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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그냥_ 2024. 4.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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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

『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신작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일의 복원. 즉,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도 누가 만든 건지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스타일 역시 그대로다. 심지어 배경까지 그의 영화적 고향과도 같은 영국, 런던이다.

 

영화는 명목상의 주인공 마이클 '미키' 피어슨(매튜 매커너히)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야심과 능력을 겸비한 켈리포니아인은 금세 마리화나 시장의 거물로 성장한다. 집요한 경쟁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업수완은 귀족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다운튼 애비'를 향한 노스탤지어에 갇혀 사는 영국 귀족들은 평판과 위신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 규모와, 상속세를 포함한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는 데, 그들의 황폐한 저택에 대마를 재배하는 대신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던 것이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미키는 대마 합법화에 따른 불투명한 비전과 약간의 권태를 이유로 은퇴를 계획하며 유대계 미국인 사업가 매튜 버거(제레미 스트롱)와 접선한다. 매튜는 미키의 비즈니스를 보다 저렴하게 인수하기 위해 삼합회 조직원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와 음모를 꾸민다.

한편, 누가 보더라도 '더 선'에서 따온 듯한 에디터 빅 데이브(에디 마산)는 상류층에 편입되기 위한 파티에 참석하는데, 미키를 곤란하게 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 원한을 가지게 된 데이브는 파파라치와 사설탐정 중간 어딘가의 플레처(휴 그랜트)로 하여금 미키의 뒤를 캐게 한다. 집요한 취재 끝에 대마 사업의 전말을 알게 된 플레처는 딴생각을 품는다. 취재한 정보를 데이브에게 헐값에 파는 대신, 비밀을 보장하는 대가로 미키를 압박해 한몫 챙기려는 것이다. 그는 미키의 충직한 오른팔 레이몬드 '레이' 스미스(찰리 허냄)를 찾아가 자신이 가진 패를 조금씩 꺼내 들며 거래를 제안한다.

 

 

 

 

 

 

# 2.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동물에 빗대어 해석한다. 주인공 미키는 직접적인 은유를 빌리듯 수사자다. 풀어 넘긴 곱슬 머리카락과 듬성한 수염은 시각적으로도 그를 노련한 수사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내 로즈는 물론 암사자다. 그녀는 첫 등장부터 자신의 정비소에 여성만이 존재할 것을 이야기하는 데, 프라이드의 수사자는 가장 강한 한 마리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타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는 충직한 사냥개다. 플레처는 지저분한 쥐새끼다. 코치와 제자들은 날렵한 원숭이다. 드라이 아이는 탐욕적인 하이에나, 매튜는 음흉한 상어(영어권에서는 고리대금을 Loan Shark라 은유한다), 빅 데이브는 그의 파트너와 같은 돼지다.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의 굴에 숨어있는 음습한 두더지쯤 될까.

매튜와 드라이 아이는 수사자 미키의 '프라이드'를 탐하며 공격한다. 여기서의 프라이드는 중의적이다. 사냥터로서의 대마 사업을 공격한 것이기도, 그럼으로써 그의 자존심을 공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자 무리를 뜻하는 프라이드를 공격한 것이기도 하다. 수사자는 사냥감을 노리는 것쯤은 타협할 수 있지만(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에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지만) 암사자를 노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로즈의 엉덩이를 노린 드라이 아이는 세 발의 총알을, 사주한 매튜는 베니스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살점 1파운드를 요구받는다.

일각에서는 영화의 묘사가 지나치게 스테레오 타입이라거나, 심지어 반유대주의적이라 지적하는 듯 하나 정당하지 못하다. 애초에 영화의 지향이 사람을 동물에 빗댄 우화이기 때문이다. 인물을 돼지에 묘사하는 작품에서 돼지같이 행동하니까 지루하다 지적하는 것은 허무하다. 반유대주의라는 지적은 그보다 더 황당하다. 유대인 매튜를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리는 것이 반유대주의라 지적하는 사람들 가운데, 중국인 드라이 아이를 표독스럽고 폭력적인 삼합회로 그리는 것이 아시안 혐오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플레처다. 앞서 미키를 '명목상의' 주인공이라 소개한 이유다. 관객의 경험은 전적으로 플레처의 운용에 지배된다. 플레처는 자신의 취재와 추론을 시나리오로 엮어 레이를 압박하고, 관객은 이를 엿들으며 '구술이라는 플롯'과 '추측이라는 시나리오'를 종속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관객은 '가이 리치의 시나리오'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플레처의 시나리오'를 관람한다는 면에서 하나의 막을 거쳐 이야기를 보고 있고, 이는 총알과 음모가 빗발치는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조작이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가이 리치가 창조한 현실'과 '플레처가 추측한 시나리오'를 분리하지 못한다. 보다 정확히는 문제의식을 '인지'하지조차 못한다. 거짓일 수 있지만 뭐 어때가 아니라 거짓이라는 가능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몇몇의 프라이빗한 장면들, 이를테면 부부의 사적인 대화라거나 애정행각 따위는 플레처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흥미본위로 추측해 이야기를 부풀린 것에 불과하지만, 관객은 괘념치 않고 그 모든 것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 4.

 

영화 내에서는 '플레처의 취재'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화 밖의 관객들에게는 레이와의 대화를 빌려 공개된 것과 다름없다. 관객이 본 영화는 '플레처의 자극적인 취재와 구술'이라는 면에서 타블로이드와 동일하고, 관객이 느낀 재미 역시 타블로이드의 재미와 동일하다.

 

감독은 가이 리치의 영화가 아니라, 플레처의 시나리오를 보고 있음을 집요하게 환기한다. 마무리를 미키 피어슨이 아닌 플레처가 장식하는 것은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플레처이고, 미키는 타블로이드의 가장 재미있는 소재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영화가 사람들을 동물에 빗대어 조롱하고 가지고 노는 것은 그것이 전형적인 타블로이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비단 미키의 일화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재들, 이를테면 귀족 자제의 마약과 타락이나, 지역의 양아치들을 혼내주는 코치, 영국에서 살해당한 러시아 재벌의 아들 모두 타블로이드의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다. 영화에는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그것들이 현대의 타블로이드를 대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부는 영국을 너무 비하하는 것 아니냐 지적하기도 하지만 한심한 오해다. 감독은 그렇게 '묘사'한 적이 없다. 플레처가 그렇게 '구술'했을 뿐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부호들도, 귀족들도, 주먹들도, 심지어 언론인도 모두 언제고 타블로이드의 사냥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가이 리치는 수많은 위법성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타블로이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이유를 경험적으로 증명한다. 동물에 빗댄 등장인물들을 화려한 액션에 얹어 풍자하는 듯 보이지만 맥거핀이다. 진짜 목적은 멀쩡한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들어 씹고 뜯는 타블로이드와, 그런 타블로이드를 탐독하는 대중에 대한 풍자다.

 

'총알이 발사되는 황금 문진'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타블로이드의 은유고, 영화의 제목 젠틀맨은 그런 타블로이드를 탐닉하는 바로 당신이다. 크레디트가 오르고 난 후 가이 리치는 더 선을 펼쳐든 젠틀맨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혹시 빅 데이브의 '그 동영상'이 궁금하지 않던가.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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