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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착각의 늪 _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그냥_ 2023. 5.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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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자기감정에 속기도 하거든요."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The Super Mario Bros. Movie입니다.

 

 

 

 

 

# 1.

 

이 영화를 리뷰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 2.

 

극장을 나서며 든 첫 번째 생각입니다. 이 작품은 마리오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영화라는 그릇을 빌린 [마리오]였기 때문이죠. 좋게 말하면 칼 같은 손익계산에 힘입은 영리한 초정밀 타게팅 상품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하게 말한다면 팬심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서비스 덩어리라 해도 무리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마리오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마리오가 벌이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을 위한 요소는 그냥 전무하다 해도 무방합니다.

 

글자 그대로 팬서비스에 전력합니다. 모든 시퀀스는 게임 시리즈의 스테이지 구성에 종속됩니다. 모든 컷은 인게임 장면 장면에 대응됩니다. 표현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동안 상상했을 모습을 구현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버섯과 파이프와 불꽃과 무적 별과 거북 껍데기와 동킹콩과 마리오 카트와 이를 마주하게 되는 익숙한 1P 파티는 팬들의 노스탤지어만을 집요하게 공략합니다. 그 아래를 받치는 ost, 아니 bgm 역시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내러티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떠올리게 될 수많은 마리오 게임 속 전설적인 스테이지들을 재연하는 방식으로만 소비되고 있죠.

 

 

 

 

 

 

# 3.

 

그 외는 없습니다. 아무튼 쿠파는 나쁜 놈이니까 다 같이 쳐들어가서 죽이자 뿐입니다. 아무튼 콩 군단이 필요하다니까 만나러 갈 뿐입니다. 전개는 익숙한 게임 스테이지들을 조각모음해 나열할 뿐입니다. 도입의 펭귄부터 앤딩의 스타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가득 매운 대부분의 요소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게임에 나오니까. 보다 보면 내가 즐기는 것이 영화인건지, 마리오 게임들과 그 게임들을 즐겼던 지난 나의 추억인 건지 의문이 쌓여만 가는데요. 후자에 대한 확신이 커져갈수록 냉정하게 전자와 후자를 구분하는 것에 익숙한, 혹은 훈련된 사람들에겐 좋은 평가를 듣기 힘들었을 겁니다. 다소 신랄한 비평을 들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죠.

 

전반부에 갓 독립하게 된 마리오 형제가 찍은 tv 광고는 제 발 저린 감독들의 자기 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해당 광고를 놓고 주변인들은 반복적으로 '영화 같다' 말하는 데요. 광고가 영화라는 말은 뒤집으면 영화가 광고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죠. 실제 작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몽글몽글한 버섯마을의 풍경도, 무시무시한 쿠파의 성도, 아슬아슬한 동킹콩도, 휘황찬란한 무지개 마리오 카트도, 무적 버프 받고 내지르는 호쾌한 더블 어퍼컷도 아닌 두 형제의 광고 장면을 고를 수 있을 겁니다.

 

 

 

 

 

 

# 4.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감동의 절대적 지분은 '반가움'이 차지합니다.

 

마리오가 반갑고, 루이지가 반갑고, 횡스크롤 스테이지가 반갑습니다. 초록 파이프가 반갑고, 물속을 헤엄치는 오징어가 반갑고, 라쿤 슈트의 꼬리 돌리기도 반갑죠. 다리 위 포물선을 그리는 피라니아가 반갑고, 오크통 던지는 동킹콩이 반갑고, 커스텀 카트 레이싱이 반갑고, 쿠파가 반갑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게임 브금들과 A-ha와 Beastie Boys와 Bonnie Tyler와 Jack Black의 목소리가 반갑고, 하다 하다 Kill Bill까지 반가운 데 그 걸 덜어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이를테면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게임보이를 찾아 플레이하면서 '그래! 나 이거 참 좋아했었는데. 이거 기억나!'라고 할 때의 감동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텐데요.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인 대작 애니메이션의 감동이 그런 단편적 경험 이상의 차별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단점임에 분명합니다.

 

팬들이 자신만만하게 마리오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말하는 것처럼 마리오는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파워풀한 IP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마리오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 반가움이 없는 사람들에겐 어떤 영화로 비칠까라는 질문 역시 결코 등한시할 수만은 없고, 이 작품은 그 의문에 확신을 주는 것에 크게 미흡합니다. 톨킨의 소설은커녕 그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까지 오롯이 작품의 힘만으로 매료시켰던 반지의 제왕은 훌륭한 반례라 할 수 있겠죠.

 

한 가지 구분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말씀드리는 즐거움이란 철학적인 메시지 찾는 고상 떠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슴 콩닥거리는 어드벤처의 즐거움도 훌륭합니다. 내 손가락에만 맞춰 움직이던 마리오와 감정선을 교류하는 즐거움도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서 얻을 수 있을 법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죠. 스타팅 화면에서 택일하게 되는 마리오와 루이지가 함께 뛰어다니는 형제애를 녹였어도 좋았을 테구요. 영화가 발만 살짝 담갔다 빼는 꿈 꾸는 소년성에 제대로 집중했어도 이것보다는 입체적인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미처 게임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세계관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색적인 즐거움도 훌륭했을 테죠. 그런 일련의 즐거움이 전무하다는 것은 화려한 색감과 대비되어 되려 작품을 공허하게 합니다.

 

 

 

 

 

 

# 5.

 

영화가 좋아서 재미가 있는 경우도 많지만 역으로 자기감정에 속아 영화가 뛰어나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한 말은 아니구요. 빨간 안경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죠. 반가움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관객 중 일부는 '반복적인 반가움'을 '풍부한 즐거움'으로 오인하게 됩니다. 다시 그 중 일부는 내가 이렇게나 즐겁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든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기도 하죠. 심지어 어떤 경우는 '이 영화는 못 만들었다' 말하는 것이 작품성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마치 마리오라는 IP 뿐 아니라 이를 좋아하는 자신의 추억을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도 말이죠.

 

스타가 98년 출시던가요. 개인적으로 그보다도 한참 전 어릴 적 유년기를 추억하게 하는 게임이라면 매번 폭탄 아끼다 죽는 <스트라이커즈 1945>와 나코루루로 날먹하던 <열투 95'>, 그리고 매번 피리의 유혹과 싸우게 했던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였더랬습니다. 굳이 이런 서글픈 사상검증까지 하는 건 마리오의 매력을 모르는 지루한 문외한의 억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실제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꽤나 북받치는 반가움을 즐겼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가득 메운 오만가지들이 반가웠기 때문이죠. 다만 즐거움과 별개로 어떤 영화가 반가움 하나 밖에 주지 못한다면 좋은 영화라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리오만큼이나 영화를 좋아할 뿐이라는 것이죠. 이 작품에 대한 비평이 마치 마리오와 마리오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비난하는 것만 같다 오인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 데요. 그런 분들에겐 역으로 영화라는 예술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매체가 도구화되는 것에 속상해하는 것을 헤아려 보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 6.

 

두 시간, 세 시간이 넘는 것도 흔한 요즘 트렌드치곤 이례적으로 짧은 런타임입니다. 풀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돈 잡아먹는 괴물이니만큼 어차피 모델링이 끝난 상황에서라면 런타임을 길게 뽑는 것이 시간당 단가를 줄이는 방법이었을 텐데요. 1시간 30분 안쪽으로 끊어낸 것은 확실히 이례적이다 싶었는 데, 보고 난 후 납득했더랬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 외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다 보니 체감 시간이 진짜 더럽게 안 갔기 때문이죠.

 

소소하게, 영화의 제목이 <브라더스>인데 루이지가 찬밥인 것도 영 불만입니다. 이야기 안에서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거나, 아니면 루이지 따위 보다는 게임의 스테이지 구성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판단되었을 뿐이라는 거겠죠. 앤딩에서 갑자기 엄마아빠가 반성하고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는 방식도 태만합니다. 두 형제가 브루클린을 버리고 왜 갑자기 버섯마을에서 사는 건지도 도저히 알 수 없죠. 쿠키 영상은 누가 봐도 요시의 알일 텐데요. 이쯤 되면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니 끝난 이후에까지 반가움 원툴이었다는 걸 실천적으로 증명한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정말 노골적이군요.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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