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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겁쟁이의 기억법 _ 애플,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그냥_ 2021. 11.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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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물을 고립시킵니다. 화면 끝으로 강하게 밀어냅니다.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거울과 등지고 앉은 남자입니다. 머리 위나 뒤를 최대한 넓게 잡은 구도와, 멍하니 흐릿한 초점의 표정 연기가 남자의 머릿속을 공간에 던져 시각화합니다. 이 영화는 거울 속에 온전히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군요.

 

집을 나서 거리를 걷습니다. 줄지은 검은색 차량과 단조로운 패턴의 건물이 남자의 걸음에 방향성과 연속성을 부여합니다. 차 앞에 기억을 잃은 누군가가 주저앉아 있습니다. 일련의 시퀀스는 이후 남자가 걷게 될 선택을 압축적으로 은유합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연속되던 시간을 거칠게 단절하는 기억 상실입니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애플 :: Mila』입니다.

 

 

 

 

 

# 1.

 

반전 영화입니다. 언제나의 반전 영화들처럼 반전을 억지로 숨겨 가며 이야기하는 건 썩 미련한 짓일 겁니다. 반전을 알고 계시다는 전제 위에서 글을 쓸 생각이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거나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글을 닫으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만,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반전이 막 엄청 중요한 영화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알고 보더라도 감상엔 별 지장이 없는 정서적인 드라마 영화기 때문이죠.

 

사실 떡밥이 하도 많아서 어지간하면 결말까지 가기도 전에 눈치를 채실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처음 사진을 찍는 순간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사과를 계속해서 먹는 모습, 집 주소를 잘못 말하는 대목, 코스튬 파티에서 선택한 복장이 하필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우주복'이었다는 것 등 말이죠. 특히나 파티장을 나선 이후 집에서까지 우주인을 연기하는 부분은 노골적이라 해야 할 겁니다.

 

 

 

 

 

 

# 2.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는 불치의 유행병이 도는 세상입니다. 주인공 '알리스'는 버스에 올랐다가 기억을 잃고 보호소로 옮겨지게 되는데요. 그는 사실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은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라는 반전은 피차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합시다.

 

이후 남자의 여정은 인간의 생애를 단순화합니다. 이름 대신 번호가 붙여져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담당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각각은 새로운 엄마와 아빠입니다. 남자 의사가 조금 더 단호하게 다음 스텝을 주문하고, 여자 의사가 행동을 응원하고 북돋우는 건 우연이 아닌 거죠. 퍼즐을 푼다는 건 꼬마 아이들이 처음 글을 배울 때와 같습니다. 아이는 주사를 맞기 싫어합니다. 한껏 움츠러들어 고개를 돌리는 것 역시 전형적인 아이의 행동이죠.

 

보호소를 나가려면 보호자가 찾으러 와야 합니다. 만약 보호자가 없다면 평생 보호소에서 살거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야 하죠. 알리스는 병원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프로그램, <인생 배우기>를 지원합니다. 누적된 무언가가 어지럽게 쌓여있던 이전의 집과 달리 새롭게 시작할 집은 정갈하게 비어있습니다. 알리스는 이 '비어있음'에 설렘을 감추지 못합니다.

 

 

 

 

 

 

# 3.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에선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의사의 지시를 이행한 후 인스턴트 사진을 찍어 사진첩에 보관해야 하죠. 첫 번째 미션은 자전거 타기입니다. 어른의 자전거는 빌릴 수 없습니다.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요. 어린 꼬마의 하늘색 자전거를 꽤나 능숙하게 타는 모습이 썩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는 자전거에 올라 탄 자신의 모습을 인스턴트 카메라에 남깁니다.

 

다음 미션은 코스튬 파티입니다. 우주인으로 코스튬 한 후 파티를 즐기고 역시나 사진을 찍습니다. 소년기죠. 다음은 벌써 성인의 연애입니다. 주인공은 스트리퍼와 잠자리를 가지는 대신 불편한 자세로 사진만 찍는데요. 이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또 다른 수단에 불과함을 암시합니다.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 꺼진 상가들의 통로를 길게 걸어갑니다. 방범창 너머 흑백 화면의 다정한 남녀의 모습이 담긴 tv를 유심히 지켜봅니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철창 너머 흑백의 세상에 격리시켜 두었지만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이웃집 개 '말루'를 만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반갑게 쓰다듬습니다. 주인인 이웃이 나타나자 황급히 달아납니다. 설렘으로 시작했던 새로운 인생, 새로운 집에서 그는 절망의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이렇게 해도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알리스는 자신을 새로운 집(으로 표현된 새로운 인생)에 가둬두던 블라인드를 조금 열어젖힙니다.

 

 

 

 

 

 

# 4.

 

영화관에서 여인을 만납니다. 이름은 '안나'입니다. 그녀 역시 알리스처럼 <인생 배우기> 프로젝트를 수행 중입니다. 잠시 동안의 대화 후 여자는 데이트를 제안합니다. 이튿날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알리스는 허무맹랑한 연주를 선보이는 거리 기타리스트에게 기꺼이 돈을 주는 것으로 새로운 기대에 부푼 설렘을 표현합니다. 잔뜩 움츠러들던 목도리를 풀어놓은 것 역시 기대감에 부푼 그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죠.

 

드라이브를 합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기억하지 못한다 말하는 그는, 뻔뻔스럽게도 'tho we gotta say goodbye for the summer'로 시작하는 Brian Hyland의 <Sealed with a Kiss>를 흥얼거립니다. 말루를 자연스럽게 대하는 자신에 화들짝 놀라던 이전과는 썩 대조적이죠. 망각이 구원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했던 남자는, 안나가 새로운 구원이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그 순간 쾅.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듯 사고가 일어납니다.

 

안나는 물구나무를 합니다. 154초를 센 후 4분이 지났다 말합니다. 두 사람은 다른 세상, 다른 시선, 다른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알리스는 위화감을 애써 외면하지만 표정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안나의 존재가 답이 되어주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애써 외면할 뿐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별 거 아닌' 10m 다이빙 대에 오른 남자는 계단을 내려와 낮은 높이에서 호들갑을 떨며 뛰어내립니다.

 

알리스는 겁쟁이입니다.

 

 

 

 

 


# 5.

트위스트를 춥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음에도 고립되어 보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춤을 추는 동안에도 표정이 굳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굳은 표정 위로 짙은 외로움이 새어 나옵니다. 알리스는 짐짓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술에 적당히 취한 듯한 안나가 화장실로 따라오라 유혹합니다. 화장실? 이건 알리스가 원하던 구원이 아닙니다. 알리스는 안나 역시 기억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백하고 맙니다.

 

언제나처럼 사과를 잔뜩 사던 알리스는 '사과가 기억력에 좋다'는 상인의 말에 집어 든 과일을 내려놓고 오렌지를 삽니다. 그는 '잊어버린 사람'이 아닌 '잊고 싶은 사람'입니다. 떡밥으로 각을 제던 영화가 반전을 공개하는 대목이죠.

 

 

 

 

 

 

# 6.

 

집으로 돌아온 알리스는 안나의 유혹이, 그녀의 인생 배우기 중 일부였음을 알게 됩니다. 상대를 깊이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사진을 찍을 수만 있으면 된다. 라는 녹음이 상처가 됩니다. 상처를 피해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도망가기로 했는데, 그럼 새로운 인생에서 얻은 상처를 피하려면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걸까요. 알리스는 자신을 찾아온 안나를 거절합니다. 안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그에게 답이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는 의사에게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냐 묻습니다. 그는 인생 배우기가 얼른 끝나기를 바랍니다. 인생 배우기가 끝난다는 것은 기억의 고통 또한 끝난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요. 의사는 끝이 없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내놓습니다. 새로운 인생이 답이 되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답이 되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구원으로 죽음을 찾아갑니다.

 

 

 

 

 

 

# 7.

 

죽음을 앞둔 노인을 만나러 갑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게 꼭 알리스와 닮았군요. 어두운 병실에서 두 사람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알리스는 이전과 달리 아내를 잃었던 고통스러운 과거를 고백합니다. 저는 이 대화를 스스로와 나누는 내면의 대화라 느꼈습니다. 마치 죽음을 앞둔 먼 훗날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보였달까요. 병실을 나선 알리스는 노인을 먹인 것과 같은 수프를 먹습니다. 두 인격의 경계가 붕괴되는 순간입니다. 수프를 먹는 알리스 뒤로 흐리게 춤을 추는 남녀가 보입니다. 아내와 자신의 행복했던 과거죠. 남자는 진지하게 응시합니다.

 

노인의 존재가 구원이 되어주리라 확신한 남자는 정성스레 페이스트리를 만듭니다. 안나의 연락이 오지만 알리스는 관심이 없습니다. 죽음이 구원이 되어주리라 생각하는 남자에게 있어 장례식이 지루하다 말하는 여자는 짜증 나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부푼 기대를 안고 병원으로 돌아가지만, 저런. 페이스트리를 먹어줄 노인은 없습니다. 죽음도 끝내 그를 상처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후회일 뿐, 구원이 아닙니다.

 

# 8.

 

결국 남자는 작별을 고했던 아내의 묘비에 새로운 꽃을 들고 찾아갑니다. 굳게 잠가둔 과거의 집으로 힘겹게 들어갑니다. 힘겨운 일이기도 하지만, 힘겨운 일을 힘껏 해내는 의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지럽던 집을 정리하고 블라인드를 걷어 빛을 들입니다. 남자는 비워둔 집에서 외롭게 시들어가던 기억을 한입 베어 뭅니다. 새로운 인생도, 새로운 사람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없었다. 일탈이 남긴 유일한 교훈이었죠.

 

언제나 비스듬히 뒤돌아 있던 겁쟁이 알리스는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가까이 앉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카메라 너머에 놓인 기억의 고통을 마주합니다.

 

 

 

 

 

 

# 9.

 

망각이 병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홀로 기억의 저주에 걸린 남자의 아이러니입니다. 흔히 기억한다는 건 좋은 것, 망각은 슬프고 병적인 것으로 생각되곤 하지만 사실 망각이야 말로 기억해야 한다는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는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구성한 것만 같은 작품이랄까요. 잊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고 싶어 하는 사람의 고통은 강렬하게 대조되어 영화를 둘러싼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설정을 제시한 건 과감하고 참신했다는 생각입니다. 연속된 기억이란 곧 정체성이죠. 기억과 과거를 지운다는 건 어떤 면에서 과거의 자신을 살해한다는 것과 같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알리스에게서 깊은 슬픔이 전달되었던 건 오로지 설정의 힘이라고 해도 좋은 거겠죠.

 

# 10.

 

영화에 디지털 기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썩 흥미롭습니다. 브라운관 tv를 보는 것만 같은 화면비와 인스턴트 카메라 따위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의 세상이죠. 아날로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모되고 풍화된다는 면에서 망각의 세상에 표류 중인 주인공의 상황을 은유하는 기능을 합니다.

 

아날로그를 발견한 김에 조금 더 과감하게 들어가 볼까요. 아날로그 세상 속 디지털 기억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영화 속에 사과가 사과여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플이라는 키워드를 추출합니다. '디지털' + '애플'은, 아이폰이죠. 어쩌면 디지털 문명인의 잊힐 권리에 대한 영화 쪽으로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 11.

 

홍보에서 "제2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며 호들갑을 떤 것처럼,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난해하고 밋밋한 작품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유럽 영화 특유의 위화감이 더해져 호불호를 타려면 얼마든지 탈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은 드네요.

 

대신 육중한 메시지 중심의 드라마 속에서 특유의 병맛 코미디가 효과적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수염 풍성한 장성한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연기하는 동안의 위화감 따위를 큰 거부감 없이 유쾌하게 전달하는 대목이나, 엠뷸런스에 탄 베트맨, 혼자 집에서 우주인을 연기하는 장면, 타이타닉 드립 등은 기대보다 훨씬 유쾌합니다.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 <애플>이었습니다.

 

# +12. 왜 하필 죽은 아내와 기억을 잃은 여자를 '안나'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으로 만들었을까도 흥미롭습니다. 아내의 상실을 극복케 해줄 '대리인'을 찾고자 했던 알리스의 집착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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