.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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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별 수 있나요. 보긴 봐야죠.

 

 

 

 

 

 

 

 

최동훈 감독,

『외계+인 2부 :: Alienoid part.2』입니다.

 

 

 

 

 

# 1.

 

한 번에 촬영된 시리즈이니만큼 애정을 주기 힘든 유치한 스타일이라는 전편의 약점은 어쩔 수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편 대비 훨씬 정돈된 티가 나기도 하고, 밀린 숙제를 열심히 해치우고 있고, 코미디의 분량도 크게 늘어 설득력이 압도적으로 개선된 후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코멘트하자면 1부는 짝퉁 전대물, 2부는 짝퉁 어벤저스라 평해도 크게 할 말은 없는 거겠죠. 그러니 많이들 하고 계신 지루한 동어반복은 생략하도록 하구요, 대신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소감을 짧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도 저마다 주인이 있습니다. 모든 영화들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같은 아이돌 립서비스 같은 민망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어떤 영화들은 배우의 것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기여를 강변한다 하더라도 <변호인>은 송강호의 영화고, <말아톤>은 조승우의 영화고, <존 윅>은 키아누 리부스의 영화고, <조커>는 와킨 피닉스의 영화죠. 어떤 영화들은 소재가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데미안 샤젤의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이 주인일 테구요,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가 주인이고, 마블 유니버스나 스타워즈 등의 작품들은 어쨌든 각 캐릭터들의 동력이 주인이 됩니다. 가끔은 원작자의 존재감이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반지의 제왕은 탁월한 배우들과 광활한 자연과 눈부신 연출이 가득한 명작이지만 얄짤없이 톨킨의 영화라 해야 할 겁니다. 미스트라거나 쇼생크 탈출 등의 작품들 역시 많은 관객들에게 스티븐 킹의 냄새로 기억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감독이 주인이기 마련입니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괜한 것은 아니죠.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웨스 앤더슨, 라스 폰 트리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홍상수, 이창동과 같은 이름들의 영화에, 어떤 내용이냐 누가 등장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활약을 하더라도 감독의 장기말일뿐 감독의 세계를 방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최동훈 감독 역시 그들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가지는 명감독임에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관객들은 필모그래피의 작품들을 최동훈의 색으로 기억하고 소리로 기대하고 냄새로 추억합니다. 최동훈의 출현은 한국 영화에 내린 축복입니다. 이번 외계+인이 설령 뼈아픈 참패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이후 어떤 쓰라린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전재합니다.

 

 

 

 

 

 

# 2.

 

최동훈 감독의 작품 스타일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제가 가진 인상은 생각보다 간결합니다. 80-90년대 홍콩 영화를 가져와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게 로컬라이즈를 하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고 말이죠.

 

일례로, <타짜>는 허영만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취권>을 가져온 작품이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촌동네 천둥벌거숭이 주인공이 원수에게 호되게 당하고, 스승을 찾아가 계절이 몇 바퀴 도는 동안 집안일해 가며 절치부심한 끝에 복수에 성공하지만 그에 도취되어 점점 타락합니다. 그러던 중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에 도달하게 되고, 결국 클라이맥스에서 스승의 철천지원수에 복수를 되갚으며 막을 내립니다. 사이사이 주인공의 욕망을 상징하는 미모의 히로인이 개입한다거나, 사실상 반려견이나 다를 바 없는 잔망스러운 보조 캐릭터가 하나 붙어 있다거나, 정체불명의 은둔고수가 신선처럼 나타나 일격필살의 비급을 전해준다거나 하는 식의 클리셰까지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죠. 하다못해 예기치 못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한다는 아이디어까지도 취권이라는 무술의 특성과 동일합니다.

 

그 외의 작품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대사 처리하는 모습들을 마치 홍콩 무협물의 등장인물들이 합을 주고받듯 처리되는 것도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칭찬받곤 하는 캐릭터 디자인과, 애정씬에서의 농밀한 감정선, 리듬감을 활용한 코미디의 작동원리, 로프 액션과 와이어 액션과 총기 액션의 스타일까지 모조리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장되고 촉촉하고 비장한 그것들과 크게 닮아 있죠. 감독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필모그래피의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느슨하게 중화풍의 분위기가 묻어 나오는 것은 감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증명합니다.

 

 

 

 

 

 

# 3.

 

이 같은 필모그래피의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난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전우치>입니다. 전우치는 최동훈이 최초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야망을 내비친 최초의 시도로 이해합니다. 전우치의 내러티브와 디자인은 전우치 설화에 일부 근거하고 있을 뿐, 홍콩 영화의 냄새가 확실히 덜 나거든요.

 

일련의 시도로 인한 가장 큰 차이점은 서사의 안정감이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부터 <암살>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인 변주는 있을지언정 서사 자체는 대단히 직관적이고 안정적이었던 것에 반해, 전우치는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고 현실과 요술을 넘나드는 훨씬 과격한 플롯을 시도하는 데요. 이는 강동원을 비롯한 배우진의 호연과, 한국형 히어로라는 장르의 희소성, 토속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갈리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최동훈의 첫 번째 오리지널리티 찾기는 그렇게 한계와 가능성이 공존했던 작품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2020년 3월 29일, 외계+인이 촬영에 들어갑니다. 전우치가 2009년 연말에 개봉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외계+인은 전우치 10주년 작이라 해도 무방한데요. 결과는 전우치 v2.0이 되고 말았죠. 이를테면 무륵은 전우치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고려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서사 역시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던 전우치 서사의 확장판이죠. 흑설과 청운 역시 트롤러 신선 3인방을 계승합니다. 메인 빌런이었던 화담은 볼륨이 늘어남에 따라 밀본의 수장 자장과, 속편의 최종보스로 분화되어 있을 뿐입니다. 전우치에서 개였던 초랭이는 고양이 우왕좌왕으로 계승되어 있고, 히로인인 임수정의 서인경은 당연하게도 김태리의 이안과 사실상 같은 인물이고, 심지어 만파식적 역시 신검이라는 빛나는 돌덩이와 같은 용도의 맥거핀이죠. 어찌어찌한 끝에 과거는 탈탈 털리며 조졌고, 현대로 가서 재도전하는 형태로 수습한다는 큰 틀에서의 이야기 구조까지 동일합니다. 이쯤 되면 그냥 같은 영화라 봐야죠.

 

 

 

 

 

 

# 4.

 

비장하게 오리지널리티를 실현해 보겠다는 각오로 영화를 만들었는 데 그 영화가 애매한 평을 들었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절치부심한 끝에 같은 감성의 영화를 다시 시도한다면 십중팔구 그곳엔 일정한 오기나 한이 묻어있기 마련일 겁니다. 즉, 진짜 하고 싶었던 무언가의 농도는 십중팔구 더 짙어졌을 것이라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전우치의 한국적이고 설화적인 감성이 오기와 뒤엉켜 농축된 결과는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한 해맑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치함이라는 가장 안타까운 형태로 발현되고 말았습니다.

 

추측한 대로라면 조금 슬픈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오리지널리티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완벽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레퍼런스를 가져와야 했다는 것일 테니까요. 이유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플롯이나 유치하고 익숙한 표현들과 별개로. 섣부르다는 말도 부족할 한꺼번에 두 편을 만들겠다는 기획은 콤플렉스를 스스로에게서 숨기기 위한 반동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국식 중국요리(한국형 홍콩영화)의 장인인 이연복 셰프(최동훈 감독)가 오리지널 요리를 선보이겠다며 700평짜리 매장(700억짜리 예산)을 열어 어릴 적 자주 먹던 피카츄 돈까스(아동용 전대물) 전문점을 연 것과 비슷한데요. 마음처럼 될 리가 없죠. 먹을 것 같다구요? 1000원, 2000원이 아니라 파카츄 돈까스 한 장에 탕수육 중짜랑 같은 가격이어도 드실까요?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전편의 냉담한 성적과, 후편 오프닝의 비관적 예측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서글프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것은 이전 작품의 완성도가 외계+인의 완성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외계+인의 참패가 이후 작품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당장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기 쉽지는 않겠지만) 또다시 홍콩 영화의 모티브를 적절히 가져다 재해석해 영화를 내놓으면 최동훈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들과 함께 또 수백만이 찾을 것이라는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700평짜리 피카츄 돈까스 전문점을 열었다 실패한다 한들 이연복 셰프가 다시 목란을 열어 동파육을 만들면 어차피 사람들은 줄지어 찾게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장인의 손맛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요. 최동훈 감독, <외계+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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