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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규범을 회의하는 두 개의 눈 _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그냥_ 2024. 10.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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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바라보는 눈과,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 Poor Things』입니다.

 

 

 

 

 

# 1.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여지없이 과격하고 기괴한 스타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이번엔 또 어떤 관념에 도전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송곳니>(2009)를 통해 언어와 사고 체계의 상관관계를 재고하고, <더 랍스터>(2015)를 통해 자아와 관계의 함의를 탐구했던 감독은, 야심 찬 엠마 스톤과 함께 규범과 사상을 회의한다.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일탈이 아니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반하는 형태로 종속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함이고, 이는 그가 어떤 명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와 무관하게 여전히 규범적이다.

 

란티모스는 규범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주목하고 있고, 이는 주인공 벨라 벡스터라는 존재를 통해 명징하게 선언된다. 갓난아기는 규범을 벗어난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규범을 벗어날 수 있는 신체적 자유가 없다. 성인은 규범을 벗어날 수 있는 몸은 있지만, 규범을 벗어날 정신적 자유가 없다. 죽어버린 엄마의 몸에 접붙여진 아기의 뇌는 규범을 벗어난 정신과 규범을 벗어난 몸의 교접이다.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된 벨라는 세계를 모험함과 동시에 각각의 단계에서 규범에 도전한다. 뭇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무수히 많은 섹스보다 중요한 것은 단호한 눈빛의 벨라가 던지는 질문과 고찰이다.

 

 

 

 

 

 

# 2.

 

섹스를 '뜨거운 뜀박질(Furious jumping)'이라 부르는 것은 그녀의 인지 체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제안하는 규범을 해부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다. 섹스는 감독에 의해 두 가지 위계로 해체된 후 한 가지만 선택된다. 선택된 것은 생리적 작용이다. 성교를 위한 움직임과 그 부드러운 마찰이 유도하는 적절한 신경전달과 호르몬의 기작으로, 이는 뜨거움 + 뜀박질이라는 지극히 의학적 명명으로 정의되는 이유다. 배제된 것은 섹스에 얹어진 사상적, 문화적 규범들이다. 상대와의 관계 여부에 따른 독점성이라거나, 매매되는 순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성윤리, 용인 가능한 범주라고 합의된 적정한 파트너의 수와, 천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 체위 따위에 관한 규칙들 말이다.

 

돈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벨라는 무리 없이 매음굴로 향한다. 누구와 하든 섹스는 현상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고(첫 매춘을 일종의 실험처럼 흥미롭게 받아들였던 이유다.), 뜨거운 뜀박질의 생리적 효용도 얻으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규범 밖의 그녀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적어도 벨라에겐 '뜨거운 뜀박질'과 '시원한 오줌 싸기'는 다름이 아니다. 가정하건대 만약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돈을 주는 일이 있다고 하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당신은 웬 떡이냐 받아들일 것이고, 그저 벨라도 그러했을 뿐이다.

 

창녀라 비난당하는 벨라는 당연하다 생각해 미처 회의해 본 적 없는 규범의 민낯이다. 그녀를 힐난하고 저주하면서 동시에 동경하고 소유하고 싶었던 던컨 웨더번은, 규범에 안주하면서 동시에 억압됨을 느끼는 가여운 인간의 모순이다. 창녀촌을 뒹구는 벨라를 보며 성적 욕망 이외에 연민이든 분노든 그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은 벨라의 행동이 아닌 당신의 규범이 만들어 낸 결과다. 벨라는 벡스터 박사를 갓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이 갓윈이고 그 음성신호가 상대를 호출하고 지칭할 수 있다 판단했을 뿐이다. 만약 관객이 이를 종교적으로 위배되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면 이 역시 당신의 규범이 만들어 낸 결과다.

 

 

 

 

 

 

# 3.

 

영화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배드신이 등장한다 느껴지는 데, '과하다'는 것은 과하지 않은 적정한 섹스라는 것이 존재함을 전제한다. 통상의 영화에서 다뤄져야 할 적정한 빈도와 적정한 수위의 섹스가 합의되어 있다는 것 역시 문화예술에까지 침투한 규범의 결과다. 이때의 규범은 벨라도, 요르고스 란티모스도 아닌 오롯이 당신의 것이다. 상황 묘사 사이사이 어안렌즈로 촬영된 듯한 화면이 인서트 되는 건, 극장에 자리한 관객에게 이것은 벨라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당신의 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규범의 세계를 바라보는 비규범의 눈(벨라)과, 규범의 세계를 바라보는 비규범의 눈을 함께 바라보는 규범의 눈(관객)이다. 하나의 세계를 규범의 왼쪽 눈과 비규범의 오른쪽 눈으로 보는 동안, 다른 초점을 가진 양안의 위상차가 만드는 입체감은,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규범과 사상이 회의된 새로운 세계의 공간감이다. 그 기상천외함은 다시 탁월한 미감으로 환원된다. 영화는 무수한 예술작품들을 끌어오고 있는 데, 예술이란 무릇 규범에 도전하기 때문이고 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굳이 영화라는 예술을 하는 이유다.

 

벡스터 박사의 집을 나선 벨라는 리스본과 배와 알렉산드리아와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돌아오고, 앞선 추측에 따라 각각은 규범의 단계적 세분화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벡스터 박사의 저택은 보편의 예절 규범이다. 밥을 먹을 때는 얌전히 먹되 뱉지 않아야 하고, 소리와 의미를 결합해 언어를 배워야 하고, 볼일은 복도가 아닌 화장실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회의하는 식이다. 리스본은 상류 사회의 규범을 경험하고 질문하는 공간이다. 배와 알렉산드리아는 자본주의의 규범을 경험하고 질문하는 공간이다. 파리는 여성과 노동자로서의 규범을, 마지막 런던에서는 존재와 역사와 윤리적 규범을 경험하고 질문한다.

 

그 모든 규범을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혀 깨우친 벨라는 스스로 질문하고 결정하는 인간이다. 나는 의사가 되겠다는 선언은 벡스터 박사의 것을 물려받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과 사회와 이념과 여성과 역사와 윤리를 탐험한 자가 타인을 구원하겠다 나선 오롯한 결정이다.

 

 

 

 

 

 

# 4.

 

갓윈 벡스터는 반규범적 인간으로, 서두에 이야기했듯 규범을 반대하는 것과 규범을 회의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박사는 규범을 반대함으로써 과학적 정신에 도달할 수 있다 스스로를 속이지만 그것은 규범을 반대하는 형식의 새로운 규범일 수밖에 없고, 가릴 수 없는 모순은 영화 내내 새어 나온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는 이유이자, 퉁명스러워하면서도 맥스를 집 안에 들인 이유이며, 아버지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집착하는 이유다. 벨라가 떠나가자 억지로 새로운 벨라를 구함이고, 그럼에도 죽음을 앞두고 벨라를 찾아 그녀의 품에 안기는 이유다.

 

규범을 반대하는 것과 규범을 회의하는 것이 다르듯, 규범을 지배하는 것과 규범을 회의하는 것 역시 전혀 다른 것이다. 폭력적이기 그지없는 오브리 드 라 폴 블래싱턴 경은 단순한 폭력이 아닌 규범을 지배하려는 존재다. 규범을 반대하는 갓윈이 '불임의 성기'로 상징된다면, 규범을 지배하는 블래싱턴은 '도려내어진 성기'로 상징된다. 양쪽 모두 '뜨거운 뜀박질'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가여운 것들이다. 결말의 정원은 세계를 탐험한 끝에 도달한 벨라의 결론이다. 끊임없이 규범을 회의하는 예술가를 중심으로 온건한 보수주의자 맥스와 진보적 자유주의자 투아넷을 좌우에 두고 극단은 배제한다. 그나마 규범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 벡스터 박사와 회의론자 해리는 배제될지언정 연민하지만, 그럼에도 독재자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가여운 것>이 아니라 <가여운 것'들'>이고, 이는 영화 내내 가장 가여웠음에도 유일하게 가엽지 않은 벨라를 제외한 모두다. 규범에 종속되어 정신병원에 갇혀버린 덩컨 웨더번도, 규범을 반대하다 괴물이 되어버린 갓윈 벡스터도, 규범을 지배하려다 염소가 되어버린 블레싱턴 경도 모두 가여운 것들이다. 가엽지 않는 방법은 벨라가 되는 것이다. 창녀가 되거나 바지에 오줌을 싸라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굴종적이지도 특별히 혐오하지도 특별히 폭력적이지도 않은 채 오늘도 무수히 당신을 옭아매고 있을 규범을 담대하게 회의하는 것이다. 자기 인생에 주인이 됨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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