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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파스텔색 울타리 _ 스크래퍼, 샬롯 리건 감독

그냥_ 2023. 11.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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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혼자라는 오해가 만든 파스텔색 울타리를 사랑스럽게 넘는다.

 

 

 

 

 

 

 

 

샬롯 리건 감독,

『스크래퍼 :: Scrapper』입니다.

 

 

 

 

 

# 1.

 

큰 틀에서는 가족영화 겸 성장영화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일찍 엄마를 여읜 열두 살 배기 엄복동 조지와, 뜬금 나타나 아빠라 주장하는 짝퉁 에미넴 제이슨이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식의 가족영화이구요, 동시에 각자 나름의 자기 성찰에 도달한다는 면에서 성장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비슷한 경우 결말에 이르러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한다는 식으로 흘라가기 마련입니다. 내내 퉁명스럽던 사람들이 팀워크가 요구되는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겪은 끝에, "...아빠...", "...우리 딸..." 뭐 이런 식의 눈물 폭발 엔딩은 익숙하죠. 그렇게 변화한 모습을 대단한 철이라도 든 것인 양 한껏 북돋은 다음, 관객 니들도 이렇게 사세요라는 교훈극으로 흘러가는 게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스크래퍼>가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가족 내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두 주인공은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한 후 그저 옆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 다짐할 뿐이죠. 젖니 빠진 딸의 이빨을 훔쳐 용돈을 주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아빠로서의 미숙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기계적인 역할 관계 정립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결말을 가족 두 사람이 모인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알리까지 관계에 끌어들여 포함시키는 데요. 이 역시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주의적 영화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죠. 빨간 안경 이동진 평론가는 '모든 좋은 관계엔 우정이 담겨 있다, 그게 부모자식 간이라도' 라는 평을 남겼는 데요. 중요한 것은 '집단으로서의 가족'에 우선하는 '개인으로서의 우정'이었음을 지목한다는 면에서 과연 통찰이 있는 평이라 하겠습니다.

 

 

 

 

 

 

# 2.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라는 나이지리아 속담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밖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소리와 대비되는 집안일 하는 여린 손길, 하늘을 대신하는 하늘 무늬 벽지와 집 안을 돌아다니는 거미, 익숙한 듯 쓰레기를 비우는 움직임과 냄새나는 유니폼, 소파 틈에 숨겨져 있던 머리핀을 발견한 후 보이는 서글픈 표정과 과장된 헤드룸은 그것이 '온전한 자유로서의 혼자됨'이 아닌 '슬픔에 대한 투쟁으로서의 혼자됨'임을 암시합니다.

 

주인공 조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배테랑 자전거 도둑이라는 점과, 온종일 입고 다니는 웨스트햄 유니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학교를 나가지 않고 복지사를 밀어내는 등의 행동은 관계를 거절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전거를 훔친다는 것 역시 인물의 도덕성을 지적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관계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죠. 헤머스의 유니폼은 혼자만으로도 온전한 하나의 팀이라 되뇌며 투쟁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데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엄마의 상실로 인해 강제된 것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녀는 혼자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더더욱 혼자가 되는 자기모순에 놓여있고, 이와 같은 내적 모순은 밤마다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듣는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가 있는 하늘에 닿기 위해 쌓아 오린 고철 탑으로 드러나죠. 소녀는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저 고립되어 있을 뿐 주변사람들에겐 말썽쟁이에 불과합니다. 중반 즈음 그녀와 친구냐는 물음에 손사래 치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소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비춥니다.

 

제이슨은 딸 조지와 똑 닮은 사람입니다. 양육하려는 사람으로서의 아빠이기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혼자된 또 다른 조지라 할 수 있습니다. 몇몇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혼자 훌쩍 떠나버린 과거라거나, 같이 자전거를 터는 등의 기행, 황당한 하얀 머리는 그 역시 여전히 철없고 미숙한 존재임을 증명합니다. 그는 조지와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어릴 적 과거와 아내와의 과거와 자신이 함께 하지 못했던 딸의 과거를 서서히 되짚어가며 성장합니다.

 

 

 

 

 

 

# 3.

 

스마트폰은 각자에게 남아있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전화를 잃어버린 후 친구를 공격했던 조지의 모습과, 몰래 들여다본 것에 화를 냈는 제이슨의 모습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엄마는 상처이자 그리움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상반됩니다. 조지의 스마트폰에 담겨있는 것은 엄마와의 대화 즉 과거인데 반해, 제이슨의 스마트폰에 담겨있는 것은 아내의 당부 즉 미래니까요. 과거에 발 묶인 조지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자 당황하지만,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제이슨은 그 마음을 어린 딸에게 전달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하나 꼽자면 역시나 두 사람이 만나는 결말을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잠깐 사라졌던 제이슨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팀을 이뤄 운동을 하고 있는 데요. 개인이 혼자 팀이라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각자의 영역을 인정함과 동시에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것이 팀임을 증명하는 장면입니다. 조지는 철창처럼 가로막혀 있던 사고의 세계를 넘어 제이슨이 있는 문 앞에 섭니다. "I Need Someone." 이라는 한 마디는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눈부신 성장입니다. 소녀의 철학적 성장은 이후 되돌아온 학교와, 집착을 벗어던지고 새로 칠하는 페인트와, 함께 어우러진 조지와 알리의 모습으로 두텁게 삶을 채워 나갑니다.

 

 

 

 

 

 

# 4.

 

가상의 삼촌 이름이 하필 '윈스턴 처칠'이라거나, 대표적인 강성 노동자들의 팀인 '웨스트햄'을 빌려오고 있다는 면에서 사회적인 맥락을 숨겨두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ONE의 <원펀맨>이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코미디로 풀어내고 있는 것처럼, 영화 역시 느껴지는 것보다는 훨씬 가혹한 이야기입니다. 보호자 없이 방치된 소녀의 존재와, 적당한 전화 녹음으로 회피해 버릴 수 있는 허술한 사회보장제도, 어린 나이에 자전거를 훔쳐 장물을 팔아 돈을 버는 행각과, 이 상황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나이브한 인터뷰 등은 상당히 비판적이죠. 그 모든 것들을 감정 실어 힐난하는 대신 안전한 파스텔 톤과 귀여운 아이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는 면에서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같은 처연함이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동시에 평화로운 공간과 유머러스한 스위시 팬의 연출 등에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는 각자 온전한 개인으로 성장해 미래를 그리는 우정에 도달합니다. 함께의 가치를 배우면서,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의 가치를 깨닫는 영화라는 면에서 탁월함이 있는 영화라 평할 수 있겠군요. 샬롯 리건 감독, <스크래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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