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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다이브 _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

그냥_ 2024. 4.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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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숨 참고 필로소피 다이브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 :: 攻殻機動隊』입니다.

 

 

 

 

 

# 1.

 

믿고 거른다는 꺼무위키지만 솔직히 씹덕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누군가의 포스팅을 빌릴 바에야 나무위키를 정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별세를 핑계로 묵은 만화책들을 몰아보다 흘러 흘러 공각기동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오래전 감상에 새로운 감상을 조금 더 얹어 주절거리겠지만 어차피 그 감상조차 모조리 나무위키에 있을 게 뻔합니다. 마니아들처럼 시리즈를 전부 찾아볼 정도의 관심도 의리도 없는 제게 공각기동대란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로 열연한 2017년 실사판 정도가 전부라는 것 역시 감안하셔야겠네요.

 

1995년이니까요. 벌써 30년 전이네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그보다 더 막연한 두려움이 혼재하던 세기말입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딥마인드사의 알파고와 이세돌 국수의 대국은 기억하시겠죠. 당시 사람들이 느낀 '특이점'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대한 희망과 공포가 혼재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반추하실 수 있다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류의 생각들은 그 이전부터도 있었던 것이었더랬습니다. 가까이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이름들을 들 수 있을 테구요. 작정하고 거슬러가면 데카르트를 지나 플라톤 할아버지나 노자 할아버지까지 찾아가야 하죠.

 

 

 

 

 

 

# 2.

 

신체가 기계로 대체되는 세상. 인간의 뇌와 나노 컴퓨터가 결합된 '전뇌화'라는 특수한 설정적 기반 위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육중한 질문에 대한 과격한 대답을 풀어냅니다. 내가 인지하는 '나'라는 존재가 모체로부터 물려받아 스스로 개발된 뇌의 유기화학적 작동인지, 전뇌화 과정에서 접촉된 컴퓨팅 연산에 따른 결괏값인지, 심지어 컴퓨팅의 연산과정에 외부 네트워크의 개입이 없다 자신할 수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음으로 인한 혼란에 주인공 쿠사나기는 갈등하는데요. 관객 역시 사이버펑크의 도시를 거칠게 방황하는 그녀의 고민에 함께 올라타 자아라는 것의 본질을 고민하게 되죠.

 

영화는 자아를 결정하는 것은 존재일 뿐 시스템은 무의미하다는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피부도, 언제 뜯겨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팔다리도, 심지어 뉴런뭉치인 뇌도 아닌 사유하는 자아로서의 영혼 밖에 없고,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참할지언정 유일한 길일뿐이라는 면에서 작품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좌절감 같은 것도 있는 것이었죠. 매 순간 증언(證言)될 뿐 증명(證明)할 수 없는 사유하는 자아의 허망함은 '고스트'라는 이름으로 상징되고. 그런 면에서 부제 The Ghost in the Shell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문학적으로 관통하는 맛이 있었습니다.

 

요 정도의 기반 위에 대충 다발이론이니 에고이론이니, 데이비드 흄이니 프로이트니 하는 이름들, 부제와 길버트 라일의 The Ghost in the Machine의 라임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곁들이면 머글인척 하는 씹덕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면서도 뭔가뭔가 한 지적인 인간처럼 보일 수 있으실 겁니다. 꿀팁이니 메모해 두세요.

 

 

 

 

 

 

# 3.

 

관객과 같은 보편의 인간에서부터, 부분적으로 기계적 도움을 받는 인간, 뇌를 제외한 신체 기능이 기계로 완전히 대체된 쿠사나기, 정신까지 모조리 네트워크화된 인형사까지의 그라데이션을 과감하게 전시합니다. '인간에서 기계의 방향으로 가장 멀어진 쿠사나기'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철학적 고민은, '기계에서 인간의 방향으로 가장 가까워진 인형사'를 만남으로써 폭발적으로 확장되며 도약합니다.

 

나란히 누은 클라이맥스의 까다롭지만 친절한 대담을 지나, 영화는 그 대답 대신 쿠사나기와 인형사의 합치된 모습을 관객의 의식 앞에 마주하도록 정지시키며 마무리하는데요. 두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유난히 '인형 같아 보이는' 소녀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거대한 물음표는 지금 기준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역사와 전통의 고전적 철학의 대답을 미래의 상상에서 찾겠다는 아이디어와, 시대를 넘나들며 도약하는 강인한 사고의 근력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이들이 공각기동대를 명작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죠.

 

특히 기독교적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몇몇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 종교철학적 화두를 끌고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영화가 던지는 화두 그 자체가 마치 신적인 존재를 마주하듯 느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나란 무엇인가라는 저주받은 고뇌의 신 앞에 초라한 존재로서, 그를 만날 수도 극복할 수도 답을 구할 수도 없는 절망이고. 이는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기말 감성과 결합되어 작품에 비장미를 부여합니다.

 

 

 

 

 

 

# 4.

 

아무래도 철학적인 면이 강한 작품 특성상 주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석을 많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이 글 역시 다르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공각기동대의 탁월함은 주제의식의 철학적 가치가 아닌 그것을 녹여내는 장대한 세계관과 떠받치는 유려한 연출에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동이라는 개념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드는 기계적 구조를 묘사하는 편집증적 작화. 차갑게 난립하는 네온사인 도열과 함께 사이버펑크의 심벌이 되어버린 디지털 패턴의 오프닝. 제한적 볼륨 안에 관객의 안착을 돕는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친절하기 그지없는 대화. 사고의 변화와 기민하게 조응하는 추격과 잠입과 침입과 파괴의 내러티브.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아를 이미지화하는 광학위장복의 아이디어. 압도적인 전차와의 대치로 은유되는 고뇌의 무게감과 압박감은 대단히 감각적인 것이죠.

 

그중에서도 의식에 접속하는 것을 '다이브'한다 칭하는 말맛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극 중에서 인형사에 접속하는 쿠사나기뿐 아니라, 이 작품 전체가 철학적 주제의식이라는 고스트를 쿠사나기의 의체에 담아 관객 마다마다의 의식 속에 다이브 하는 것만 같다 상상하노라면 대단히 흥미롭죠. 관객인 나의 의식 속에서 시로 마사무네라는 인형사와 접촉해 철학적으로 발전한 당신은 과연 영화를 보기 전의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 5.

 

쿠사나기가 심심하면 옷을 벗어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인데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옷을 벗고 살을 보이는 게 아니라 외투를 벗고 셔츠를 보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인체 역시 또 다른 옷일 뿐이라는 주제의식이 투사되기도 합니다. 또한 일련의 에로스는 그 자체로 관객을 자극하고 때론 공격하기도 하는데요. 헐벗은 쿠사나기의 디자인을 목격하는 관객의 자아는 대체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부차적 질문 역시 흥미로움은 있습니다.

 

쿠사나기의 의체에 젖가슴이 달려있다는 것 역시 재미있습니다. 기계화되어 버린 순간 기능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슴의 조형임에도 착실하게 구현되어 있는데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쿠사나기의 집착 같아 보이기도 하죠. 마지막 인형사와 합치된 쿠사나기는 젖가슴이 없는 어린 소녀의 몸이라는 것에서 일련의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존재라는 것을 은유하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수히 많은 일뽕 양덕을 양산한 작품답게 공각기동대를 오마주한 메트릭스와 같은 작품들과, 그런 매트릭스를 다시 오마주한 또 다른 작품들도 대단히 많은데요. 역으로 다른 곳에서 오마주 된 공각기동대의 원형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합니다. 문득 코파일럿, 쳇지피티, 제미니와 같은 많은 생성형 AI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대단히 원시적인 프로토타입의 인형사를 만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노라면, 30년치만큼 가까워져 버린 미래에 내가 쿠사나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섬뜩하기도 하군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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