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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시나리오 특강 _ 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그냥_ 2023. 11.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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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거만한 천재가 들려주는 잔인하고 선량한 시나리오 특강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 :: Seven Psychopaths』입니다.

 

 

 

 

 

# 1.

 

마틴 맥도나입니다. 역작 <쓰리 빌보드>의 감독이자, 얼마 전 글로도 옮긴 바 있는 <이니셰린의 벤시>를 연출한 감독인 데요. 두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2012년 개봉작이죠.

 

일반적으론 코미디 범죄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마티는 극 중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세븐 사이코패스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마티(Marty)라는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감독의 이름 마틴(Martin)에서 가져온 애칭이죠.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할리우드 사인과 함께 시작되는 데요. 여기서의 할리우드는 구체적인 미국의 영화 산업이라기보다는, '영화'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다름 아닌 '영화'로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후로도 영화에 대한 영화임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티와 빌리가 굳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도 힌트가 될 수 있을 테고요. 멀리 산책하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관음 하는 장면은 <이창>의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하죠. 빌리와 한스의 자칭 '강아지 임대 사업'이란 결국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훔쳐다 되돌려주며 돈을 버는 일'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타인의 소중한 삶을 관찰해 그들의 경험을 훔쳐 이야기를 만들어 돌려주며 돈을 버는 영화일에 대한 풍자적 은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개를 돌려주며 한껏 겸손을 떠는 크리스토퍼 월켄의 모습은 썩 흥미롭죠.

 

이후 벌어지는 영화 속 모든 사건들이라는 것 역시 아무리 파괴적이라 한들 결과적으로 마티가 쓰게 될 작품의 완성을 위해 최대한 복무합니다. 마지막 총격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찰리를 다시 돌려보낸 후 제대로 된 총격씬에 돌입한다거나, 그 총격씬에 어울리는 공간을 섭외하는 것에 열을 내는 장면 등은 특히 코믹하죠.

 

 

 

 

 

 

# 2.

 

전반부 마티와 빌리는 세븐 사이코패스의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티는 다수의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모티브와, 종교인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결말만이 준비되어 있다 말하죠. 그 사이의 내용은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이코패스들과의 사건에 의해 채워지게 됩니다.

 

다음 장면에서 마티는 종이에 적힌 글귀를 수정합니다. 불자에서 아미시로, 퀘이커 교도로 수정하죠. 이후 한스가 퀘이커 교도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 데요. 이는 한스라는 인물이 마티(로 은유된 마틴)가 집필한 시나리오 속의 캐릭터임을 암시하고 이는 그의 숨겨진 과거를 통해 확인됩니다. 영화 속 모든 갈등이 정리되고 난 후 찰리의 시츄를 마티가 데리고 있는 장면 역시, 이 모든 이야기란 마티가 자신이 키우는 개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일 뿐임을 암시하죠.

 

중반 즈음 마티가 어떤 시나리오를 쓸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방향을 잡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막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의 장면인 데요. 마티는 자신의 작품을 전반부는 복수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후반부는 총격전도 복수도 없이 대화만으로 완성시키겠다 말하죠. 그 말은 그 자체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실제 영화의 전개에 반영되는 데요. 하지만 총격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빌리의 제안에 힘입어 대화 끝에 결국 총격전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 작가가 스스로 결정한 모티브와 스스로 창조한 사이코패스들과의 교감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영화는, 한스가 들려주는 녹음기로 상징되며 완성되죠.

 

마틴 맥도나에게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영감(시작)과 비전(결말)을 잡아 놓고 그 사이 여러 캐릭터들과 자유롭고 치밀하게 소통하고 교감하고 모험하고 경쟁하고 조언을 받으며 노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븐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임과 동시에, 영화를 상상하는 시나리오 집필의 프로세스를 나열한다 할 수 있는 것이죠.

 

 

 

 

 

 

# 3.

 

영화 전체가 시나리오 집필 프로세스의 재구성이라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각각의 시퀀스는 감독이 몸소 시현하는 예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례로 오프닝의 시퀀스를 살펴보도록 하죠.

 

할리우드 사인을 이어받아 첫 번째 사이코패스인 다이아몬즈 잭의 시퀀스입니다. 관객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두 명의 마피아는 그럴싸한 분장이 무색하게도 엑스트라입니다. 그들이 나누는 영화 <대부>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눈에 총알을 쏘는 이야기, 암살 대상인 여자에 대한 이야기나, 마치 타깃인양 관객을 낚는 조깅하는 여자는 모조리 맥거핀입니다. 심지어 킬러가 놓고 가는 카드, 다이아몬드 잭까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맥거핀일 뿐이죠.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모든 것들이 '허구'라는 점입니다. 영화는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자유롭고 폭력적인 허구적 상상과 서스펜스를 유도하는 맥거핀의 난립으로 점철됩니다.

 

반면 붉은 복면의 사이코패스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허구적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면의 재미만큼은 명백히 실존합니다. 폭력적인 대화 속 묘사의 자극성이라거나, 옷 속에 숨겨둔 총을 꺼내려는 마피아의 긴박감이라거나, 죽을 뻔했다는 것을 모르는 여자가 지나치는 장면의 서스펜스라거나, 화려한 몸매에 현혹되어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이라거나, 그 틈을 공략해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는 사이코패스의 긴장감이라거나, 붉은 복면의 카리스마라거나, 관객을 향해 총을 쏘는 구도의 폭발력이라거나, 죽은 마피아 위로 떨어트리는 카드의 호기심 따위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오롯이 시나리오와 연출의 힘임에 분명합니다. 이후의 시퀀스들. 이를 테면 딸을 잃은 퀘이커 교도 한스의 과거라거나, 연쇄살인범들의 연쇄살인범 릭비의 사연 역시 마찬가지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 4.

 

천재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가 사이코패스들과 노니는 장르의 롤러코스터를 충분히 즐기고 난 후,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역시나 앤딩입니다. 감독은 END로 끝나는 모니터를 보여줌으로써 세븐 사이코패스라는 이야기를 단호하게 닫는데요. 그다음 굳이 릭비와의 전화 통화를 전개하고 있죠. 일련의 장면은 영화란 작가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여파가 (긍부정 여하와 무관하게) 작가에게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주인공이 릭비를 기다리겠다 말한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의 흔적이 다음 작품의 영감이 되어 연속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막을 내리고 나면 모든 사이코패스가 맥거핀이 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면에서 히치콕의 <해리의 소동> 같은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물론 히치콕의 영화는 맥거핀의 작동 원리를 가지고 논다는 면에서 조금 더 기술적인 작품인데 반해, 본 작은 복합적 의미에서 시나리오의 집필 방식과 작동원리를 실현한다는 차별점은 존재합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 <세븐 싸이코패스>였습니다.

 

 

 

 

 

 

# 5.

 

논외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거의 고어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폭력 묘사가 과격한 작품인데요. 이는 영화 속 모든 것들이 '시나리오' 단계를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입니다. 글의 단계일 때는 그것이 실제 묘사되는 것에 비해 자극도가 낮아 역으로 과격하게 가감 없이 표현되기 때문이죠. 비슷한 예로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해당 작품의 각본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글로 보면 자극적이라 느끼지 못하는 과격한 표현들이 영상으로 옮겨질 때 놀라울 만큼 그 폭력성이 과장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죠.

 

즉, 어쩌면 불필요해 보일지도 모를 과격한 고어 표현이란, 그 자체로 이 작품이 시나리오에 대한 메타 영화임을 증명하는 미장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는 건데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 영화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온갖 모자이크를 잔뜩 먹여 놓고 있습니다. 청소년 관람가라면 또 모를까. 성인들만 보라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넣어 놓고 고어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담배, 심지어 욕설까지 모조리 지워버리면서까지 작품을 훼손하는 건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일련의 국가 기관의 지침에 따른 자기 검열은, 영화 강국이라는 외부의 칭찬을 부끄럽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