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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얼음으로 들어가 불로 나온다 _ 디스트릭트 9, 닐 블롬캠프 감독

그냥_ 2023. 3.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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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볼 영화가 없다는 건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그저 '지금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을 뿐이죠.

 

 

 

 

 

 

 

 

닐 블롬캠프 감독,

『디스트릭트 9 :: District 9입니다.

 

 

 

 

 

# 1.

 

여러분께서 이 글을 언제 읽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3년 3월 중순인 지금 국내 영화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재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던 슬램덩크가 400만을 훌쩍 돌파하고, 팬이 많은 만큼 중2병이란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니던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가 300만을 노리고 있는 요즘이죠.

 

포스트 코로나의 수혜를 다른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받고 있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합니다. 영화로 밥 벌어먹고사는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겐 신기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부분은 급격하게 오른 티켓값에 대한 성토와,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개봉하고 있는 창고 영화의 퀄리티에 대한 비난이 차지하고 있는 양상이죠. 직전 글에서 이야기한 <멍뭉이>는 영화 팬들의 누적된 불만이 마냥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창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웅남이>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 듯 보이는군요.

 

개봉일에 맞춰 스즈메를 본 후로 영화관에 간지 벌써 보름이 넘었으니 볼 영화가 없기는 합니다. 간신히 <소울메이트> 정도를 아껴 먹으려 남겨두고 있는 정도죠. 원작인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의 주동우는 중화권 배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배우인데요. 그녀만큼이나 좋아하는 김다미가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큽니다.

 

 

 

 

 

 

# 2.

 

잡설은 여기까지 하구요. 그래도 팬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건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을 수는 있어도 '볼 영화'가 없을 일은 없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없어 미쳐 보지 못했던 훌륭한 작품들 뿐 아니라, 다시 봐도 재미있을 작품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어떤 영화가 좋을까 리스트를 긁어보다 문득 <디스트릭트 9>의 파괴적인 포스터에 눈길이 꽂히고 말았습니다.

 

# 3.

 

아직까진 원 히트 원더, 닐 블롬캠프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자 '출세작'입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무식하게 거대한 우주선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 수백만에 달하는 굶주린 외계인이 들어 있었다.라는 정신 나간 상상력과 자신의 상상력을 밀고 나가는 힘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처음 디스트릭트 9가 개봉하던 당시 SF 마니아들이 쏟아내던 호평은 지금도 대단한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많이들 아시는 대로 작품의 가장 큰 의미는 파괴적인 SF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근간에 닿아있는 주제의식이었습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대한 강렬한 풍자가 바로 그것이죠. 흑인 집단 주거지역 디스트릭트 6을 대놓고 비튼 노골적인 제목처럼 감독의 시선은 분명한 것이었고, 이처럼 디스트릭트 9에서부터 시작된 남아공 사회의 뿌리 깊은 소수자 문제는 이후 닐 블롬캠프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4.

 

작품은 크게 얼음의 전반부와, 불의 후반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세계에 대한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의 비판이고, 이 같은 방향성을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특유의 현실감 넘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연출법이었죠. ⑴ 불쾌한 것으로 치부되는 외모, ⑵ 폭력성을 증명하는 높은 범죄율, ⑶ 기대하기 힘든 경제적 기여, ⑷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한계 따위의 당대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프런이란 존재를 창조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던 백인들의 사고를 인류 전체로 확대해 배타하는 인간의 폭력성을 폭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도발적이고 또 성공적입니다. 차별해 마땅한 것만 같은 설정을 온데 끌어모은 프런들을 배타하는 영화 속 사람들과, 그들의 무분별한 배타를 짐짓 정당하다 느낄지도 모를 관객의 내면이 서늘하게 전시되는 광경은 충격적이죠.

 

후반부에 접어들어 영화는 스크린과 녹화 영상이라는 두 개의 레이어로 보호받고 있던 주인공 비커스를 끄집어내어 관객 앞에 앉히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인간에서 프런으로 추락해 버린 인물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장르적으로 묘사하는, 그야말로 불의 파트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죠. 차별의 선을 디스트릭스 6에서 디스트릭트 9로 더 멀어지게끔 옮길 수 있다면 역으로 디스트릭스 3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차별의 선이 옮겨져 스스로 '안전'하다 믿던 당신을 밖으로 밀어냈을 때에도 여전히 같은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주인공 비커스를 과격하게 집어던지는 방식으로 전개합니다. 감독 특유의 현장갑 높은 연출적 기교와, 과감하면서도 효율적인 폭력 묘사, 페르소나 샬토 코플리의 열연 등과 맞물려 후반부의 육중한 감정선 역시 나름의 성취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수작 정도의 평가는 넉넉히 받을 법한 뛰어난 작품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죠.

 

 

 

 

 

 

# 5.

 

다만 얼음의 문제의식에서 불의 감정선으로 전환되는 동안 문제의식이 상당 부분 휘발되기는 합니다. 장르적으로 얼음 같던 영화가 불로 전환되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그 과정에서 주제의식까지 손에서 놓쳐버리면 곤란하죠.

 

전반부부터 누적되던 특유의 비판적인 시각을 잃고 장르적인 표현, 이를 테면 다양한 외계인 무기의 연출이나 지하에 숨겨진 홀로그램 우주선 따위에 영화가 잠식되며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끝내 멈추고 맙니다. 과격한 상상을 제시한 것에 걸맞은 통찰이 시나리오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충분히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문제죠.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이후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서서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 있어 치명적인 이유가 됩니다.

 

최소한의 대안과 통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감정은 공허합니다. 거시적이고 시대적이기도 한 사회적 현상의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것이 고작 공포와 사랑이라면 심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관객에 따라선 '결국 유동체 뒤집어쓰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잖아?' 라거나 심지어 '프런들이 모선을 타고 달아나지 못하게 더 확실하게 밟아버렸어야지!'라는 괴랄한 결론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결말이랄까요.

 

전반부의 얼음을 잃은 것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후반부 불의 완성도 자체도 다소 부족하긴 합니다. 특유의 폭력적인 스타일의 액션을 제외하면 다양한 외계인 무기로 대표되는 SF설정놀음, 우연히 겁나 똑똑하게 태어난 크리스토퍼 아들이 온갖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개 등은 결말에 다가갈수록 지루한 스페이스 오페라로 추락한다는 일부의 평에 대한 정당한 근거라 할 법합니다. 닐 블롬캠프 감독, <디스트릭트 9>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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