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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낡은 선풍기의 표정 _ 패닝, 전예진 감독

그냥_ 2024. 1.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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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무더운 여름날, 시각장애인 해담은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치기 위해 수리기사를 부른다.

 

 

 

 

 

 

 

 

전예진 감독,

『패닝 :: Fanning』입니다.

 

 

 

 

 

# 1.

 

해담은 시각장애인입니다. 낡은 선풍기가 고장 났다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파생된 몇몇의 사건들과, 그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인공의 감정을 진지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죠. 서사를 들여다보기 앞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배치와 구도'입니다. 선풍기를 단순히 소재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로 확장시키려는 듯 보이거든요.

 

수리기사, 윗집여자, 집주인. 세 명의 침입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실 중앙을 차지합니다. 해담은 수리기사의 시퀀스 동안에는 3시 방향의 침실에, 윗집여자의 시퀀스 동안에는 7시 방향의 거실 구석에, 집주인의 시퀀스 동안에는 12시 방향의 부엌에 위치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침입자의 위치를 모터가 달린 축이라 한다면, 해담은 각각 3시, 7시, 12시에 위치한 선풍기 날개라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해담의 위치는 외부인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수동성과, 일련의 상황이 무수히 반복된 일상이었음을 은유합니다. 집은 그녀의 삶을 은유하는 영역임과 동시에 사건을 구조화하는 낡은 선풍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별도의 현관 없이 거실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집의 프레임을 선풍기 덮개라 한다면 침입자가 드나드는 현관은 덮개의 이가 벌어진 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틈을 넘어 각자의 방식으로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침입자들은 돌아가는 선풍기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듯한 아찔한 감각으로 연결됩니다. 일련의 이미지는 집주인이 바꿔 놓은 이가 벌어진 선풍기를 통해 암시되어 있기도 하죠. 남의 집에 세 들어사는 처지는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낡은 선풍기로 연결되어 장애인의 불안정한 일상을 은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 2.

 

고장 난 선풍기는 해담의 작고 평온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데요. 그 틈에 수리기사가 들어오고, 수리기사가 열어두고 간 문을 넘어 윗집여자가 들어오고, 윗집여자가 사과의 뜻으로 전해준 선풍기로 인해 집주인이 들어온다는 전개입니다.

 

원래 치러야 할 비용은 수리기사까지입니다. 수리기사를 돌려보내고 난 후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집안의 소리는 첫 번째 시퀀스 동안 느낀 긴장을 대비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까지가 원래 감당했어야 할 비용이라는 것을 구분하는 시점으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윗집여자와 집주인의 문제는 고장 난 선풍기와 전혀 무관하게 오롯이 그녀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청구된 비용인 것이고, 이는 장애인이 항상 움추러들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감독은 오프닝에서 멀리 우측 하단에 치우친 작고 위축된 모습으로 인물을 소개하는 데요. 인물의 위축을 먼저 보여준 후 이 인물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슬러가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집과 인물과 선풍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세 침입자가 해담을 대하는 방식만큼이나 선풍기를 다루는 방식 역시 중요합니다. 수리기사의 "안 고장난데 찾는 게 더 빠르겠네. 지금까지 쓰신 것도 용하네. 아휴. 참"은 타인의 장애에 대한 편리한 진단을, 술 먹고 도망 나서다 선풍기를 망가트리는 윗집여자는 무신경한 사람들의 물리적인 위협을, 새 선풍기를 훔쳐가는 집주인은 불편을 보완하는 제도 사이에서 착취하는 도덕적 해이를 상징합니다. 감독 전예진이 진단하는 시각장애인의 현실인 것이죠.

 

 

 

 

 

 

# 3.

 

집주인이 돌아가고 난 후 3시 침실, 7시 거실, 12시 부엌을 지나 다시 3시의 침실로 돌아옵니다. 해담은 고장 난 낡은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쐽니다. 세 방향으로 휘두른 이야기가 휘발된 끝에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죠. 일련의 순환적인 결말은 영화 속 하루 이전에 있었을, 앞으로 있을 무수히 많은 '패닝'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마무리됩니다. 특히 별일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해담을 연출한 것은 탁월합니다. 서글퍼하거나 씁쓸해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있던 일이라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은 강력한 페이소스로 승화됩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온건하고 문학적입니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와 같은 직접적인 연기뿐 아니라, 인물을 담아내는 방식, 이를테면 프레임 내에서의 배치라거나 의도적으로 흐트러트린 카메라 초점 등은 섬세합니다. 입에 무는 얼음 하나로 무더위가 가진 답답함과 짜증스러움과 갈증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장애인의 수고로움과 연결한다거나, 육중하고 둔탁하게 닫히는 냉장고 문소리의 질감을 활용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패닝>인데요.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선풍기와 낡은 선풍기에 비유된 주인공의 삶을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패닉(Panic)의 언어유희처럼 들린다는 것도 재미있죠.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정작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앞을 보는 사람들은 정작 주인공과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안정적인 사건과 안정적인 주제의식 위로 일련의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성실함이 돋보이는 단편이군요. 전예진 감독, <패닝>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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