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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그리움에 대하여 _ 이름 없는 다방에서, 정수지 감독

그냥_ 2024. 9.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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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
이제 다시는 싫어. 웃는 것도 싫어졌네.

 

 

 

 

 

 

 

 

정수지 감독,

『이름 없는 다방에서 :: Heyday』입니다.

 

 

 

 

 

# 1.

 

레트로 잡지와 오려 모은 스크랩. 십수 년은 더 돌아갈 금성사 선풍기. 한 장씩 뜯어 넘기는 달력. 엔틱 가구와 레이스 커튼. 둥근 다이얼의 전화기. 무자비한 괘종시계. 푹신하면서 불편했던 신기한 소파. 이젠 생소해져 버린 커피 배달.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보자기. 때 묻은 팔토시. 분홍색 머리띠. 노란색 드레스. 노른자 한 알 곁들인 모닝커피. 200자 원고지 위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꼬깃한 종이에 수기로 쓴 주소. 팔각 성냥. 담배 연기. 이 모든 것들로 어우러진 1986년의 이름 없는 다방.

 

우리의 다방은 당신의 스타벅스보다 아름답다. 시간과 공간은 이야기와 정서에 우선한다. 사랑스러운 세 인물의 사정과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기다림보다, 손님이 두 명 밖에 들지 않은 다방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이 먼저 즐겁다. 오래도록 막연하게 그리워 기다렸던 무언가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다. 종업원 세린의 능청과 잔망은 특별한 순간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감독의 인사다. Piece of Cake, Cup of Coffee. 어서 오세요.

 

소임을 마친 세린이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비로소 두 사람의 시간이 시작된다. 존재하지 않는 자취방을 찾아 나선 여자 노을과, 닿았는지 알 수 없는 시를 출간하는 남자 철이다. 둘은 기다리는 사람이자 이별하는 사람으로, 갑자기 실연한 것은 아니다. 이미 이별을 당한 건 오래전이지만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미련이다.

 

 

 

 

 

 

# 2.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만 정확히는 각기 다른 시점의 네 개의 대화가 이어지는 구성이다. 하나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사정을 엿듣는 모습이다. 둘은 같은 테이블에 앉지만 3자의 시선에서 힐난하는 모습이다. 셋은 맞은 편의 사람에게서 나와 닮은 얼굴을 발견하는 모습이고, 마지막은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그 가여움을 품어낸 모습이다.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의 흐름을, 인물을 담는 앵글과 연결 지어 보는 것은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다. 케이크는 여자의 기다림이고, 시는 남자의 기다림이다.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함께 떠난 나타샤를 상상하며 소주 마시던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시를 선물한다.

 

심드렁하게 멀리 있던 타인과 서서히 겹쳐지는 과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미련에 다가가는 사람의 성찰이다. 딱딱한 다나까를 구사하는 철과, 진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세린과, 세련된 서울말씨의 노을의 만남이다. 시간이 아쉬운 사람과, 야속한 사람과, 지루한 사람의 만남이다. 2020년의 지금과 1986년의 어느 날, 이름 없는 다방과 이름 있는 영화의 만남이다. 다른 것을 같은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위로다.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을 나눠 마신 두 사람은 기다림의 다방을 나서 각자의 길을 걷는다.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은 아니다. 비로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만난 것이고 그것이 기다림을 멎게 했을 뿐이다. 문득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의 앤딩이 연상되기도 하다. 1920년대의 파리처럼 1986년의 이름 없는 다방은 아련하고 그립지만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그리움을 가진 사람에게 초를 붙여주고 시를 지어줄 수 있음을 담배 연기처럼 남길뿐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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