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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일생 ⅱ _ 붉은 거북,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그냥_ 2021. 1.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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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고요하면서 웅장합니다. 섬세하면서 장엄합니다. 간결하면서 화려하고, 차분하면서 격렬합니다. 명료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치밀하고, 단순하지만 더없이 디테일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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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첫 번째, 두 번째 장까지의 영화 전반부는 문학적 - 미학적인 파트였다 한다면, 지금부터의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직설적이며 서사적입니다. 심미적인 시퀀스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전반부와 같은 구성이 영화 끝까지 계속 이어졌다면 제법 피곤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관객 경험을 고려한 영리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세 번째 장은 <결실>입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는 섬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 외로움의 결실입니다. 첫 번째 장에서 갓 태어난 아기 거북들이 힘차게 바다로 향하듯, 아이 역시 바다 앞에 서지만 아이에겐 거북과 달리 손을 잡아줄 부모가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갑니다. 아빠가 빠졌던 같은 절벽 틈에 아이는 빠지지만, 부모의 사랑 하에 있는 아이에게 절벽은 아빠에게만큼 고압적이지 못합니다. 아빠가 힘겹게 헤집고 나왔던 바닷속 동굴이란 시련은, 아이에겐 성장이 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섬에는 포근한 햇살이 가득합니다. 아빠의 절규만이 울려 퍼지던 섬에는 이제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아이의 생명력이 섬을 풍요로 물들입니다. 창백하던 섬은 가을 녘과 같은 포근함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하에 장성한 어른으로 성장해 갑니다.

 

 

 

 

 

 

# 15.

 

새들의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해일입니다. 네 번째 장은 <시련>이군요. 살다 보면 감당하지 못할 시련이 몰아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다칩니다. 익숙한 모든 것들과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함께 살아있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를 다시 손질하고, 쓰러진 대나무를 모아 불을 놓습니다.

 

 

 

 

 

 

# 16.

 

다섯 번째 장은 <독립>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해일은 아들에게 그 너머의 세상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지만, 병이 떠내려온 바다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됩니다. 아빠에게 '외로움'이었던 바다는, 엄마에게 '안정'이었던 바다는, 아들에게 '가능성'이 됩니다.

 

사랑하기에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 있음을 가족은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 다가왔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모와 아들에게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끄덕임이면 충분합니다. 아들은 푸른거북들과 함께 드넓은 바다로 나아갑니다. 누군가의 아들이 아닌 그다음의 삶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납니다. 부부는 뒷모습으로 아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 17.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장 <죽음>입니다. 부부는 옷을 벗어던지고 함께 바다를 헤엄칩니다. 아들이 떠나간 빈자리는 크지만, 동시에 부모로서의 역할을 벗어던진 '자유로움'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부부는 백발이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합니다. 깊게 드리운 노을 아래, 인생의 노을에 선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춥니다.

 

살아온 긴 시간처럼 무수히 많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남자는 영원히 깨지 않을 잠에 듭니다. 바다에 머리를 담아 애써 눈물을 감춘 아내는 마지막으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집니다. 여자는 원래의 붉은 거북의 모습으로 돌아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이는 장엄한 바다를 향해 서서히 떠나갑니다. 거북이 남긴 발자국과 함께 영화는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 18.

 

제 나름대로 붙인 각 챕터의 제목은 <탄생>, <사랑>, <결실>, <시련>, <독립>, <죽음>입니다. 적당히 엮자면

 

"사람이 홀로 외롭게 태어나 신화 같은 운명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실을 맺는다. 때론 큰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를 극복하고. 다음 세대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후, 인생의 황혼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누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이를 한 단어로 줄여야 한다면, <삶>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앞선 글 말미에 종교적 이야기를 하긴 했던지라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거북과 인간의 의미를 구분 짓는 것에는 썩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글의 제목을 '인생人生'으로 할까 했다가 '일생一生'으로 바꾸었는데요. 이는 이 작품이, 태어났다 돌아가는 생명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 굳이 인간성을 강조한 작품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19.

 

개인적으로 감동에 북받쳐 글 내내 호들갑을 떨긴 했습니다만, 이와 같은 영화들 특유의 호불호 갈리는 스타일은 분명 존재합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강조된 영화들, 그중에서도 역설적인 철학 논리를 다룬다거나 하는 식의 공격적인 작품이 아니라, 정제된 감정선만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 특유의 지독한 잔잔함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선 얼마든지 무료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감동적으로 즐겼고, 이 영화는 각종 시상식에서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이런 타입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께는 권하기 조심스러워지긴 합니다.

 

오프닝을 보시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타일을 기대하신다면 역시나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굳이 억지스럽게 찾고자 한다면 화풍의 질감 정도를 유사점으로 꼽을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마저도 선명하지 않고, 애초에 이와 같은 스타일의 질감이 '지브리' 고유의 것이라 말하는 것에도 어폐는 있습니다.

 

 

 

 

 

 

# 20.

 

삶의 여정을 한걸음 한걸음 진중하게 꾹꾹 눌러 짚어가는 감각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각 단계마다를 환상적인 색감과 문학적인 은유와 미학적인 구도로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심미적인 표현과 그 순간의 감수성이 완벽히 합치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감동입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가득 차 부풀어 오르는 느낌, 통제할 수 없는 감수성이 눈물로 치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은 대단히 오랜만이군요. '미카엘 뒤독 더 빗' 감독, <붉은 거북>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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