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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호수 위의 소년 _ 어웨이,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그냥_ 2023. 12.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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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어웨이 :: Away』입니다.

 

 

 

 

 

# 1.

 

기본적으로는 비행기 사고로 인해 불시착한 소년이 미지의 섬에서 맞닥뜨린 거인을 피해 지도 끝에 위치한 마을에 도달하는 어드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겁니다. 이 관점에서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그대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황량한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사람의 불안과, 정체 모를 거인을 마주하는 순간의 공포와, 포근하고 평화로운 오아시스에서의 안도감을 만끽하면 좋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노란 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의 용기와, 높고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의 긴장과, 거슬러 올라오는 거인의 위압감과, 과장된 화면비 너머 펼쳐지는 광활한 들판의 해방감과,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잊게 만드는 거울 호수의 황홀함과, 설산을 오르는 소년을 응원하게 되는 선량한 마음과, 그런 관객의 마음에 보답하는 날갯짓에 담긴 대견스러움을 즐길 수 있다면 좋습니다.

 

비로소 도착하는 아름다운 항구의 풍경과,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반가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여정을 독려하듯 일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삼삼한 구성과, 다채로운 색감 및 공격적인 구도와 대비되는 뭉툭하고 미니멀한 펜선, 모든 대화를 밀어낸 청각적 공백을 가득 메우는 감성적인 사운드는 비슷한 류의 애니메이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감동을 정석적으로 구현하고 있죠.

 

 

 

 

 

 

# 2.

 

하지만 보기에 따라선 정반대의 방향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자신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미처 자각하지 못한 소년의 영혼이 현실 세계를 떠나는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죠. 화풍이나 내러티브의 접점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 같은 작품이 함께 생각났던 이유랄까요.

 

처음 비행기에 걸린 소년은 거인에 의해 발견되어 집어삼켜지는 데요. 그때 이미 소년은 숨을 거뒀던 것이라 전제해 보자는 것이죠. 검은 거인은 죽음의 구체화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존재들에게 가자고 말하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라는 건데요. 그러고 보면 거인이 동물을 잡는 장면들은 공격적으로 집어삼킨다기보다는, 연민을 담아 끌어안는 듯 보이기도 하죠. 거인을 피한다는 것은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년이 달아난 오아시스에 거인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외면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소년과 같은 그림을 무수히 많이 그리다 죽은 것으로 보이는 해골을 통해 상징됩니다. 오아시스를 가득 메운 수많은 돌들 역시 죽음을 은유하는 묘비라 이해하면 무난하겠죠.

 

충분한 휴식을 취한 소년은 배낭을 하나 발견하는 데요. 그 안에는 물통과 열쇠를 비롯한 몇 가지 도구들과 함께 지도가 들어 있습니다. 지도는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음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운명을 상징합니다. 소년은 결국 자신의 길을 나서기로 합니다. 작은 새는 소년과 함께 여행하게 된 같은 처지의 어린 영혼일 수도, 소년이 가진 특정한 기질 중 일부분이 분화된 것일 수도, 소년의 마지막 여정을 이끌 길잡이일 수도, 소년을 응원하는 누군가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영화를 따라가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소스케가 이름 붙인 포뇨처럼 소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일지도 모르죠.

 

 

 

 

 

 

# 3.

 

바이크를 타고 내달리는 이후의 여정은 평화로움과 무관하게 순리로서의 죽음으로 가득합니다. 하늘을 나는 수리가 쥐를 잡아채는 장면이라거나, 작은 새를 노리는 여우의 시퀀스, 그 외에 거인에 의해 숨을 거두는 수많은 동물들은 이 같은 추측에 기여합니다.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감독이 붙인 제목처럼 '숨겨진 오아시스'에서 '거울 호수'를 지나 '꿈의 샘'을 건너 '구름의 항구'로 나아가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죽음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검은 구멍의 묘비'에서 출발해 '돌탑의 공간'을 지나 '풍경의 제단'을 건너 '이별의 바다'에 도달하는 이야기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운명을 의미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것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의미합니다. 다리를 무너트려 거인을 떨어트림으로써 운명을 살해하려 하지만 무의미합니다. 잠시 죽음에서 벗어난 소년은 날아갈 듯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 모습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거울 호수의 라이딩으로 황홀하게 묘사됩니다만, 그럼에도 거인은 살아 돌아오고 소년의 앞엔 까마득한 설산이라는 잔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죠.

 

주기적으로 물이 들이치는 꿈의 샘과 그 주위를 둘러싼 둥근 동선은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식의 순리를 상징하고, 그곳의 물을 마신다는 것은 점점 순리로서의 죽음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밤하늘 추락하는 비행기의 악몽은 마찬가지 의미에서 사고 당시의 트라우마가 깨어나고 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검은 깃발이 듬성듬성 있는 황량한 땅에서 소년은 점점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에 맞춰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죽음은 거슬러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비행기 잔해에서 들여다보는 거인과 똑 닮은 존재들은 결말에 앞서 작품의 미장센을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죠.

 

 

 

 

 

 

# 4.

 

극단적인 화면비 위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구도를 충분히 긴 호흡의 롱테이크로 풀어내는 것은, 꺼져버린 소년의 가능성에 대한 지극이 영화적인 애도의 순간들입니다. 힘겹게 설산을 오르지만 끝내 거인에 따라 잡힌 소년은 죽음의 순간 노란 새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쏟아지는 눈을 피해 결국 항구에 도달한 소년은 저 멀리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막을 내리는 데요. 먼저 저승에 도착한 사람들의 마중이라 이해할 수 있겠죠.

 

어쩌면 영화의 제목 <Away>는 세상을 떠난다는 뜻의 영어 표현 'Pass Away'에서 가져온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실제 소년의 여정은 그야말로 저 멀리 Away를 향해 Pass 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는 것 역시 장르적 특성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테마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죠.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어웨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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