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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어쩌면 그 이상 _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외 2인 감독

그냥_ 2023. 8.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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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스파이더맨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

어쩌면 그 이상.

 

 

 

 

 

 

 

 

호아킴 도스 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감독,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 1.

 

스파이더맨하면 뭐가 떠오르실까요. 북미 만화 특유의 역동적인 그림체가 떠오르실 수 있겠죠. 코믹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실사 영화 시리즈들을 먼저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많거니와, 비단 작화가 아니더라도 레고 블록이나 동물, SD풍 데포르메 따위로 변주한 굿즈 상품들도 즐비하죠. 에피소다마다 아예 다른 설정으로 리뉴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나이도 성격도 능력도 각양각색인 경우도 많습니다.

 

멀티버스 메타가 성행한 이후론 진짜 막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빌런이 된 피터 파커라거나, 남친 대신 거미에 물린 스파이더 그웬과 같은 역사와 전통의 캐릭터 외에도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설정이 가득하죠. 피터 파커가 죽고 난 후 2대 스파이디가 된 마일스 모랄레스라는 애도 있는데요. 한때 오바마를 오마주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듣기도 했던 흑인-히스패닉 소년은 생체 전기 조작능력이라거나 광학 위장과 같은, 포켓몬이든 뭐든 1세대만 인정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역정을 낼만한 능력까지 쓰고 있습니다. 말세군요. 에헴.

 

스타일적으로만 본다면 역시나 맨해튼 마천루를 활공하는 거미줄 스턴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석양을 내려다보는 장면도 상징적이죠. 쌩쌩 내달리는 차 사이를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동물적인 액션이라거나, 양팔로 거미줄을 붙잡아 열차를 세우는 장면, 심심하면 넝마가 되기 일쑤인 슈트도 기억이 나고요. 특유의 재기 발랄한 임기응변과 장난기와 수다스러움 아래 흐르는, 그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존재론적 갈등은 대표적인 내러티브이기도 합니다. 내러티브를 이야기한다면 역시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얻어걸린) 명대사가 빠질 수 없을 테고요. 그 외 작품마다 그 시대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ost들과, 적당한 문제들을 적당히 때워낼 수 있게 해주는 치트키, 찌릿찌릿 스파이더 센스도 빼놓으면 섭섭하죠. 말씀드린 모든 것들과,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것들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오마주가 한꺼번에 다 담겨있는 영화가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끝내줄 텐데요.

 

이 작품이 그 '끝내주는 영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당당하게 말하듯 "Spider-Verse"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죠.

 

 

 

 

 

 

# 2.

 

개인적으론 스타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스타일은 비평의 영역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비평은 퀄리티를 논하는 것이 상식적이니까요. 요식업을 예로 든다면, 매운 김치찌개 가게에 가서 '얼마나 잘 만든 매운 김치찌개인가'를 논할 수는 있겠으나, 왜 김치찌개를 파느냐는 둥 왜 매운 것을 파느냐는 둥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어떤 영화들은 도저히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압도적인 스타일입니다.

 

잠시도 쉴틈을 주지 않는 폭력적인 운동성과 파괴적인 속도감, 동원 가능한 모든 것들을 담아내려는 듯한 무수히 많은 스타일의 난립과 개입, 이를 통할해 문자 그대로 '지휘'하는 사운드는 압도적이라는 말 외엔 다른 형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스크린이 점점 확장되다 못해 객석을 감싸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데요. 황홀경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경험이죠. 흥분감에 취한 듯 초회를 보고 난 후, 조금 차분하게 다시 보자 싶어 재관람을 했는데요. 다시 봐도 결국 경탄만 하다 나오게 만드는 카리스마는 충분히 놀랍습니다.

 

영화 경험은 그 자체로 스파이디의 진자운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파동 위에 올라타 미끄러지는 것처럼, 일정한 주기의 속도감으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러티브의 중량감이 2차 곡선처럼 완급을 부여하는 듯하달까요. 내러티브의 골짜기에 들어가는 순간들의 육중한 스윙과 마루에 올랐을 때의 청량감의 대비는 드라마틱합니다. 앞서 영화를 지휘하는 것만 같다 말씀드린 음악들은 분기마다 작품의 운동성에 추진력을 더하는 장치, 이를테면 거미줄을 팍 하고 쏘는 탄력적인 순간에 대응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우주들 뿐 아니라 영화를 경험하는 관객의 세계까지 스파이더-버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듯한 흡입력은 과연 인상적이죠.

 

 

 

 

 

 

# 3.

 

사실상 이번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그웬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녀의 기준에서 영화의 이야기란 '가정 안에서 자리잡지 못하던 소년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여정에 있어 출발점과 도착점이 동일한 경우 출발점(혹은 도착점)의 중요성이란 필연적으로 여정의 반경에 비례하기 마련입니다. 즉, 그웬이 모험하게 되는 멀티버스라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아빠와의 관계를 빗대는 초우주적 스케일의 은유인 것이죠.

 

영화가 정의하는 가정의 본질은 신뢰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믿음을 믿지 못해 거짓말을, 부모는 자녀의 자립을 믿지 못해 감시하며 갈등하다 화해한다는 서사니까요. 영화의 결말은 자녀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부모는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윤리적 반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자녀와 불안해하는 부모를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데요. 일련의 결말은 스파이더맨 특유의 전통적 서민적 가족주의 테마와 잘 어우러지고 있기도 하죠.

 

일련의 주제의식을 대표하는 상징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역시나 스페인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엄마와 마일스가 생각하는 스페인어의 가치는 다르고, 그 점은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언어 위에 얹어진 감정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 속 스페인 어를 관객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신뢰만 굳건하다면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듯 말이죠.

 

 

 

 

 

 

# 4.

 

스파이더맨의 딜레마란 대부분 나약한 개인으로서의 한계와 슈퍼히어로로서의 책임 사이에서의 갈등이고, 그 결과는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가와 무관하게 언제나 자신이 가진 힘에 걸맞은 책임을 택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왔는데요. 따뜻하고 좋은 메시지이기는 하지만, 이쯤 되면 지루한 것도 사실이죠.

 

작품은 개인의 책임의식 혹은 직업윤리라는 기반 위에 새로운 딜레마를 확장합니다. 개인의 삶을 일부 희생할 수 있는가를 넘어 개인의 삶과 관계 심지어 세계를 모두 포기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거나 하는 식이죠.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정성적 대상을 정량적 측면에서 대비시켜 택일할 것을 강요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트롤리 딜레마와 같은 윤리학적 사고실험 같은 맛도 있구요. 이를 발전시켜, 우주의 원리를 근거로 개인의 목숨과 세계의 존립 사이에서의 택일을 강요한다는 면에서 그 자체로 매트릭스를 끌고 들어오는 맛도 있습니다.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멀티버스로 해체해 서로 관계를 주고받는 구성은, 단순히 멀티버스를 팬 서비스성 쪽수 불리기 내지 망한 설정 버리는 쓰레기통처럼 쓰는 여타 작품들과 구분되게 합니다. 제대로 쓰면 이야기적으로도 이렇게나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달까요. 이를 테면,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마일스를 덮치는 장면은 장르적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붙잡고 매달리는 수많은 실패와 미련과 후회의 자아가 수많은 경우의 수로 분절되어 하나의 인격 위로 오버랩되는 듯한 감동도 있습니다.

 

 

 

 

 

 

# 5.


그 외에 멀티버스라는 우주적 스케일의 세계관을, 작품의 정체성과도 같을 코믹스로 다시 받쳐내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멀티버스의 존재란 것이 '코믹스의 설정'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설정은, 고인이 된 스텐 리와 역시 고인이 된 원-어보브-올과 같은 전통적 마블 코믹스 세계관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듯한 반가움이 있었죠. 비단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코믹스 실사화 시리즈가 만화 속 슈퍼히어로가 현실에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이번 작은 만화 속 슈퍼히어로가 다른 우주에 존재함을 설득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집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스파이더맨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더맨이 있는 곳으로 내가 초대되는 감각은 이전의 실사화 영화들과는 다른 경험 다른 감동임에 분명하죠.

삼류빌런이야기를 빼놓으면 섭섭함에 멀티버스를 건너 절 잡으러 오겠죠.

 

글쎄요. 스팟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할 거라곤 마블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팬들도 쉽게 상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단순히 탄생 과정에서의 악연이라거나 인정 욕구와 같은 정서적 관계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우주든,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성이든 뭐가 되었든 자기 세계 안에 갇혀 단절된 것에 고통스러워하던 스파이더맨과, 모든 것과 연결되다 못해 연결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되어버린 후 그 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스팟은 관념적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의 안티테제라 할법합니다. 앞서 스파이더맨의 모든 것이라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만의 자랑스러운 오리지널리티라면 역시나 스파이더 맨이라는 슈퍼스타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아치 에너미의 탄생을 꼽아야겠죠.

 

 

 

 



# 6.


사전 정보를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보니 2부작인 줄도 모르고 봤었더랬습니다. 1,2,3편의 트릴로지가 아닌 1,2-1,2-2의 구성이었다는 것을 영화 끝나기 직전에야 알았던 것이죠. 혹자는 중간에 to be continue로 잘려나가는 구성을 끔찍이 싫어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하나의 이야기를 쪼개는 방식을 썩 선호하진 않습니다만,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 등과 더불어 특별히 논외로 해야 할 듯합니다. 2편의 성공이 3편의 완성도를 보장하진 못하지만, 2-1편의 퀄리티는 필연적으로 2-2편의 퀄리티와 연동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 정도로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가 한편 더 나온다? 개꿀이죠.

 

이전 작품들 대비 워낙 기획부터가 달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나,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시리즈가 최고의 스파이더맨 무비가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이전까지 스파이더맨이라 한다면 샘스파의 시계탑 액션씬이나 열차 액션씬, 비 오는 날 로맨틱한 키스신을 떠올렸을 테지만, 이젠 그웬과 마일스가 거꾸로 내려다보는 맨해튼이 가정 먼저 떠오를 것만 같군요. 호아킴 도스 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감독, <스파이더맨>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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