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I'm pretty much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
리들리 스콧 감독,
『마션 :: The Martian』입니다.
# 1.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희대의 명문으로 시작하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마션은 주인공의 숙고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된다. 우주 탐사 중 예기치 못한 폭풍으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우주 모험을 넘어 인간의 생존 의지와 연대의 가치를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장르를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적인 탐사대의 활동이 갑작스러운 모래폭풍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은, 관객을 긴장감 넘치는 생존 드라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그래비티>(2013)나, <인터스텔라>(2014)와 같은 동시대 우주 영화들과 차별되는 중요한 포인트다.
과학적 정확성과 드라마적 요소의 균형은 작품의 매력이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이 가진 과학적 디테일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 흥미를 잃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화성의 토양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장면은 실제 과학적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의 유머러스한 독백을 통해 지루함을 덜어낸다. "거만하게 들리고 싶진 않은데 난 이 행성 최고의 식물학자야."라거나, "화성은 우주조약에 의해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고, 그런 경우 해양법에 의해 공해로 취급되며, 그 공해에서 미국 선적의 선박을 탈취해 사적으로 이용할 작정이니... 우주 해적이다! 우주 해적이라고!"라는 대사는 영화가 지향하는 낙천적인 과학 너드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 2.
전반부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의 창의성과 끈기로 점철된다. 모아둔 인분을 활용해 감자를 재배하는 등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발한 해결책은 영화의 경쟁력 중 하나다. 탐사 차량의 배터리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를 이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고립 상황에서 와트니의 정신 유지 또한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다. 동료 비행사들의 디스코 음악과 낡은 TV쇼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일지를 쓰며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흘러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후반부 또렷한 눈빛과 깡마른 몰골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한편, 지구에서는 와트니의 생존이 알려지며 구조 작전이 진행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과 앤지니어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중국 국가항천국(CNSA)이 자국의 우주 자산을 공유하는 장면은 우주 탐사라는 범인류적 영역에서의 종(種) 단위의 공동체 의식과, 국적에 따른 이해관계를 극복하는 과학정신을 강조한다.
와트니의 생존 투쟁과 지구의 구조 작전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까마득한 우주적 스케일의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인류 정신의 힘을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 이를테면 통신 장비 고장이나 로켓 발사 실패 등의 다소 상투적인 위기가 개입해 관객을 편리하게 긴장시킨다.
# 3.
사실 영화만 본 관객들은 인지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지만, 원작 소설에 비해 상당한 타협이 이루어진 작품이기는 하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변경했다. 소설에서는 제법 상세하게 다뤄진 화성 대기의 산소 생성 과정이 간략히 처리되는 것 등은 대표적이다. 화성의 대기압으론 사람을 날려버릴 정도의 폭풍이 불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 역시 무시된다. 스스로 과학적 정확성을 과시하는 SF 작품이니만큼 일련의 타협에 대한 지적은 감수해야 한다.
캐릭터의 단순화는 조금 더 엄격히 지적될 수 있어 보인다. 보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었던 등장인물들은 영화화 과정에서 단순화되었고, 이는 과도한 낙관주의라는 한계에 봉착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주인공 와트니는 관객과 같은 정신을 공유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신화 속 희망의 신의 현신으로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거나, 계획 일체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조차 농담을 던지는 장면들은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직면한 위험과 고립의 심각성은 그의 단조로운 캐릭터성으로 인해 희석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마지막 위기 극복의 권위 역시 함께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소소하게 미국과 중국의 우주국이 협력하는 장면은 유아적이다. 현실의 우주 개발 현장은 국가 간 경쟁이 가장 첨예한 곳으로, 아무런 갈등이나 조정 과정 없는 협력은 작품 특유의 낙관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편의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전개라 평해도 할 말은 없다. 감독은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협력하면 보기 좋다는 식의 유아적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배워야 할 바보는 많지 않다.
# 4.
극단적인 재난을 탈출하는 주인공의 인간 승리는 우주 탐사의 위험성과 그 자치에 대한 질문은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NASA 국장 테디 샌더스와 프로그램 책임자 빈센트 캐포의 논쟁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쓰는 게 옳은 인인가를 넘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수의 수명을 희생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은, 주인공의 위기에 곁들여 우회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클라이맥스에서 귀환을 위한 스펙터클 어드벤처가 장르적으로 연출되고, 귀환 후의 삶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를 통해 주제의식을 다시금 정리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대중친화적인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생환 후에도 후보생을 교육하는 것은 인류의 우주 탐사 의지가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우주에서 뭔가 잘못될 수 있다. 그때 넌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포기하거나 시작하는 거지"라는 대사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로서, 사실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우주'라는 글자 대신 '삶'을 집어넣은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인가. 과학 기술과 우주 개발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국제 협력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좁힐 수 있는가. 라는 화두들과,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위기를 극복하는 개인의 저력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는 면에서 생각보다 품이 더 넓은 영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맷 데이먼의 SF 생존기를 원 없이 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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