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붉은 날 _ 슬라롬,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그냥_ 2021. 12. 2. 06:30
728x90

 

 

# 0.

 

새하얀 설원을 가르는 붉은 날.

 

* 날² [명사] _ 연장의 가장 얇고 날카로운 부분. 베거나 찍거나 깎거나 파거나 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슬라롬 :: Slalom』입니다.

 

 

 

 

 

# 1.

 

서사는 날카롭고 직선적입니다.

 

숨겨진 비밀 따위의 과장된 변주 없이 날 것 그대로를 전개합니다. 시니컬해 보일 정도의 선명성이 드라마가 작동하기 위한 높은 몰입도를 정석적으로 설득합니다. 프랑스 영화는 이 강단이 참 매력적이죠. 미성년자 성폭행이란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 특별히 문제적인 개인이 특별히 문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그걸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건 감독도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바는 문제적 개인이 만들어낸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피해자가 저항하고 탈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환경과 시스템입니다.

 

작품엔 두건의 성폭행이 묘사되는데요. 첫 번째 사건을 짧은 시간 벌어진 충동적인 유사 성행위로 설정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인공 '리즈'의 마지막 한마디 "싫어요."를 그 첫 번째 추행 때 말할 수 있었더라면 이후 이어지게 될 무려 50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의 고통과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무엇이 이 15살 소녀로 하여금 싫어요 라는 한마디를 말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게 만드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걸, 두 폭력 사이의 수위의 격차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캐릭터 설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은 마음만 먹었다면 코치 '프레드'를 얼마든 지 더 과격한 악당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스포츠계 성폭력에 대한 사회고발성 작품인 데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바가 깊을 여성 감독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하지만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은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영화의 목적은 단순히 프레드를 질타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 2.

 

소녀는 고립되어 있습니다. 해체된 가정에서 부모의 보호는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물리적 측면 모두 작동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고립을 가중시킵니다. 프랑스의 유소년 선수는 일정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꿈을 접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빈약한 구제책이라는 것 역시 시스템의 책임을 어떤 사람인 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녀는 운동선수로서 자기실현의 욕망뿐 아니라 생존 그 자체를 저당 잡혀 있습니다.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상황의 잔인함을 다룹니다. 최대한 버텨내던 리즈가 결국 무너져 내린 계기란 엄마가 돌아와 보호해 주겠노라 말하는 순간이었음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것이 아님으로 인한 생의 버거움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거친 숨소리로 표현됩니다.

 

작품의 가치는 두 번의 성폭행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과 자신의 성을 교환하는 대목들에서 더욱 풍부해집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코치 앞에선 표정을 감추고 돌아가자 말하는 장면. 폭행을 당한 선수가 먼저 코치에게 관계를 요구하는 장면 등 말이죠. 영화 내내 드넓은 설원을 내달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이 모든 행동들에 자기 결정권이 있다 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향해 올곧게 걸어갑니다.

 

# 3.

 

문제의식에 집중하고 있기에 서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문제의식 이상은 없습니다. 나름의 해석이나 대안이 부재하다는 것은 한계라 해야 할 겁니다. 인물의 정서는 애초에 이입하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관객으로부터 '슬픔'이나 '불안' 따위보다는 '불쾌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데 주력하고 있어 특별함은 발견되지 못합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드라마의 퀄리티는 배우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요. 리즈 역의 배우 '노에이 아비타 Noée Abita'는 다른 작품을 찾아 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목에 핏대 세워 과격하게 울고 불고 하는 건 재능 있는 배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몸은 굳은 채 머릿속에서 발버둥 치는 정서를 어딘가가 부서진 사람의 얼빠진 표정으로 묘사하는 건 분명 특별한 성취라 해야 할 겁니다.

 

 

 

 

 

 

# 4.

 

묘사는 정갈하고 섬세합니다.

 

작품을 대표하는 요소는 역시나 '눈'이라 해야겠죠. 적어도 연출의 기준에서라면 화면을 가득 메우는 눈발 그 자체인 영화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내리는 동안엔 모르지만 쌓이고 나면 어느새 사람을 뒤덮어버리는 눈의 이미지를 코치의 가스 라이팅에 잠식되어가는 소녀의 심리 상태에 강하게 연결합니다.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눈을 먹는 모습과 크리스마스에 친구와 눈밭에서 뒹굴던 소녀는 결말에서 눈 속에 파 묻혀 죽어가는 모습으로 재등장합니다.

 

색의 활용도 인상적입니다. 영화는 푸른기가 도는 창백하고 고요한 세상과, 이를 가로질러 찢는 붉은색으로 나눠 볼 수 있을 텐데요. 여기서의 붉은색은 다시 다양한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여리고 섬세한 성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로도, 비가역적인 폭력으로도 활용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그 모든 것들은 소녀의 상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괜히 리즈가 하얀 눈발을 붉은 후드티를 입고 뛴 게 아니죠.

 

슬라롬의 운동성을 서사와 연결 짓는 데에도 적극적입니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동안에는 느리고 힘겹고 차분하고 두렵습니다. 코치와 함께 단 둘이서 올라갑니다. 내려오는 동안에는 혼자 내려옵니다. 출발하기로 한 이상 멈춰 세울 수 없고 목적지까지 스키는 끊임없이 가속되기만 합니다. 불가역적이죠. 옆에는 자신이 도태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쟁자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장애물들을 피해 기대와 욕망과 성적에 떠밀려 내려와야 합니다.

 

왼쪽으로 이탈하고 달아나고 싶지만 '운동 선수로서의 자기실현'이라는 압력에 떠밀려 원래의 경로로 되돌아옵니다. 오른쪽으로 이탈하고 싶지만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압력에 떠밀려 원래의 경로로 되돌아옵니다. 영화의 플롯을 경기의 진행에서 통으로 가져온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연관성들이죠. 소녀는 영화 내내 탁 트린 설원을 배경으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지만, 끝내 슬로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감옥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입니다.

 

무수히 많은 고립과 회피의 산물이 되어버린 지그제그 모양의 경로를 거쳐 끝까지 질주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뿐 아니라, 이 폭력적 사건을 통칭해 슬라롬이라는 구체적인 스포츠에 연결한다는 점에서 아주 공격적인 영화라 해야 할 겁니다.

 

 

 

 

 

 

# 5.

 

인물 배치도 썩 흥미롭습니다. 특별함은 없지만 그래도 정석적입니다. 주인공을 중앙에 놓은 후 코치를 데려다 앞을 가로막게 하거나 옆에서 개입하게 하거나 뒤에서 조종하듯 말하게 하는 등 폭력의 단계를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상황과 공간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특히 폭력을 겪은 후 시스템을 눈앞에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주인공 왼쪽엔 코치, 오른쪽엔 엄마를 배치하는 구도는 인상적이군요.

 

십 대 후반의 인간이 뿜어내는 성적 매력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딱 불쾌할 정도로 핥아내는 카메라의 구도도 인상적입니다. 앞서서도 잠시 짚은 거친 숨소리처럼 불안하고 버거운 정서를 표현하는 사운드. 폭행을 당하는 순간 움켜쥔 손, 초점 잃은 눈, 조여 메는 바지끈 따위의 디테일. 영화 자체가 긴 슬로프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인공의 고립감을 강조하는 화면비. 눈 내리는 설원의 한기와 보호 없이 노출된 미성년의 사회적 한기를 연결 짓는다거나, 포근한 공간으로 묘사된 코치의 집과 성상납을 유혹하게 만드는 사회적 온기를 연결 짓는 등의 열적 수사도 인상적입니다. 일련의 묘사가 장르의 균형을 단단히 잘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게 없었다면 단순한 고발 다큐멘터리가 되고 말았겠죠.

 

# 6.

 

영화는 허무하게도 "싫어요."라는 한마디 말과 함께 끝납니다. 코치도, 부모도, 협회도, 공동체도 폭력에 대한 대가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즈는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경기를 마쳤을 뿐입니다.

 

소녀는 사실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소녀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천운이 따랐기 때문이죠. 대회에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고 때마침 부모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지 못했더라면, 우승하지 못했고 엄마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리즈는 싫어요라 말할 수 있었을까. 허탈하고 무기력한 끝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일련의 결말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차선들과 차악들과 최악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끔찍하죠.

 

날카로운 날붙이로 새하얀 면을 베는 듯한 영화입니다. 깨끗한 설원을 스키 날로 베며 내려오는 듯한 모습의 슬라롬이라는 스포츠. 섬세하게 매만진 '푸른색 묘사'를 잔인하게 베어버리는 '붉은색 서사'. 깨끗하고 하얀 소녀의 순수성을 베어 살해하는 폭력입니다. '샤를렌느 파비에' 감독, <슬라롬>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