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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오만의 반성문 _ 판타스틱 플래닛, 르네 랄루 감독

그냥_ 2024. 5.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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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역사의 단편으로 작성한 오만한 인류의 반성문

 

 

 

 

 

 

 

 

르네 랄루 감독,

『판타스틱 플래닛 :: La Planete sauvage』입니다.

 

 

 

 

 

# 1.

 

'197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소개만으로도 흥미를 부르기 충분하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멸망한 인류의 후손 옴(Om)이 거대한 파란색 외계인 드라그(Dragg)에게 억압당하는 이야기를 환상적인 미감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프랑스 SF 소설가 스테판 울이 1957년 발표한 소설 <Oms en série>을 원작으로 한다. 체코의 이지 트릉카(Jiří Trnka) 스튜디오와, 프랑스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 롤렌드 토포르의 협업은 그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옴은 인간의 프랑스어 Homme에서 음가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옴의 과거를 기록한 슬라이드는 몰락한 지구로 추측되는 데, 시대적 맥락을 생각하면 냉전이 발화하여 상호확증파괴가 실현된 인류로 이해하면 무난하다. 냉전의 긴장에 대한 권태와 핵전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투사된 포스트-아포칼립스는 당시로서는 익숙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대규모 전쟁 후 문명을 잃고 퇴행한 인류, 그런 인류를 대신해 행성을 지배하는 강력한 종족,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지도자의 구성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혹성 탈출(1968)> 등이 연상되기도, 이후 선지자의 행보에서는 출애굽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드라그의 행성에 복속된 옴들은 쥐나 개미 따위의 유해동물, 혹은 개와 같은 애완동물로 취급된다. 드라그들은 옴을 어떻게 어떤 주기로 박멸할 것인가 공개 토론하기도 하고, 무신경하게 개미를 가지고 놀듯 짓밟기도 하며, 목줄을 채우고 옷을 입혀 인형의 집에 넣기도 한다. 어린 드라그의 장난에 엄마를 잃은 옴 '테어'는 드라그 의장 씬의 외동딸 '티바'의 손에 애완동물로서 자란다. 드라그의 학습용 헤드폰을 통해 우주의 지식을 배운 테어는 티바의 품에서 달아나 야생의 옴들과 만나고, 그들을 이끌어 독립된 자신들의 영토를 쟁취한다는 전형적인 영웅서사다.

 

 

 

 

 

 

# 2.

 

영화는 몽환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명상적이지만 폭력적이다. 정적이지만 역동적이고, 그로테스크하지만 자연적이다. 신비로운 푸른색 세계, 생생한 팝 아트적 색감, 롤렌드 토포르 특유의 기괴한 이미지는 인상적인 결과물을 창조한다. 모든 컷을 손으로 그린 날것의 질감은 대단히 감각적이다. '만든 이의 혼이 담긴 듯하다'는 누군가의 찬사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디자인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시대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비약적인 건물과 기괴한 외계 생물의 파노라마는, 세계가 위험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옷을 짜는 붉은 거품을 뿜는 기괴한 달팽이, 보는 이조차 경직시키는 다안생물, 스스로 생장하며 옴을 포획하는 수정, 개미핥기처럼 빨아 당기는 날개 달린 괴물 따위다. 이들의 카리스마는 다시 압도적인 드라그의 존재감으로 이전된다. 적대적 풍경의 경외감과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득함에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험욕구가 좌절되지 않는 건 디자인의 힘이다. 일련의 초현실적인 코즈믹 호러는 <걸리버 여행기(1726)>의 낭만적 환상이 거칠게 추락하는 느낌을 주는데, 마치 러브크래프트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각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알랭 고라게의 사운드 트랙은 미술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몇몇의 비프음이 반복적으로 조합된 패턴 사운드를 던지는 무책임한 접근 대신, 그 자체로 완성도 있는 사운드트랙을 완성한다. 실험적이고 째지(Jazzy)한 음악은 생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임에도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몰입을 유지하는 데 기여가 있음에 분명하다.

 

 

 

 

 

 

# 3.

 

영화는 강력한 알레고리의 통제 위에서 작동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일체가 명확한 캐릭터라기보다는 개념적 존재로 활용된다. 감독은 작품이 은유하는 시스템의 위화감과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요구한다. 드라그와 옴은 억압자 집단과 피억압자 집단으로 구분된다. 억압자 집단은 어떤 나태한 생각으로 피억업자를 대하는지, 피억압자는 어떤 제약을 넘어 투쟁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빌려 묘사한다. 물론 억압자 집단의 행동양식뿐 아니라 피억압자 집단의 상호불신과 내부갈등, 패배주의 따위를 다룸에도 성실하다.

 

옴은 인간과 같게 그려지지만, 드라그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는 억압자가 작성한 역사의 역(逆)이다. 현실의 역사는 드라그의 기록으로, 인간인 드라그들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인간이 아닌 옴에 대한 핍박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부조리는 미국의 인권운동과, 프랑스의 알제리 학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소련과 동유럽의 착취적 관계 등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하는 억압자들이 열등하다 결정한 피억압자들을 차별하고 학살했던 기억을 모아 모자이크 하며 자기 성찰적으로 조소한다.

 

 

 

 

 

 

# 4.

 

물론 위의 방법론에 대해 일부는 노골적인 알레고리뿐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기술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공명은 할 수 없었다. 보기를 아주 잘했지만 두 번 다시 볼 생각은 없다.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조잡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포르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을 전개시키기에 적당한 원작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 영화에서 주제가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토포르의 세계가 명백하게 영화 속에 창출되어 있었다." 비판했는데, 동의되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반전, 인권, 평등, 자유와 같은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지극히 미래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다는 면에서 의의는 분명하다. SF 소설을 좋아한다거나, 독특하고 이질적인 상상을 좋아한다거나, 역사적 사건의 함의를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면 만족스러울 것이고, 50년의 시간을 감안할 아량이 있다면 더욱 만족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고작 72분의 런타임을 투자할 정도의 가치는 넉넉하다. 그 미야자키 하야오조차 어쨌든 한 번은 재미있게 보았다지 않나.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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