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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역치는 차갑다 _ 아가일, 매튜 본 감독

그냥_ 2024. 3.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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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이.

 

 

 

 

 

 

 

 

매튜 본 감독,

『아가일 :: Argylle』입니다.

 

 

 

 

 

# 1.

 

솔직해 집시다. 어차피 대부분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킹스맨 만든 감독이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사람이야? 나 그거 재미있게 봤어!' 정도의 반응을 볼 수 있겠죠. 관객이 기대할 아가일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재철 전어처럼 살이 포동포동 올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라거나, 라데꾸를 날릴 것만 같은 플랫탑 스타일의 근육질 헨리 카빌이 아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 콜린 퍼스의 슈트핏머가리 팡팡 터트리는 액션이라는 '그 맛'의 재해석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 기준, 시크릿 에이전트는 600만이 들었습니다.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골든 서클은 500만으로 선방했지만, 퍼스트 에이전트는 100만 언저리에 그쳤죠. 이야기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산으로 가는 데 성적은 점점 줄어든다. 매튜 본에겐 새로운 판이 필요했고, 또다시 시리즈 장사를 하기 위한 리뉴얼의 첫 작이 바로 <아가일>이었습니다만, 결과는 14만. 전격적인 내한에도 불구하고 참패라는 말도 거창할 정도로 폭망하고 말았습니다. 관객의 기대 혹은 요구와 달리 아가일은 재해석이 아닌 열화 된 재연에 그쳤기 때문이죠.

 

 

 

 

 

 

# 2.

 

아가일의 인상은 과격한 표현 한 꺼풀 아래 숨겨진 방어적인 태도입니다. 리뉴얼의 첫 작은 당연 순한 맛일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감안하더라도 본 작은 너무 소극적입니다. '매운맛 마초 감성 블랙골드 고어 액션 킹스맨'의 대척점으로서 '순한맛 여초 감성 블랙핑크 로맨틱 액션 아가일'을 기획한 듯한데요. 안타깝게도 속편에 순한 맛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타 창작자들이 같은 톤의 차기작을 만들며 망가질지언정 센 맛을 고수하는 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경제는 잘 모릅니다만, 역치는 차갑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에 대한 역치는 충분히 높아졌는데, 수위가 순하다 보니 좋게 말하면 안전하게, 나쁘게 말하면 시시하고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색깔 연막탄 사이에서 선보이는 사랑의 춤은 오페라에 맞춰 머가리 펑펑 터트리던 킹스맨에 비하면 소박합니다. 고양이 번지점프는 커플 스카이 다이빙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아가일의 크로마키용 초록색 모포는 해리 하트의 브리티시 슈트핏에 비하면 촌스럽습니다. 석유를 가르는 피겨 스케이팅의 속도감은 교회 액션의 화면 전환에 크게 밑돕니다. 오르골의 세뇌는 머리통에 유심칩 처박아 인공위성으로 터트리는 아이디어에 비하면 소심합니다. 스케이트 칼날로 사람을 두 동강 내던 가젤은 심심한 금고지기로 너프 됩니다. 직전까지 개 멋있던 콜린 퍼스 쿨하게 도륙 내던 빌런의 카리스마에 비해 된통 당하기만 하는 리터 국장은 허접합니다. 

 

이처럼 요소요소에서 의식적으로 킹스맨의 성공 요인들과 1 대 1로 매칭되는데요. 각각이 열화판의 인상을 준다면 살아남기 힘들죠. 재기 발랄하게 클리셰를 흔들고 도발적으로 액션을 뿌려대는 것에 장기가 있는 감독의 영화가 정작 가장 거대한 클리세인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 3.

 

너무한가요? 좋은 이야기도 조금 해 봅시다. 아가일은 크게 세 개의 다리로 지탱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정체를 뒤흔드는 반전 플롯, 매튜 본 특유의 클리셰 비틀기, 아크로바틱 하고 사이키델릭 한 병맛 액션인데요. 그래도 각각 일정한 완성도로 작동하고 있긴 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는 말에 흔히들 '불호'와 '위험'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만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곤란하죠.

 

강력한 트위스트로 풀어가는 리드미컬한 재미는 분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고 때때로 엉성하지만 주인공의 조작된 인격(엘리 콘웨이)과, 창작된 인격(에이전트 아가일)과, 과거의 인격(레이철 카일)과, 이 모든 인격이 통합된 자아가 각기 달리 인지하는 세계는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성실하게 견인합니다. 그 인식의 차이 안에서 마음껏 속아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제법 복잡한 플롯은 이후 지적하게 될 터무니없이 긴 런타임이라는 단점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 있죠. 인물 구도는 선역과 악역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각각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납작합니다만, 플롯을 통해 끊임없이 네 편 내 편을 뒤집음으로써 입체감을 자아냅니다. 이를테면 동전은 납작하지만 손가락으로 튕겨 빙그르르 돌리면 돌아가는 동안 내 눈엔 구처럼 입체적이게 보이는 것과 같달까요. 타인에 대한 인식과 판단으로 주인공의 혼란을 그리다 후반부 주인공의 정체성까지 함께 쥐고 흔드는 시도는 썩 과감합니다. 이야기보다는 이야기를 조작하는 방식을 즐기는 데 성공한 관객층에겐 제법 즐거운 영화여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죠.

 

다만, 반전의 작동이 묘사의 허점에 빠진 관객 스스로 만든 선입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장치적으로 속이고 있는 건 좀 치사합니다. 가령 화장실에서 에이든이 엘리를 죽이고 싶다 말하는 억지스러운 상황 전개 따위 말이죠. 사람에 따라선 '재미'보다 '농락'당하고 있다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방식이라는 건 지적될 수 있어 보입니다.

 

 

 

 

 

 

# 4.

 

클리셰를 가지고 노는 스타일과 연출의 묘는 아가일의 정체성입니다. 007 제임스 본드로 대표되는 첩보물의 클리셰를 과격하게 끌고 와 능숙하고 영리하게 뒤집어 예측을 벗어나는 전개는 이번 작 역시 강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파이 첩보물의 클리셰는 요리조리 뒤집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는 오마주처럼 고스란히 가져와 그 위에 올린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질적인 질감은 [역방향의 첩보물]과 [정방향의 로맨스]라는 상반된 장르의 충돌에 근거합니다.

 

픽션 속 상상의 세계가 실제로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검증된 것이기는 합니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데뷔작 <로맨싱 스톤>만 하더라도 벌써 4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니까요. 유서가 깊은 이야기라 할 법하죠. 매튜 본은 창작과 현실의 문제를 인식과 자아의 영역으로 해석하며 이를 눈 깜빡이는 순간의 1인칭화를 통해 표현합니다. 같은 장면에서 치열한 샘 록웰과 여유로운 핸리 카빌을 스위칭하는 코미디는 유려하죠.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와 핸리 카빌이 거울이 비쳐 대화하는 장면들에서는 애드가 라이트의 <라스트나잇 인 소호> 같은 작품들이 얼핏 생각나기도 합니다.

 

 

 

 

 

 

# 5.

 

플롯을 조작하는 구조적 재미는 있지만 스파이물로서 각본의 완성도 자체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미국, 영국, 그리스, 프랑스, 바다 한가운데까지 어지럽게 날아다니지만 충분한 설득보다는 로케이션을 위한 로케이션이라는 인상이 훨씬 강합니다. 이야기의 허점은 빌런인 정보국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조직의 권위가 추락하면 그 빌런에게 추격당한다는 위기의 권위도 함께 추락합니다.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주요한 근거 중 하나죠. 단계마다의 반전이 작동하고 나면 다시 인물들을 한 땀 한 땀 설명하고 있는 터라 반전과 설명부가 뚝뚝 끊긴다는 것 역시 관람을 둔탁하게 하는 단점입니다.

 

후반부 들어 두 주인공이 파트너 요원이라는 것, 특히 연인 관계라는 것이 확인됨과 동시에 동력을 크게 상실합니다. 연막탄 총질과 스케이트 칼질과 세뇌 주먹질의 액션 물량으로 어찌어찌 돌파하려 하지만 녹록지 않았죠. 끝까지 보고 나면 오프닝 그리스의 레이싱처럼 액션의 재미로 승부를 보려는 작품인지, 소설이 현실에 벌어진 주인공의 어드벤처를 즐기는 작품인지, 엘리와 에이든의 인식과 시간을 뛰어넘은 로맨스를 즐기는 작품인지 무엇 하나 명료하지 못한데요. 명확한 색깔 없이 2시간 20분에 달하는 런타임은 어쩔 수 없이 버겁습니다.

 

소소하게 그래픽의 퀄리티도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자아를 대리하는 고양이는 고양이라는 개념으로서만 존재할 뿐, 실제 살아있는 존재라는 감각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데요. 그래픽 덩어리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놀랄 사람은 세상에 없죠. (물론 실제 고양이를 던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표현해 긴장을 연출할 수 있었지 않냐는 것이죠.) 매튜 본 감독, <아가일>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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