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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한 편의 걸작 두편의 부록 _ 매트릭스, 더 워쇼스키즈 감독

그냥_ 2023. 3.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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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를 이야기하며 인식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를 보며 트릴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더군요.

 

 

 

 

 

 

 

 

더 워쇼스키즈,

『매트릭스 :: The Matrix』입니다.

 

 

 

 

 

# 1.

 

혹자에겐 거리감 있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허황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철학입니다. 특히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몇몇의 이과적 인간들에겐 더욱 그러한데요. 요런 류의 인간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이죠. 인생에서 가장 시니컬하던 시기였던 학창 시절. 성리학의 이기론이니 주기론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 검증 조차 할 수 없는 저딴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걸 넘어, 저러고 있었으니 나라가 망하지(...)라는 날 선 비난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새삼 그런 편협하던 인간이 십수 년이 흘러 영화 보고 책 읽고 미술관 다니는 게 취미가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돌이켜보면 처음은 그냥 흥미롭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의 체게 속에서 논리를 쌓아나가는 과정이, 마치 수학이나 과학에서 수식을 쌓아나가는 재미에 문학적 고상함이 더해진 버전 정도로 느꼈더랬죠. 유니버스 속에서 평범한 분자들이 특정한 배열로 이루어진 먼지보다 사소한 부속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점차, 인식하는 인간 마다마다에 하나씩 우주가 할당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늦게 온 사춘기 같은 생각에 잠 못 이룰 무렵. 우연히 본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였더랫습니다. 이전 같으면 재빨리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서점 인문학 섹션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서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준 작품인 것이죠.

 

 

 

 

 

 

# 2.

 

사실 매트릭스에서 다루고 있는 관념론은 그렇게 특별하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깊이가 있다거나 새로운 통찰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 영화가 철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식의 평은 역으로 학문을 너무 낮잡아 보는 것일 테니까요.

 

영화 매트릭스의 진짜 힘은 관념론이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화두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아니 집어삼키는 압도적인 설득력이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겁니다. 주제 의식에 대한 흥미 여부, 동의 여하와 무관하게 관객은 단순한 네오의 화려한 액션과 트리니티의 간지라거나 몇몇의 영화 기술적 만족감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하는 이 세계가 통속의 뇌와 같은 메트릭스가 아닐까라는 핵심 화두를 되뇌며 극장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죠. 대단히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디스토피아적이기도 하도 사이버펑크적이기도 한 SF 세계관 위에 제시하면서도, 그 속에서의 부차적 포인트로 감상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제의식으로 묶어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통제력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극장을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직업 어떤 나이 어떤 성별인지와 무관하게 극장을 나섬과 동시에 죄다 철학자로 만들어버리는 영화였으니, 개봉 당시의 충격이란 새삼 대단한 것이었죠.

 

 

 

 

 

 

# 3.

 

한창 Y2K니 뭐니 사이버 사이버한 테마에 온 세상이 빠져있던 당시. 워쇼스키즈가 제시하는 미래 사이버펑크 시대의 서막과 대비되는 꿈도 희망도 없는 디스토피아의 제안은 파괴적이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던 네오 이전의 설정과 배경을 풀어낸 애니메트릭스는 그 자체로 위대한 실험이라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창조적인 세계관 위의 내러티브는 신화와 종교에서 많은 부분의 모티브를 가져옵니다. 이젠 다들 너무나 잘 아실 트리니티와 모피어스와 네오라는 이름의 의미와 같은 요소라거나, 구원자와 인도자와 예언자의 관계와 구도, 유다에서 영향을 받은 사이퍼라는 인물의 존재 등은 파괴적 상상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이야기에 몰입해 네오와 동행하도록 돕습니다. 여기에 당대 그래픽 기술의 극한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상미와, 한 밤에도 선글라스 쓰고 림보를 하게 만드는 ost까지 완벽하죠.

 

짐짓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대척점의 요소들이 일체의 부대끼는 바 없이 주제의식 아래 예리하게 소집됩니다. '현대의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하게 선택해서 독창적으로 배열하는 능력'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평은 과연 탁월한 통찰이 있다 할 수 있겠죠. 다만 그렇기 때문에 2편과 3편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매력이 창조에 있다면 새로운 창조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이미 비범한 조합이 끝난 상황에서의 속편은 사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 4.

 

앞선 백 투 더 퓨쳐의 글에서 매트릭스 시리즈는 한 편의 걸작과 두 편의 부록이라 말씀드린 것처럼 후속 두 편은 적지 않은 논란과 함께 호불호를 타고 말았는데요. 개인적으론 플롯 상의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첫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메트릭스 그 자체이고 관객이 흥미로웠던 것은 매트릭스라는 세계관 그 자체였던 것에 반해, 속편부터는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 네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으며 그 속에서의 프로그램들을 무찌르는 히어로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이미 세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난 상황에서 그 세계 안을 아무리 탐험해 봐야 시시한 것은 당연합니다.

 

속편을 처음 본 당시에는 뭐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는데 억지로 속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처럼 보이는 맛이 있었더랬습니다. 연말 시상식 수상소감을 하러 가서 하나님 부처님 엄마 아빠 다 찾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 인사하려는데, 무대 아래 PD가 1분만 더 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 그래서 음... 어... 할... 머니도 감사드리구요. 라면서 억지로 썰을 푸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죠. 영화로 말씀드리자면, '여기 액션도 하나 더 보시구요. 스미스 좋아하시길래 겁나 많이 늘려봤거든요. 배드신도 겁나 길게 찍었으니까 보시구요.' 하면서 덤을 주섬주섬 챙겨주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달까요. 

 

다만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4편 리저렉션까지 보고 난 최근엔 그냥 워쇼스키즈는 처음부터 네오를 이야기하고 싶었는 데 첫 편이 너무 잡 뽑히며 얻어걸린 게 아닐까?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긴 했습니다. 너무 시니컬한 것 같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편에서도 특유의 세계관과 서사가 확장되는 재미는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스타일로 쏟아내는 액션 쾌감은 역시 폭발적이죠. 네오가 스미스 떼를 개같이 패는 장면이라거나, 슈퍼맨 못지않은 초고도 초고속 비행 장면, 트윈스의 화려한 액션 묘사라거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총알 피하고 막는 장면 등은 다시 봐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더 워쇼스키즈, <매트릭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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