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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z의 감각 _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

그냥_ 2023. 10.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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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기상천외함이란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입니다.

 

 

 

 

 

# 1.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걸린 단편입니다. 누가 봐도 '그 이름'이 떠오를 법한 독특한 화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이형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죠.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한편도 아니고 <백조>, <쥐잡이 사내>, <독>까지 무려 4편이 연달아 공개되었습니다. 참! 잘했어요.

 

알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해전쯤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 RDSC)를 넷플릭스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해당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혹여 문학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면 로알드 달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마틸다>나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작품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거 쓴 작가예요.

 

주로 청소년을 위한 동화를 썼던 탓인지, 볼륨의 한계가 명확한 단편인 탓인지는 몰라도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까지 자극적이지는 못합니다. 오리엔탈리즘 특유의 신비로움을 적당히 버무려 낸 돈 많은 한량의 급발진 개과천선, 뭐 고딴 말랑말랑한 이야기니까요. 이번 작품의 매력 역시 언제나 그렇듯 감독의 스타일이 지배하고 또 견인합니다. 특유의 화면비, 인공적인 미장센, 파스텔 톤 색감, 과감한 카메라 워크와 감각적인 미술 연출, 이 모든 것을 프레임 단위로 쏟아내는 기괴할 정도의 롱테이크는 여전합니다. 미감을 자극하고 집중을 포획하는 독보적인 스타일은 과연 웨스 앤더슨이다 싶죠. 어차피 이야기는 그닥이라 말씀드렸으니 대놓고 연출에 대해서나 조금 이야기 나눠 봅시다.

 

 

 

 

 

 

# 2.

 

과학쟁이들 말에 따르면 우리는 4차원 시공간을 살고 있다 합니다. 3차원은 저나 여러분 모두 지금도 물리적으로 느끼고 있을 공간이고, 그 공간이 시간이라는 제4의 축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라는 것이죠. 3차원의 공간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만, 시간축만큼은 그저 흘러가고 있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뿐 감각화한다거나 필요에 따라 조정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속도에 따라 시간도 달리 흐른다느니 하는 상대성이론까지 가면 너무 복잡해지니까 적당히 넘어가도록 하죠.

 

웨스 앤더슨은 차원을 한 단계씩 떨어트림으로써 시간의 감각화를 시도합니다. 3차원의 공간은 2차원으로, 4차원의 시간은 3차원으로 떨어트리는 것이죠. 화면 위아래 수직을 x축, 좌우 수평을 y축, 스크린과 관객 사이 앞뒤를 z축이라 가정했을 때, x축과 y축이 만드는 영역을 최대한의 영화적 연출을 곁들여 공간으로 제한한 후 남은 z축에 시간을 할당합니다. 쉽게 말해 z축을 따라 화면에 다가가면 과거로, 거슬러 나오면 현재에 가까이 돌아오는 것을 감각으로 설득하려 한다는 것이죠.

 

영화의 서사란 이 z축을 넘나드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작품의 기상천외함 역시 z축의 이동에서 발생합니다. 로알드 달과 헨리 슈거와 Z. Z. 차터지와 임다드 칸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축의 이동 그 자체이지, 액자 안의 이야기도 밖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죠. 

 

 

 

 

 

 

# 3.

 

일반적인 액자식 구성의 경우, 관객의 시점이 고정된 상황에서 이야기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변화합니다. 3000년의 기다림과 같은 작품을 예로 든다면, 관객은 틸다 스윈튼의 알리세아 비니와 같은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 가운데 지니의 이야기가 시간에 따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전환될 뿐이라는 것이죠. 관객은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을 즐길 수는 있을 테지만 과거라는 시간대를 감각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머릿속에서 연대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죠.

 

반면, 이 작품은 관객과 이야기의 거리가 고정됩니다. 이야기가 z축을 타고 과거로 이동함에 따라 관객의 위치가 함께 변화한다는 뜻이고, 이는 곧 관객이 직접 시간의 변화를 탐험하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헨리가 카메라를 보는 동안 관객은 오프닝의 작가의 위치에 자리하게 됩니다. Z. Z. 차터지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관객은 그 이야기를 듣는 헨리의 위치로 옮겨갑니다. 다시 임다드 칸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관객은 의사 차터지의 위치로 들어갑니다. 여기서의 '들어간다'라는 감각은 z축의 이동이고 이는 곧 시간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말에서 헨리 슈거의 이야기가 작가 로알드 달이 존을 통해 들은 이야기라는 전개가 등장하는데요. 이 설정으로 인해 관객은 로알드 달과 같은 위계에 정체되게 됩니다. 앤딩에서 집시 하우스를 보여주는 순간까지 관객은 작가와 같은 레이어에 붙잡혀 있는 것이죠. 하지만 '로날드 달은 이야기를 버킹엄셔 그레이트 미센든의 작업실 ‘집시 하우스’에서 1976년 2월부터 12월에 걸쳐 집필했다.'라는 자막이 띄워짐과 동시에 관객은 작가의 레이어에서 튕겨져 나와 영화를 보는 현실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순간 느끼게 될 공허함은 역설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체험했을 기상천외한 시간감을 흔적으로서 증명한다 할 수 있는 것이죠.

 

등장인물들이 쉴 새 없이 화면을 넘어 관객을 직시하는 것은 단순히 제4의 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z축의 존재를 시선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대사 역시 단순히 수다스러움을 위한 수다스러움이 아닌 다소 불편함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이야기에 포획하기 위함입니다.

 

 

 

 

 

 

# 4.

 

그리고 웨스 앤더슨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놀라운 시도를 선보입니다. 시간 축을 타고 날아다니는 경험은 재미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히 기상천외하지 않다는 듯 말이죠.

 

감독은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사상(事象)의 경계를 붕괴시킵니다. 실화와 픽션의 경계, 내레이션과 재연의 경계, 연기와 연출의 경계까지 모조리 흐트러트립니다. 一인多역의 배우들은 각기 다른 레이어의 이야기 경험이 중첩되어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유도합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어느 순간 로알드 달의 옆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헨리 슈거의 옆에도, Z. Z. 차터지의 옆에도, 임다드 칸의 옆에도, 영화를 보는 현실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결국 웨스 앤더슨의 기상천외함이란 지극히 감각적인 것입니다. 축을 중심으로 설명드린 이야기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눈을 매료시키는 미술과 귀를 간지럽히는 사운드, 순식간에 이야기를 넘나드는 동안의 속도감과,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과 동시에 교감하는 듯한 존재감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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