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Everything is gonna be okay.
Thank you for your service.
덩컨 존스 감독,
『소스 코드 :: Source Code』입니다.
# 1.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플롯을 이제와 설명하는 건 지루하다. 러틀리지 박사의 설정놀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통 속의 뇌에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접붙이기한 후 파생되는 문제들은 평행우주로 돌파했을 뿐이다. 물론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 스피디한 편집과 미술적 성취, 제이크 질렌할의 불안과 소명, 미셸 모나한의 사랑스러움, 백투백 홈런을 날리는 듯한 반전 카타르시스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키스신에서 영화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이후 글에서 다루게 될 주제의식을 차치하고서라도, 8분의 유효시간으로 콜터의 수명이 끝나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간과한 관객이 적지 않음은 다소 놀랍다. 콜터가 숀이 경험하지 않은 정보를 탐색하는 영화의 과정 전체가 평행우주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노골적 단서이기 때문이다. 평행우주 등의 샛길 없이 8분짜리 숀의 기억 안에 콜터가 온전히 갇힌 것이라면, 숀이 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데이터는 콜터 역시 전달받을 수 없음이 당연하다. 이를테면 무의식 중에 접촉한 적이라도 있는 범인의 정체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폭탄이 들어있는 흰색 벤의 존재는 절대 알 방법이 없다.
장르적으로는 더욱 어색하다. 관객은 콜터 스티븐스를 보고 있지만 그것은 관객에게 인지되는 것일 뿐, 그는 각각의 세계에서 역사 교사 숀 펜트리스의 모습이다. 콜터와 크리스티나가 사랑에 빠지는 듯 하지만, 콜터는 고작 크리스티나의 8분을 알았을 뿐이고 심지어 크리스티나 눈앞의 남자는 콜터는 기억하지 못할 조언을 직전까지 하고 있었던 숀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엇갈린 사랑은 본질적으로 로맨스일 수 없다. 키스신으로 영화가 끝나길 바란다는 건 영화를 '달리'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물론 일군의 관객들을 살짝 변호할 수는 있겠다. 자연스럽게 루프에 대한 의구심을 심는 데 실패한 감독의 실책이라고 말이다. 혹은 평화로운 사람들 사이 달콤한 키스신이 이전의 이해를 모조리 놓칠 정도로 황홀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이라 선해할 수도 있겠다.
# 2.
소스 코드는 화려한 타임루프, 어지러운 플롯, 로맨틱한 앤딩으로 인상을 남긴 SF 타임루프 액션 스릴러 드라마로 기억되지만, 사실 느슨한 의미에서 전쟁 영화라 이해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보통 분리되어 표현되기 마련인 전장과 도시를 기차라는 한 공간에 중첩시키고, 무수히 많은 병사 개개인 역시 콜터 대위의 루프로 파편화해 겹쳐 낸 것이라고 말이다.
콜터는 개인 이전에 군인 일반을 대변한다. 크리스티나를 포함한 기차의 승객들은 그런 군인이 지키고자 하는 국민 일반을 대변한다. 크리스티나에 대한 콜터의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닌, 실존하는 선량한 시민에 대한 사랑이라는 면에서 직업윤리에 입각한 보편적 인류애다. 작품을 상징하는 대사는 둘이다. 하나는 수차례 반복되는 콜터의 "Everything is gonna be okay"이고, 다른 하나는 작전을 마친 그에게 굿윈 대위가 전한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말이다. 영화는 시민들에게 괜찮을 거라 말하는 강인한 군인의 정신과, 그들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이다. 작품의 끝을 숀과 크리스티나의 다정함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다리는 콜터로 마무리하는 것은, 감독이 주목하는 바가 군인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 평화로움을 지탱하는 군인의 희생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루프에서 콜터는 숀의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전화해 스스로를 콜터의 전우라 소개한다. 관객은 아버지를 위한 거짓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평행세계에서는 그냥 그런 것이다. 콜터와 같은 정신을 가진 숀의 무수한 반복은 군인의 일이란 전우의 희생을 디딤돌 삼아 실패를 수정 보완하며 임무에 다다르는 과정임을 표현한다. 관객이 본 1시간 30분이란 마치 8분의 교전 동안 큰 희생이 예정된 전장에 돌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이다. 각각의 시행이 평행우주라는 것은 각각의 군인 모두 하나의 우주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론 건조하게 계산되는 군인의 희생이란 하나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듯 무거운 것이다.
# 3.
위험은 실존하면서 동시에 실존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구체적이라 명백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임에도 누군가의 희생에 힘입어 일어나지 않아 인지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군인이라는 존재의 의의다. 지난 수십 년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위험이 있었으나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군인의 가치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이나, 폭탄 테러의 현장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카고에 있다는 것은 여느 전쟁 영화 못지않은 근사한 메시지다.
결말에서 무수히 확장되는 평행우주들은 평범한 시민인 관객들에겐 SF적 상상이지만, 군인들에겐 명백히 실존하는, 그래서 해결해야만 하는 치열한 현실이다. 평범한 관객들이 작품의 장르를 '비현실적인 SF'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성공을 의미한다. 앞서 키스신을 좋아하는 일군의 관객들은 적당히 '당장 8분 후에라도 죽을 수 있으니까 후회 없이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는 식으로 가볍게 작품을 이해한 듯하지만 뭐, 그것도 이미 죽은 용사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바라는 것이라는 면에서 나쁘지는 않다.
8분 후가 이어지는 새로운 세계가 존재하는 결말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를 통해 관람한 세계 역시 이전에 있었던 또 다른 소스코드의 8분 후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넘어서야 할 무수히 많은 위험들과 모른 채 지나왔을 무수히 많은 위험들은 길게 뻗은 기차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그렇게 누적된 평화의 시간들은 하필 숀의 직업이 '역사' 교사인 이유와도 다시 연결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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