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해석할 수 있는 권력에 반기를 들다
하태민 감독,
『피사체 :: Subject』입니다.
# 1.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해서 매번 눈에 불을 켜고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다. 그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끼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주변의 사물들을 조금 더 몰입해서 보게 되는 데, 그것이 마치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듯한 착각이 든달까. 처음엔 건물, 꽃, 간판, 장식, 음식 따위만 찍어도 즐겁다. 점점 구도나 화각, 렌즈, 보정도 달리해보고, 같은 사물이 빛의 드라마틱한 효과에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에 매료되는 것도 즐겁지만, 결국엔 예정된 갈증에 도달한다. 역동성이 없는 사진들을 돌려 보는 동안의 공허함.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다.
제목부터 정직한 영화는 찍는 존재와 찍히는 존재의 이야기다. 감독은 일방적인 관계를 해석권력으로 정의한 후 이를 반복적으로 중첩시켜 강화한다. 두 주인공의 알력과 어린 소녀의 미스터리와 제법 효과적인 엔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걸어가고 침입하고 들여다보는 등 공간을 밀고 나가는 폭력적인 힘이다.
# 2.
카메라를 든 주인공이 피사체를 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주인공에게 시점을 맡기고 있는 관객 역시 같은 해석을 요구받는다. 아이 팔뚝의 멍자국과 수많은 소주병에서 가정 폭력을 해석하고, 재개발과 돌탑에 미루어 계급론을 해석하고, 수연과 현성의 관계에서 갈등이 파생되리라 해석하던 관객은 어울리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미스터리한 소녀에게서 강한 위화감을 느낀다. 가난과 폭력으로 해석되던 소녀와 고가의 카메라가 매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란 거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서스펜스란 해석되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라면,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곧 해석할 수 있는 권력의 완급을 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관객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화면 속 누군가를 관음하고 해석하고 욕망하는 존재들이다.
감독은 반복적으로 관객을 해석하게 한 후 전복시킨다. 결국 가정폭력도, 재개발도, 수연과 현성의 관계도 모두 실패한 해석들이다. 그것이 단순한 엉성함이 아님은 마지막 엔딩에서 보인 관계의 역전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스스로 해석을 독점한다 생각하던 수연과 현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냥감으로 해석되고 있었음이다.
마지막 씬에서 소녀는 수연을 찍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는 수연에게 카메라를 빌려준 관객을 화면 너머에서 찍고 있다. 안전한 위계에서 일방적으로 해석하던 당신은 카메라를 든 소녀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지 모를 피사체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시 지켜봄으로써 관음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욕망이 스스로에게 다시 해석된다. 관객은 수연이자 현성이며 소녀이자 정체 모를 주검의 실체다.
# 3.
시선을 독점하는 자의 음습한 움직임. 때론 그것이 소리죽인 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 데, 잡아먹혀버린 피 흘리는 현성이 쓱 쓸려가는 장면의 질감과 연결되는 맛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대목이다. 과감한 결말의 에너지와, 소녀의 존재감을 연출하는 방식, 피사체라는 말의 언어유희를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도 좋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에 구도와 인물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는 것은 아쉽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밀도가 헐겁다는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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