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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놀랍게도 전현무 아님 _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그냥_ 2023. 9.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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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가시가 있는 것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후쿠다 유이치 감독,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입니다.

 

 

 

 

 

# 1.

 

일본의 작가 아오야기 아이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실사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해당 분야에 조예가 없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라노벨(ライトノベル)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제목이군요. 대충 찾아보니 나름 시리즈물인 듯합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본작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역시 시체가 있었습니다>를 지나 올해 8월 나온 신간의 제목 역시 <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라고 하는데요. 역시, 여행이라면 시체 하나쯤은 만나야 제맛이죠.

 

그림 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에서 여행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붉은 두건에서 탐정의 이미지를 추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썩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듯 보입니다. 고전적인 테마를 끌고 와 만들어 낸 어릴 적 한 번쯤은 읽었을 동화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는 듯한 감각은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주요 장르와 무관하게 일정한 재미의 하한선을 보장하고 있죠. 조작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동화의 감성과 가장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살인 사건'이라는 면에서 라노벨 특유의 불량식품을 먹는 듯한 자극적인 맛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괴랄한 문장형 제목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될 듯합니다.

 

 

 

 

 

 

# 2.

 

사실 일본 실사 영화라는 것만큼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은 작품군도 없고, 또 그 부정적인 선입견을 따박따박 성실하게 증명해 온 작품군도 없을 겁니다. 다만, ANIME 특유의 과장된 만화 표현을 고스란히 옮기는 실사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고전 동화를 가져오고 있기에 표현에 한계가 있기도 하구요. 메가폰을 잡은 감독 후쿠다 유이치가 특유의 병맛을 영화로 옮기는 데 썩 능한 감독이라는 점은 다행이라 해야겠죠. 덕분에 작품 전반의 톤은 민망함보다는 귀여움과 쑥스러움에 가깝게 연출되고 있긴 합니다. 공감성 수치에 약한 사람들도 무난하게 볼 수 있을 법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등장인물 일반은 동화적 문법 안에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가상의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작위적인 인상마저 느껴지죠. 반면 주인공 빨간 모자만큼은 훨씬 편안한 정극의 톤으로 연기하는데요. 여타 등장인물들의 연극적인 연기와 표현들을 놀리는 장면들은 이 같은 연기톤의 구분이 의도된 것임을 추측케 하죠. 덕분에 관객은 '오래전 쓰인 이야기 대로 흘러가는 합의된 동화의 세계'와 '빨간 모자의 눈을 빌린 관객과 함께 하는 현실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고, 이는 관객들이 민망해할 법한 포인트들을 상당 부분 희석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도입에서 빨간 모자와 마법사 바바라의 장면에서, 두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할 수 있겠죠.

 

 

 

 

 

 

# 3.

 

서사는 전현무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가고는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아름다움은 다시 ⑴ 타고난 미모, ⑵ 꾸며낸 미모, ⑶ 내면의 미모라는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죠.

 

등장인물들은 타고난 아름다움 보다는 화려한 드레스나 길고 아름다운 헤어 스타일과 같은 꾸며낸 미모를 중시합니다. 꾸며진 미모는 자연스럽게, 마구간에 살고 있던 신데렐라의 처지와 하늘 높이 치솟은 성의 대비로 상징되는 '경제력'과 관계됩니다. 경제력은 다시금 '소유'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죠.

 

영화 속 모두는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화 나라의 여자들은 왕자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자, 왕자를 소유하기 위해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현무 닮은 왕실 미용사는 아름다운 머리카락뿐 아니라 미모를 만드는 능력까지 독점적으로 탐하는 사람이었구요, 마부 생쥐조차 영화 내내 치즈와 와인을 게걸스럽게 탐하죠. 신데렐라 역시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면에서만큼은 동일합니다. 하다 못해 의붓언니 마고 조차 식탐이 많다는 면에서 욕심이나 소유라는 코드는 이어집니다.

 

영화의 스토리 속에서 소유하지 않는 사람은 왕자의 행복을 위해 그와의 사랑을 포기한 레미와,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아름다움에 대한 삐뚤어진 세계를 상징하는 왕관을 버린 왕자뿐이었는데요.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이 같은 '소유'와 관련된 작품의 주제의식에 따른 필연적 결말이라 할 수 있겠죠.

 

 

 

 

 

 

# 4.

 

관객들은 분명 영화 속 세계에 위화감을 느꼈을 겁니다. 치장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으니 비합리적인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만큼이나 관객 역시 편협합니다. 영화의 반전이 신데렐라가 범인이라는 것으로 짜여 있다는 것은 관객이 신데렐라를 신뢰했음을 전제하는 데요. 관객이 신데렐라를 신뢰하는 이유는 고작 이름값이 보증하는 타고난 미모뿐이죠. 마찬가지로 수갑에 채워지는 왕자는 범인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당연히 계모와 언니들이 악당일 것이라 지례짐작했겠죠.

 

계모와 언니들은 꾸며낸 미모를 근거로 신데렐라에게 가혹하고, 관객은 타고난 미모를 근거로 계모와 언니들에게 가혹합니다. 두 가혹함은 그 근거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사고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죠. 일련의 반전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 역시 비합리적이게도 겉으로 드러나는 미모와 도덕성을 연결하고 있었음을 자백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아름다움을 역설합니다.

 

바바라와 테클라의 마법이 환상적이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한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드레스, 멋들어진 헤어스타일, 눈부신 유리구두로 상징된 꾸며낸 미모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왕자와 이루어지게 된 레미의 '얼굴에 큰 상처가 있다'는 점입니다. 관객이 신뢰하는 타고난 미모라는 것 역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는 면에서 허무한 마법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사라지지 않는, 훼손되지 않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 뿐입니다. 일련의 주제의식은 다름 아닌 행복이 가득한 왕자와 레미의 표정으로 완성됩니다.

 

마을을 떠나는 빨간 모자의 한 마디. "아름다운 것엔 가시가 있기 마련이구나"라는 대사는 사실 주제의식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주제의식이란 오히려 "가시가 있는 것들에도 그 내면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구나"라는 것이기 때문이죠.

 

 

 

 

 

 

# 5.

 

추리극의 기준에선 너무 가볍기는 합니다. 살인 사건을 놓고 추리물을 만든다기에는

 

"개 빡친😠 빨간 모자가 사백안😳을 뜨고 추리🧐를 휘리릭하면

막 몽땅 다 해결😎된답니닷! ☆★ 데헷!!😜"

 

 

... 이 미스터리의 전부라 관객은 상당히 수동적인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 '휘리릭'의 근거를 관객에게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면 또 모를까. 추리의 내용 자체가 상당 부분 직감과 우연에 기대고 있어 빈말로라도 완성도가 높다 하기는 힘든 거겠죠. 사실 신발이 두 켤레였다. 적당히 마법사들이 못 알아봤을 거다. 적당히 비둘기 무덤에 신발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이런저런 증거를 흘리고 다닌다더라라는 식으로 뚝딱뚝딱 설득될 만큼 미스터리라는 게 만만하진 않습니다.

 

미스터리물로서의 기대는 내려놓으시는 게 좋을 테구요. 연극의 감각으로 가볍고 경쾌하게 동화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미모의 배우들 구경하고, 이수근 닮은 생쥐 집사의 코미디전현무 닮은 왕실 미용사의 열연를 깨알같이 찍먹 하면서, 겸사겸사 아름다움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정도의 느낌으로 보면 괜찮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후쿠다 유이치 감독,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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