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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눈 가리고 아웅 _ 인어공주, 롭 마셜 감독

그냥_ 2023. 5.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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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답이 뻔한데 왜들 이러실까.

 

 

 

 

 

 

 

 

롭 마셜 감독,

『인어공주 :: The Little Mermaid』입니다.

 

 

 

 

 

# 1.

 

인어공주는 결국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눈부신 붉은 머리와 경쾌한 안다다씨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과 별개로 서너 가지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의 가혹한 선택이라 요약한다 해도 무리는 없는 작품인 것이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 딜레마는 다들 아시는 대로 아름다운 [미모]와 인어라는 [운명]입니다. 에릭 왕자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마녀 우르슬라를 찾아가 [다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대가로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불하게 되죠. 이후 원작에서는 왕자와의 [사랑]과 물거품이 되어 잃게 되는 [목숨] 사이에서 선택하게 되는데요. 디즈니에 의해 각색된 후반부 역시 노예가 되어버린 [에리엘]을 구출하는 어드벤처가 아니라, 아버지 [트라이튼]과 딸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선택'이라는 테마만큼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에리엘이 겪는 딜레마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의 선택이 두 번째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요. 반복되는 인과의 연쇄가 만드는 연속성은 일련의 딜레마를 특별한 상황에 의한 특별한 선택이 아닌, 인생이란 가혹한 선택의 연속이라는 주제의식으로 확장되게 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겸허하게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본 작을 상징하는 안다다씨(Under the Sea)는 그 자체로 명곡인 것과 별개로, 바다의 아름다움보다 그런 아름다운 바다를 포기하게 만드는 선택의 비극을 대비시킨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닷속 세상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노래가 매력적이면 매력적일수록. 그런 바다를 포기하는 에리엘이 겪게 되는 딜레마와 에릭에 대한 사랑은 역설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죠.

 

 

 

 

 

 

# 2.

 

작품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드렸는데요.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가 작동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첫 번째 딜레마가 설득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어공주의 시나리오 속에 배치된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은 다름 아닌 [에리엘은 이쁘다]라는 것이죠.

 

에리엘이 겁나 이뻐야 저렇게 이쁜데 다리가 물고기라는 안타까움과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 갈등이 충분한 권위를 얻어야 이후 아름다운 목소리와 다리 사이에서의 갈등이 다시 작동할 수 있죠. 우여곡절을 지나온 에리엘이 충분히 사랑스러워야 저렇게 사랑스러운 에리엘이 물거품이 되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작동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에리엘이 충분히 사랑스러워야 저렇게 사랑스러운 그녀가 노예가 된다는 안타까움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본연의 아름다움과, 미성의 목소리, 내러티브에 힘입은 사랑스러움은 이야기의 근간을 떠받치는 세 개의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미모는 두어 시간 남짓한 동안 이야기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관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니죠. 에리엘의 미모가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어공주의 하반신이 물고기임에도 크게 안타깝지 않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가혹한 선택'이라는 핵심 코드의 권위 역시 추락하고 말죠.

 

 

 

 

 

 

# 3.

 

구분해야 할 것은 '영화 속 여주인공은 무조건 미인이어야 한다'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첫눈에 반할 만큼의 미모는 아닐지라도, 볼수록 매력적인 주인공이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훌륭한 로맨스 영화들도 차고 넘치니까요. 그런 작품들은 대게 인간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다룬 작품들이고, 때론 의도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평가되기도 하는 외형의 주인공을 내세워 극적인 대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속 낸시와 같은 경우죠.

 

반면 인어공주는 인물과 교감하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린 호흡으로 추적하는 류의 작품이 아닙니다. 주인공이 누구나 매료시킬 법한 미모의 존재라는 것은, 설득의 결과물이 아닌 주제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전제에 불과합니다. 그런 작품에서라면 주인공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선 보편 다수에게 공감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미인이어야 이후 내러티브가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미인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식의, 좋게 말하면 고전적인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해당 문제의식을 현대적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주하고 재해석하기 위해 레게 머리를 한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를 제안하는 것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죠.

 

다만 그랬다면 가장 밑바닥의 작동원리부터 주제의식까지 깡그리 새로 세울 정도의 각오도 함께 햇어야 합니다. 인어공주라는 오래된 동화에서 모티브 정도만 빌려온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었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2019년에 개봉한 <라이온킹 리포지드>마냥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보드를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서사와 주제의식은 30년 전 것을 통째로 가져오면서, 특정한 사상적 목표를 위해 세팅만 정반대로 돌려놓았다는 건데요. 당연히 굴러갈 리가 없죠.

 

 

 

 

 

 

# 4.

 

개인적으론 인어공주는 무조건 백인의 빨간 머리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다양성이고 얼마든지 새로운 변주와 조작은 환영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당장 스파이더 맨만 하더라도 손목에서 거미줄 나가는 버전(샘 레이미 시리즈), 슈트에서 나가는 버전(홈 커밍), 흑인 - 히스패닉 버전(뉴 유니버스), 여자 버전(스파이더 그웬), 떼로 몰려나오는 버전(노 웨이 홈) 다 나오는 마당에 인어공주에 변주 좀 하는 게 뭐 그렇게 대수라구요. '나의 에리엘은 그렇지 않다능'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담백하게 89년 원작을 원 없이 다시 보시면 됩니다. 있는 영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의 영역을 벗어난 심각한 역사 왜곡 같은 것도 아니니까요.

 

이 영화의 문제는 그냥 주제의식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가 무너진 망작이라는 것뿐입니다. 물론 관객들이 느끼는 PC에 경도된 문화예술계의 블랙워싱과 진저 캐릭터를 지워나가는 경향에 대한 성토는 심정적으로 공감하긴 하지만요.

 

 

 

 

 

 

# 5.

 

끝으로 영화로 돌아와서 내러티브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말하는 해산물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걸 호평하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리얼한 해산물이 좋으면 영화관이 아니라 수산시장을 가면 될 텐데요. 마찬가지로 내러티브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노래만 잘 부른다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걸 호평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잘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으면 영화관이 아니라 콘서트를 가면 될 테니까요. 혹자는 이 영화의 논란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혐오 문제와 결부시키는 류의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듯 보이는 데요. 황당합니다. 이 영화가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왕자였더라 하더라도 왕자는 겁나 멋지고 잘생겼어야 했다는 지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테기 때문이죠.

 

그 외에 작품의 톤을 어떻게 잡고 싶었던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지나치게 어두운 화면과, 라이온킹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 누구도 원치 않는 쓸데없이 불쾌한 리얼함, 주연 배우를 비롯한 일부 출연진의 수준 미달 연기력 등 지적하자면 3박 4일도 부족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만, 수차례 반복적으로 말씀드린 대로 작품이 무너진 상황이라 추가적인 비판은 무의미하다 생각하기에 이 정도로 갈음하겠습니다. 롭 마셜 감독, <인어공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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