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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실패한 성장의 대가 _ 늑대소년 테디, 뤼도비크 부케르마 외 1 감독

그냥_ 2022. 4.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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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성장 영화라고 하면 미성숙한 개인이 내적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요. 정의에서부터 미루어 알 수 있다시피 기본적으론 해피 엔딩이기 마련입니다. 결과가 성장과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성장 서사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낙원은 어린아이 동화 속 이야기죠.

 

 

 

 

 

 

 

 

'뤼도비크 부케르마', '조랑 부케르마' 감독,

『늑대소년 테디 :: Teddy』입니다.

 

 

 

 

 

# 1.

 

영화 <늑대소년 테디>는 기본적으로 성장 영화의 틀을 따라갑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신체적, 정서정, 정신적 변화를 늑대 인간이라는 과격한 형태로 과장하는 우화죠. 다만 이 영화의 특별함은 주인공이 성장에 실패한다는 점입니다. 필연적 성장에 맞닥뜨리게 된 어린 인격이 가정과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동안 갈등하고 불안하고 좌절하다 폭주하는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 2.

 

클라이맥스 학살극을 생각하면 다소 모순적인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주인공 테디는 그리 못된 아이가 아닙니다.

 

양아치라기보다는 미숙한 존재 정도에 훨씬 가깝게 묘사됩니다. 오프닝에서 테디는 프랑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괜히 트집을 잡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이유가 썩 독특합니다. 격식을 부정한다거나 공동체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파벳에 오탈자가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마저도 사람을 잘못 구분해 난동을 피운 것에 불과했구요.

 

테디는 특별한 악당이라거나 반항아라기보다는 글도 잘 모르고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고 융통성도 부족하고 에티켓도 학습되지 않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이견을 어떻게 전개하고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고 불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훈련되지 않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레베카와의 섹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서적 교감이 충만한 사람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의 본능적 유희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여자 친구가 남성기의 크기에 대한 음담패설을 건네자 직전까지 관계를 했던 테디는 민망해합니다. 미숙하죠.

 

 

 

 

 

 

# 3.

 

그런 테디가 늑대인간에게 물리게 됩니다. 본래부터가 쫀쫀한 인과로 끌고 나가는 작품이 아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테디가 늑대인간이 되는 과정에는 아무런 인과가 없습니다. 그저 언젠가 닥칠 것이 예고된 것만 같은 사고죠.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에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데요. 성인에 다가가는 순간들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성적인 각성일 수도 있구요, 사회인으로서의 자존일 수도 있습니다. 여자 친구를 입으로 애무하다 어느 순간 성적인 뉘앙스를 깨달은 혀를 가지게 되었음이 혀에 털이 자라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마사지숍 사장과 관계를 가지며 성적인 메시지를 읽어내게 된 눈을 가지게 되었음이 눈에 털이 자라는 것으로 묘사되는 식이죠. 어른들의 방식으로 술을 마시고 파티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 이성을 잃은 늑대인간이 됩니다. 또래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순간 낙오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늑대인간이 됩니다.

 

주인공 테디 역을 맡은 배우 앙토니 바종 Anthony Bajon이 중성적인 인물, 보다 정확히는 무성적인 인물로 표현되는 이유입니다. 성적으로 성숙하는 데 실패한 인격이니까요. 주변을 메운 또래들이 유독 풍성한 수염을 달고 나와 다리털을 제모한다거나, 술을 마시며 어른스러운 파티를 즐기는 식으로 대조를 이룹니다. 화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 쪽으로 또래들이 우르르 몰려가 자리를 잡고 반대편에 홀로 남은 테디가 카메라로 그들을 찍는 장면은 특히 상징적이죠.

 

 

 

 

 

 

# 4.

 

영화는 프랑스 국가인 <라 메르세예즈 La Marseillaise>와 함께 시작합니다. 국가가 흘러나오는 장소나 음악의 질 특히 노래 솜씨는 영 볼품없을 뿐 아니라 연출적 측면에서도 아무런 조력을 얻지 못합니다. 주인공을 공동체와 유리된 형식으로 소개하는 것도 모자라 냅다 기념비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은 감독으로부터 노골적인 메시지를 유추하게 합니다. 이후 전개될 이야기라는 것이 단순히 성장에 실패한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을 실패하게 만드는 프랑스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비난하는 블랙 코미디라는 것을 서두에 선언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내내 풍자적입니다. 시종일관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이 조롱을 감수합니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호들갑을 떨며 화장실에 숨어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발악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금이 되어버린 광경은 공격적입니다. 늑대인간의 모습을 최대한 숨긴 학살의 현장에 뒤늦게 나타난 경찰의 모습은 사실 진짜 범인은 이 사람, 경찰로 상징된 시스템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말은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테디의 발톱에 큰 상처를 입은 레베카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사람들 한가운데 서있는 모습인데요. 한 아이의 성장을 방치한 데 대한 대가라는 것이 개인의 파멸과 지협적인 공동체의 파멸을 넘어 범사회적으로 연쇄되어 확산될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을 환기한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로 영화의 시작과 끝에 감싸 둔 수미쌍관이라 할 수 있겠죠.

 

 

 

 

 

 

# 5.

 

영화의 핵심은 학살극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런타임을 촘촘히 메운 경고들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집에 멀쩡한 어른이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늑대의 이빨이 박힌 상처를 진중하게 살펴봐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경찰이 조금 더 진중하게 테디를 대했더라면. 또래로부터 낙오되지 않았더라면. 일터의 사장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더라면. 염소 한 마리가 희생되는 순간에라도 문제를 인지했더라면. 테디를 탐하던 마사지샵 사장의 혀가 잘려나가는 순간에라도 문제를 인지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마지막 학살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 결말이 있기 전까지 영화 내내 홀로 피를 흘리고 자학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테디였다는 점 역시 중요합니다. 홀로 화장실에서 혀에 난 털을 자르는 모습은 혼자 화장실에서 피 흘리며 면도하는 아이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분홍빛 마사지샵에서 사장과 키스하는 모습은 떠밀리듯 홍등가까지 흘러가 폭행당하는 아이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당황하며 스스로를 잘라내는 고통은 호러와 코미디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작품에 육중한 서정성을 더합니다.

 

막을 내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레베카와 테디는 천천히 긴 시간 동안 포옹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춥니다. 마치...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었다는 듯 말이죠. '뤼도비크 부케르마', '조랑 부케르마' 감독, <늑대소년 테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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