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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그냥_ 2022. 11.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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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깍 조여 오는 모래시계의 의인화에 가깝습니다. 퍼즐류 공포게임으로 치자면 끝날 때까지 주인공 뒤꽁무니를 쫓는 메인 빌런을 생각하시면 무난하죠. 엄마가 다양한 핑계들로 계~속 해서 집 밖으로 싸돌아 다니며 주인공에게 '클리어 타임'을 제공하는 이유랄까요.

 

공포게임 짬이 높은 분들은 더 잘 아시겠습니다만 공겜에서 빌런의 캐릭터성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괴기하게 만들어 봐야, 점프 스케어 있는 대로 동원해 온갖 난리를 피워 봐야 트라이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반갑다 못해 30년 묵은 친구처럼 정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되려 공포게임의 완성도는 ⑴ 몰입을 위한 설득력 높은 시점 연출, ⑵ 반복 플레이의 지루함을 가려줄 다채로운 퍼즐의 퀄리티, ⑶ 서스팬스를 조율하기 위한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클리어 타임에 의해 결정된다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한창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퍼피 플레이타임> 같은 게임만 하더라도 메인 빌런은 별 볼일 없는 유아용 인형이었음에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들었던 것은 앞서의 세 조건을 충실히 만족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

 

방탈출 공포게임의 구성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영화 <런> 역시 그 기준에 충실합니다.

 

엄마가 서서히 다리를 구부려 눈을 맞추는 등 클로이를 휠체어에 앉혀둔 것을 적극 활용하는 시점 연출이 빌런에게는 권위를, 관객에게는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부여합니다. 집 안에 평생 동안 쌓아온 오브젝트들을 깔아 놓고 주인공에게 똘똘이 기계 덕후 기믹을 부여해 때론 지능적인 문제풀이로, 논리적인 설득으로, 지붕을 넘나드는 어드벤처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도박수 등으로 스테이지를 풍부하게 구성합니다. 거참 공교롭게도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미션을 클리어한 직후 나타나는 엄마의 등장 타이밍 또한 너무 시시하지도 너무 가혹하지도 않아 적절하기 이를 데 없죠.

 

주인공이 빌런과 맞서버리면 곤란하니 대결관계의 두 캐릭터 간 위력 차이는 필연적일 텐데요. 빌런에 겁나 세다거나 귀신이라거나 괴물이라거나 하는 식의 어드벤테이지를 부여하거나, 주인공에게 어린아이라거나 아프다거나 장애가 있다는 등의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 영화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합니다. 다리를 못 쓴다는 설정은 다시 단순한 페널티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의외적 해석으로 승화된다거나, 내러티브와 주제 의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짚어 칭찬할만한 의미 있는 성취라 할 수 있겠죠.

 

# 3.

 

관객 경험의 측면에서 '스릴'은 긍정적일 수도 있는 감정이지만 '서스펜스'는 명백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급함은 스트레스일 뿐 조급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세상에 없으니까요. 직접 플레이하는 방탈출 게임이나 공포 게임은 관객 혹은 게이머 스스로의 힘으로 방을 탈출하는 순간 누적된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만, 영화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은 큰 난관이었을 겁니다.

 

아니쉬 차칸티 감독이 내놓은 해법은 탈출 후 메인 빌런인 다이엔이 한껏 고통받으며 복수당하는 장면을 최대한 장르적으로 묘사하자는 것입니다. 공포 게임에서 빌런에게 복수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례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결말의 교도소 씬은 영화라는 장르에 맞게 보정을 한 것이라 이해한다면 무난하겠네요.

 

 

 

 

 

 

# 4.

 

자, 이제 세계관과 주제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요. 그래요. 우리 솔직해 집시다.

공포게임 튜토리얼 그거 세월아 네월아 읽고 있는 사람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죠.

 

영화는 봉준호의 <마더>처럼 왜곡된 모성이 테마라 할 수 있을 테지만, 혜자의 심리상태에 온전히 포커싱 했던 마더와 달리 이 영화에서 다이엔은 그냥 가짜 딸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이코 납치범에 불과해 유의미한 드라마적 깊이나 재미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증오보다 무서운 사랑. 폭력보다 무서운 필요. 독보다 무서운 알약. 왜곡된 보호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초록색 감옥과 요소요소에서 대칭되는 붉은색의 대조. 자립과 의지의 가치. 눈높이와 인물 관계의 연결이라거나, 좌우 혹은 전후 동선을 활용하는 방식, 마지막 복수에 담긴 클로이의 심리 따위에 대한 구조적 재미를 일부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방탈출 게임이라는 주목적을 극복하거나 압도할 정도의 완성도는 못된다는 생각입니다.

 

정리하자면 제목처럼 직관적인 영화입니다. 목표도 명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주인공도 관객도 감독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 원하는 종착점에 성공적으로 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특별하진 못하더라도 단단하고 오밀조밀한 미로를 알차게 탐험한 후 벗어나는 맛이 상쾌한 오락 영화랄까요.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이었습니다.

 

# +5. 여담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를 호평하던 관객과 평론가들이 조금 귀여웠다는 것입니다. 공포 게임 뉴비들의 풋풋한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군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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