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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성장하는 꿈들의 유쾌한 합주 _ 스쿨 오브 락,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그냥_ 2023. 6.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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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Let's Rock~

Everybody, Let's Rock~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쿨 오브 락 :: The School of Rock입니다.

 

 

 

 

 

# 1.

 

제목에서처럼 '스쿨'과 '락'에 대한 영화입니다. 스쿨은 [성장]이라는 가치를 공간화합니다. 락은 [꿈]이라는 가치를 청각화합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잭 블랙이 정의하는 성장과 꿈은 그 자체만으론 불완전합니다.

 

호레이스 그린 사립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성장에 매몰된 아이들입니다. 성적과 시험에 기계적으로 반응합니다. 성적에 따라 우쭐하거나 주눅 들거나 삐딱하거나 무기력하는 등 종속되어 있는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듀이는 성장 없이 꿈만 좇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낭만을 추구하기만 할 뿐, 낭만에 다가가기 위한 어떤 종류의 성실성이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죠. 무턱대고 관객에게 뛰어드는 무모함과 반나체로 침대에 드러누운 태만함 외에도, 학교 첫날 듀이가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지루한 학교에 대한 푸념뿐 아니라 성장이라는 가치에 대한 깊은 불신을 엿보게 합니다.

 

꿈 없는 성장은 인간을 맹목적이게 만들어 위태롭게 합니다. 성장 없는 꿈은 지속성을 상실해 실패하게 합니다. 사회를 꿈과 성장이 괴리되어 있다 진단한 후, 두 가치가 하나로 융화된 끝에 비로소 온전한 지향에 도달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각각의 가치를 공간과 소리라는 전혀 다른 위상으로 형상화한 것은, 작품의 메시지가 상호보완적인 공존에 있기 때문이죠.

 

 

 

 

 

 

# 2.

 

영화는 모든 인간을 꿈꾸는 인간이라 정의합니다. 그저 어른이 되는 동안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플롯 상 듀이와 가장 뚜렷한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교장 잘리와 친구 네드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두 사람마저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느라 꿈을 억누르고 있을 뿐, 마음속 깊이 꿈을 간직하고 있었음이 가감 없이 표현됩니다.

 

<스쿨 오브 락>에서의 'Rock'은 꿈이라는 가치를 대리하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락은 짐짓 영화의 모든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시에 꿈을 투영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듀이가 반복하는 당신 안의 락을 찾아라는 말은 곧 꿈을 찾아라는 말과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손쉽게 락 음악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락이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만큼 특별히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은 모두 마음속에 꿈을 품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락의 저항정신을 강조하는, 어떤 면에선 투쟁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무찌르는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감독과 잭 블랙이 가진 꿈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본주의적 철학을 엿보게 합니다. 실제 영화 내내 듀이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지만 그 부딪힘은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저항이라거나 그 자체로 파괴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심지어 제도권의 시스템에 저항한다는 느낌조차 없죠. 저항이라는 것은 그저 꿈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부딪침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기에 듀이는 돌아갈 수 있겠다 싶은 순간엔 언제고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락' 그 자체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락에 투영된 꿈에 대한 영화라 이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3.

 

다소 의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장면을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40분 경의 혼자 작곡한 곡을 부르는 롱 테이크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이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교실의 아이들 뿐 아니라 혼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잭 블랙을 보는 관객이 느낄 감정은 아마도 '민망함' 혹은 '부끄러움'이었을 겁니다. 반면 당장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죠.

 

사람은 꿈꾸는 자신이 부끄럽다거나 민망하다 느끼는 순간 꿈에서 이탈합니다. 듀이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민망해하는 시점을 지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영화의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부끄러워하지 않던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전반부 객석에 다이빙하는 듀이와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듀이를 보며 민망하다 느낀 관객들이 결말에 다다라 멋지게 무대에 오른 듀이와 아이들이 멋있다 느끼게 되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순간 관객은 멋들어진 밴드의 무대뿐 아니라 오래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 4.

 

비슷한 주제의식의 작품들은 대게 강한 방향성과 목적성, 그 과정에서의 숭고함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면이 없다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꿈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은 <스쿨 오브 락>에 고유한 영역을 부여합니다. 꿈에 대한 온 몸을 다한 찬가이면서도 동시에 꿈의 불완전성을 직시하는 영화라는 모순은 작품의 핵심 내러티브로 승화되고 있는데요. 위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거나,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다루는 방식, 경연 대회 이후의 결말 등은 관련되어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정직하지 못한 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듀이의 위기는 꿈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공격 내지 방해 때문이 아닙니다. 오롯이 자멸이죠. 그는 시작부터 마지막 무대 전까지 실패만을 거듭하는 데요. 영화 내내 무례와 실패를 거듭하던 듀이는 무대에 오르기 전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합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최초의 성공에 도달할 수 있었죠. 감독은, 선생님과 학부모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존재는 오직 주인공, 듀이뿐이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해야겠죠.

 

결말의 카타르시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상은 락의 대척점에 있는 누군가, 이를테면 네드의 애인 패티를 공격해 반성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일 겁니다. 혹은 락에 열광하는 청중들 뒤로 부들거리는 클래식 음악 선생님이라거나, 분통 터트리는 학부모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교장을 그리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는 누군가를 내세워 망신을 주는 방식을 거절합니다. 그저 멋진 앙코르 무대를 하나라도 더 들려줄 뿐이죠. 앤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를 집어치우고 락 스타가 된 아이들의 성공과 화려함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학생이고 어른들은 여전히 선생님입니다. 락은 근사하지만 그럼에도 방과 후 교실의 형태로 학교가 락을 품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5.

 

스쿨은 이 같은 꿈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성장의 공간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락 오브 스쿨>이 아니라 <스쿨 오브 락>이라는 것은 곱씹어 볼만합니다. 학교에서 만들어진 '락'이 아니라, 락을 만들고 연주하는 '학교'라는 것이니까요. 꿈은 성장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성장에 도달합니다. 어쩌면 영화의 핵심은 락 보다 스쿨에 더 가까이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죠.

 

학교는 성장이라는 가치를 구체화하는 공간일 뿐이기에 그 대상을 학생으로 국한시키지는 않습니다. 학교를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꿈과 만나 성장합니다. 직책에 억눌려 있던 교장도, 관성적으로 살아가던 다른 교사들도, 완고하던 학부모들도, 심지어 소심한 네드도 모두 나름의 성장을 얻습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굳이 '니들은 꿈을 회복하기 이미 글렀다'라고 질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작품 전반에 걸친 느슨하지만 선량한 분위기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딱 하나의 캐릭터를 낙오시키는 데요. 바로 사라 실버맨의 패티입니다. 그녀는 꿈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꿈을 부정하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만 같은 잭 블랙에게조차도 꿈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단호하게 거절됩니다. 실제 그녀는 영화 속 유일하게 꿈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직업은 무언가에 종속되고 복무하는 존재라는 것을 은유하는 비서죠. 잊고 지내던 꿈을 찾아 공연장으로 향하는 네드가 경고의 이미지를 담은 붉은 문을 쾅 닫으며 단절을 표현하는 장면은 분명 상징적인 맛이 있습니다.

 

 

 

 

 

 

# 6.

 

마무리로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살짝 해 볼까요. 아이들에게 미숙한 면을 하나씩 기계적으로 분배하고 그들이 컴플랙스를 극복하고 각자의 역할을 찾아 성장하게 한 후, 아이들이 역으로 선생님을 구원하는 서사는 평이합니다. 아주 오래된 학교 영화들까지 거슬러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봉 10년 전 <시스터 액트>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텐데요. 80년대, 넉넉 잡아 90년대 초 즈음 개봉한 휴먼 코미디였다면 모를까 2003년에 개봉한 작품의 기준에서라면 지루한 이야기라 해도 억울하진 않을 겁니다. 참고로 같은 해에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그 외에 <파 프롬 헤븐>, <갱스 오브 뉴욕> 등이 개봉합니다. 어느 동양의 작은 반도 국가에선 <올드 보이>와 <살인의 추억> 등이 개봉했던 해이기도 하죠.

 

락에 투영된 꿈의 불완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걸 장황하게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영화는 락 음악에 대한 거대한 헌사라 해도 좋을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관련 장르 음악에 대한 조예가 있는 관객이라면 스쳐지는 음악들과 귀를 잡아끄는 위대한 이름들, 군데군데 배치된 포스터와 앨범 재킷들과 아이코닉한 코스튬과 소소한 농담을 탐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작품이랄까요.

 

끝으로 배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영화의 동력은 잭 블랙이라는 배우의 가공할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이 작품을 전후해서 이후 <터네이셔스 D>와 <나초 리브레>에 이르기까지 한창 최전성기를 지나고 있던 잭 블랙의 에너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언제고 다시 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랜스 대신 일렉 시타를 들고 로시난테 대신 낡은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단발의 돈키호테는 함부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스쿨 오브 락>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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