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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시간과 격려 _ 라스트 버스, 질리스 맥키넌 감독

그냥_ 2024. 11.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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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맞닥뜨리는 죽음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으로

 

 

 

 

 

 

 

 

질리스 맥키넌 감독,

『라스트 버스 :: The Last Bus』입니다.

 

 

 

 

 

# 1.

 

시작과 출발이 정해진 노인의 여행은 무릇 인생을 은유하기 마련이나, 티모시 스폴의 이야기는 다소 이질적이다. 아내의 죽음에서 시작해 자신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면에서, 탄생에서 죽음까지 훑어나가는 '인생'보다는 '죽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에 가깝다. 또한 죽음에도 서사가 있으며, 출발점으로서의 죽음과 도착점으로서의 죽음이 달리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입에서부터 그러하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브리튼섬 서남단 랜즈엔드(Lands' End)에서 시작된 사랑이 동북단 존 오그로츠(John o' Groats)로 숨어든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메리의 공간인 텃밭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으로, 등 뒤의 죽음을 외면한 채 생명에 파묻혀 평생을 흘려보내 아내의 인식이다. 바깥의 날씨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오프닝은 무심하게 흘러가버린 긴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순리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두 사람의 낙원은 행복하고 안락하지만 거짓된 공간이고, 시간의 흐름 끝에 필연적 죽음이라는 순리를 비켜나갈 수는 없다.

 

녹음의 아치 아래를 지나 존 오그로츠의 저택에 들어간 부부는 혼자가 되어 돌의 아치를 지나 세상으로 돌아온다. 초록의 아치는 둘러싼 푸른 잎사귀처럼 생명을, 돌의 아치는 그와 대비되는 죽음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여행의 시작과 동시에 톰은 이미 죽음 안에 들어서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병증이 심각해 차도를 기대하기보다 여행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지만, 이미 죽음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두 번째 죽음을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로우대 카드는 버스 안 사람들과 주인공 톰을 구분하는 소소한 장치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지만 돈을 지불하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살아있는 현실의 사람들이고, 경로우대 카드로 대신하는 톰은 죽음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전반부 학생 한 명이 돈이 없어 승차에 거부당하는 건, 어린 학생은 무료로 버스에 타기엔(죽음으로 가는 버스에 타기엔)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 2.

 

글 서두에 이야기한 대로 죽음에서 죽음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곧 두 가지 다른 죽음이 있음이다. 하나는 비가역적으로 기능이 정지된 생리학적 죽음이고, 둘은 받아들이는 것으로서의 정신적-사회적 죽음이다. 톰은 전자의 맞닥뜨리는 것으로서의 죽음에서, 후자의 받아들이는 것으로서의 죽음에 다가간다.

 

오랫동안 부모가 찾지 않았던 낡은 묘비는 육체적으로는 이미 죽었지만 받아들임으로써의 죽음이 유예된 자의 초라함이다. 아이의 묘비에 찾아간 아버지가 세 가족의 단란한 사진을 놓고 작은 담요를 덮는 건 아이의 죽음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이고,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성불과 같은 것이다. 아내 역시 생에 대한 집착으로서의 텃밭에 쓰러진 육체적 죽음에서 유해가 바다에 뿌려지는 받아들이는 죽음에 도달한다. 렌즈엔드가 오랫동안 퇴적된 절벽의 무늬와 억겁의 세월 흘러가는 바다인 것은 두 번째 죽음을 상징하는 관념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종이지도의 경로와 수첩의 계획처럼 죽음이란 그 길이 정해져 있는 필연적인 것이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많은 난관들처럼 어렵고 고단한 것이다. 톰은 다양한 위기를 경험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오버랩되는 플래시백이다. 어린아이에게 접어주는 종이 개구리는 아기가 살아있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두운 밤 길 잃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가족은 장성한 아기와 단란한 가족을 상상하는 아쉬움이다. 익숙한 레스토랑과 그날의 객실은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집착이다. 입대를 앞두고 걱정이 많은 소년과의 대화는 어릴 적 자신의 불안에 대한 연민이다. 실제 있었던 가족의 추억과, 가족 이전의 나에 대한 기억과, 어쩌면 싶은 순간들의 후회와, 소망해 마지않던 미래가 뒤엉킨 심상은, 감독이 진정 관찰하고자 했던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인간의 숭고한 성찰이다.

 

 

 

 

 

 

# 3.

 

여느 여행이 그러하듯 중요한 것은 도착했다는 것이 아니다. 과정에서 주인공과 치열하게 교감하는 감상이다. 천천히 창밖 풍광을 내다보는 아련한 표정,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 대한 반가움, 밝고 건강한 젊음의 얼굴들을 바라보는 애틋함, 차마 직접 인사하지 못하고 메모를 남길 수밖에 없는 미련, 누군가를 위해 용서하고 용기 내는 순간들, 한 소절의 노래가 본질이고, 그런 면에서 본인보다 무려 서른 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배역을 연기한 티모시 스폴의 기여는 부분적으로 앙상한 면이 없잖은 영화를 두텁게 채워내고 있다.

 

주인공을 특별히 대단한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훌륭하다. 여행 중반 이후 톰은 사람들에게 버스히어로라 불리게 되는 데, 그것을 히잡을 쓴 여성을 구함으로서 된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작품은 정비공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낸 그래서 죽음을 직시할 수 있었던 모두가 애초부터 히어로였음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노인의 마지막 여행은 뭇사람들의 응원으로 나아가 환대로 마무리된다. 한 인간의 고단했을 인생에 대한 헌사이자 비로소 훌륭히 죽음을 마친 인간에 대한 찬사다.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죽음에게도 시간과 격려가 필요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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