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
『와일드 로봇 :: The Wild Robot』입니다.
# 1.
언젠가부터 영화에 완벽이란 말을 붙이는 걸 꺼려함에도, 숨겨지지 않는 사랑과 재채기처럼 찬사를 가릴 도리가 없다. 올라가는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확신한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본 한 해지만 올해의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와일드 로봇이다.
특별히 모자라거나 과한 바 없는 영화는 완벽이란 평가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드림웍스 최고작이란 평가엔 이견의 여지조차 없고, 적당한 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는가 물었을 때 그 대답 중 하나에 들어가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그때의 인류는 어떤 시점에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 끝에 어떤 성찰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그것을 어떤 이야기와 어떤 테마와 어떤 기술력으로 표현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모든 것이 발견되는 경험은 특별하다.
'야생의 섬에 불시착한 로봇 하나가 여리게 태어난 기러기 한 마리를 키운다'라는 직관적이고 편안한 이야기를 힘 있게 펼쳐낸다. 기특하게 날아오르는 브라이트빌만큼이나 주인공 로즈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상품에서 시작된 그는, 언어를 배우고 생존을 투쟁하고 관계를 경험한다. 본성을 확립하고 목표를 수립하며 집의 함의를 이해하고 이름의 의미를 고찰한다. 핑크와 함께 상상과 신화의 가치를 목격한다. 망가진 로봇의 기록을 보며 존재를 철학한다. 기러기 무리에 동떨어진 빌을 보며 종을 통찰한다. 여름 같이 개척하고, 가을처럼 이별하며, 겨울의 시련을 극복하고, 봄을 꿈꾸며 공생한 그는 로봇도 동물도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로서 와일드 로봇이다. 이 모든 고뇌와 기억과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소한 SF 판타지는, 듄 못지않게 광활하고 매드맥스 못지않게 장대한 신화의 탄생이다.
# 2.
영화의 제목은 와일드 로봇이고 이는 주인공을 지칭함에 분명하다. 이질적인 두 개의 표현이 접붙여진 제목을 굳이 나눠보자면 Wild라는 환경과 Robot이라는 정체성의 결합이다. 그 유명한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이나 혹은,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같은 말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후반부 네 발로 달리며 섬을 지키는 그는 분명 와일드하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와일드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로봇이지만 관객은 그가 더 이상 이전의 로봇이 아님을 알고 있다. 와일드하지만 와일드하지 않고 로봇이지만 로봇이지 않은 그의 실체는 마지막 빌에게 건넨 인사말처럼 '로즈'이고, 여기서의 이름은 곧 자아를 의미한다. 영화는 '환경'과 '정체성' 사이에서 '자아'를 찾는 이야기인 것이다. 앤딩에서 굳이 로즈를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의 과수원으로 옮긴 것도, 상처 가득한 낡은 외관을 깔끔하게 되돌린 것도 모두 환경과 정체성은 본질적이지 않음이다.
환경과 정체성을 극복한 자아에 대한 작품의 대답은 초현실적일 정도의 역동성과 내구도로 표현된 치열함이다.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스스로를 실천하는 이의 고단함이다. 온 힘을 다해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환경과 정체성까지 모두 끌어안은 자의 성실하게 누적된 시간들이다. 집은 그 누적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올리는 나무조각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그림으로, 성실한 마멋의 나무 깎기로, 화목을 찾은 동물들의 평화로 점층 된다. 그것이 프로그래밍(메모리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든, DNA에 탑재된 본능이든)의 결과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런 선택과 관계를 쌓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실존적이다. 영화는 인생과 자아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거지."라는 대사는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것을 치열하게 탐색하며 살아가는 경이로운 존재임을 뜻한다.
# 3.
이는 다시 개체의 발전을 넘어 수천 년간 퇴적된 역사를 부드럽게 훑어내며 당연해 잊고 있었던 역사의 숲과 사유의 바다에 관객을 던져놓는다. 로봇과 기러기와 여우의 곁에서 숲을 내달리고 바다를 헤엄치는 동안, 사물과 생물의 경계에서 존재를 사유한다. 본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아를 사유한다. 논리의 틈에서 감성의 실체를 감각한다. 인생과 죽음과 운명을 논하고, 상생과 헌신과 극복을 논한다. 관계와 고독을 함께 그리고, 성장과 자족을 함께 그린다. 상상할 수 있음에 감동하고, 자연의 생리에 감사한다. 그 모든 순간의 당신은 로즈만큼이나 경이로운 자다.
화면은 애니메이션 연출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과시적이지 않다. 장엄한 사운드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경험을 보조한다. 감동은 풍부하고 단단하되 억지스럽지 않다. 유머는 언제나 맥락과 조화로워 안전하고 편안하다. 대화는 충분히 문학적이면서도 작위적인 법이 없다. 장르는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우면서도 부드럽게 어울린다. 심지어 몇몇의 서늘한 진단에서조차 교조적이거나 계몽적이지 않아 겸허하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와일드 로봇 해석'이라는 키워드로 블로그를 찾는 몇몇의 분들께 구태여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말하고 싶다. 해석이 필요한 영화라기엔 너무 다정하고 포근하다는 것은 경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냥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더 많이 보고 즐기실 것을, 뭉클함을 느끼는 자기 자신과 차분하게 대화해 볼 것을 권한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좌석에서 이름 모를 블로거가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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