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드라마 305

줄리아 폭스 ⅱ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줄리아 폭스 -1-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morgosound.tistory.com # 10. 복잡 미묘한 감각적 연출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명쾌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라. 남의 가능성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간 패가망신한다. 가 그것이죠. '하워드'가 베팅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의 가능성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돌려 막기 식 부채의 불안정성으로 대처합니다. 세공조차 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위기 극복을 전적으로 기대고 있구요. 전문 평가사가 매긴 십만여 달러보다는 정체모를 감정사의 백만 불 ..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캔디드 캔디드 샷 _ 캔디드 샷, 강민지 감독

# 0. 강렬한 영화입니다. 과감한 영화입니다. 비단 사진뿐 아니라 사회적인 무언가를 관찰하고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필연적으로 거쳐갈 수밖에 없을, 자신과 창작물의 존재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일말의 은유 없이 직설적인 방법으로 다룹니다. 곧게 뻗어나가는 활시위처럼 감독은 과감하고 솔직하고 단호하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작품을 보는가. '강민지' 감독, 『캔디드 샷 :: Candid Shot』입니다. # 1. 캔디드 샷 [Candid Shot] 피사被寫의 인물이 포즈pose를 취하지 않거나 본인이 사진을 찍힌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한 사진. # 2. 이 영화는 사진작가가 피사체를 찍는 캔디드 샷이자, 캔디드 샷을 찍는 사진작가에 대한 캔디..

Film/Drama 2020.03.04

라이온 킹 리포지드 _ 라이온 킹(2019), 존 파브로 감독

# 0. 한식을 모르는 사람이 한식당을 차립니다. 자동차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신제품을 만듭니다. 여권도 없는 사람이 해외여행 가이드를 나서고, 워크래프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리마스터를 만듭니다. 결과야 뭐... 보나 마나 겠죠. '존 파브로' 감독, 『라이온 킹 :: The Lion King』입니다. # 1. 스스로 뭘 만드는 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벌이면 이런 참사가 벌어집니다. 원작 시리즈에 대한 이해 이전에 [동물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세부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기획한 영화입니다. 팬들에게 이 영화는 깐크래프트 리펀디드 만큼이나 기만적입니다. 핵 잡고 신캐릭을 내놓으란 요구에 2-2-2를 걸어 놓는 오버워치 만큼이나 기만적이죠. 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존..

Film/Animation 2020.02.27

기막힌 영화 _ 브라 이야기, 바이트 헬머 감독

# 0. 부정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에서도 괴기합니다. 인상적인 화면과 음향, 대사 없이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동화적 이야기, 관능적인 아이템들과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독특한 코미디. 이 모든 걸 품어내는 아제르바이잔의 황홀한 전경이 독보적인 매력을 확보하게 합니다. 동시에 대단히 불친절한 은유들과, 통념을 벗어난 행동들로 인한 핍진성의 부재,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뛰는 플롯과 이 모든 걸 한층 심화시키는 '대사가 없음으로 인한 불편함'이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죠. 어떤 분들에겐 영화제에서 상 탈만하다 싶은 인상적인 영화가 될 테지만,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도 단점들을 부정하지는 못하시리..

Film/Comedy 2020.02.19

구연동화 _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

# 0. 무서운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 무서운 건 아니구요.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이기 때문이죠.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이자 제54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의 감독 맞습니다. 살얼음을 내딛는 듯하군요. 까딱 헛소리를 잘못했다간 마니아들에게 영알못이라고 까일 테구요. 별 내용도 없이 좋다고 나댓다간 허세충으로 내몰릴 겁니다. 아! 그래서 감독 이름이 린치인 걸까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 What did jack do?』 입니다.     # 1.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닭가슴살 부드러운 여자 친구를 둔 말하는 원숭이가 일흔 넘은 감독에게 취조당하는 영화죠. 능청스럽게 원숭이 앞에 앉아 온갖 개드립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십여 분간 주절대다 원숭이 노래 한차..

Film/Comedy 2020.02.17

가여워라 _ 위로, 정유정 감독

# 0. 솔직히 유치합니다.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의 기준으로 보려 해도 이 영화는 못 만들었습니다. 학생 작품이라는 걸 감안해 기준을 더욱 낮춘다 해도 못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유정' 감독, 『위로』입니다. # 1. 연출도 연기도 대사도 모두 손발이 오그라들게 합니다. 유독 항마력이 없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이구야' 하며 눈을 감게 되는 순간이 몇 분 되지 않는 런타임에도 쉴 새 없이 포진해 있습니다. 마지막에 깔리는 음악에서는 페이탈리티가 터집니다. '어후...' 하고 한숨을 푹 쉬게 만듭니다. 단 1초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든 것만 같은 특유의 집착이 척추를 뒤틀리게 합니다.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너무 동떨어진 진지한 제목과, 포스터에 제목보다..

Film/Drama 2020.02.15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_ 손님, 윤가은 감독

# 0. 어른들의 사정이란 핑계로 간과되는 사람들의 긴장과 불안과 상처와 고통, 그 가운데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본질적인 순수성을 탁월한 감각으로 포착합니다. 과 에서 보여준 낮은 눈높이를 묘사하는 세심함은 이미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손님 :: Guest』 입니다.     # 1. 6살 배기 여자 아이, 9살 배기 남자아이, 교복 입은 소녀 그리고 아빠입니다. 순수성의 기준에서 명확한 위계를 가지는 인물 간의 입장과 관점의 대조가 다각적으로 펼쳐지며 단편적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부한 긴장감은 장르의 기능적 목적 뿐 아니라 주제 의식에도 충실히 기여합니다. 화가 치민 소녀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와, 음료를 권하는 아이에게 꺼지라 말하며 잦..

Film/Drama 2020.01.10

고독의 書 _ 토니 타키타니, 이치카와 준 감독

# 0. 한 줌의 수분도 없는 모래장. 모래의 바다에서 태어난 배. 그 배를 홀로 만드는 아이. 아이를 스쳐 지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걸음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들. 화사한 꽃들 가운데 꽃잎 한 장만 공들여 그려진 그림. 그 한 장을 바라보고 주목하고 관찰하는 아이. 의아한 그림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과, 선생님이 자신을 왜 부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늦은 저녁 홀로 타는 자전거, 쓰러질 듯 위태롭게 하지만 자유롭게 자전거를 모는 아이. ‘토니 타키타니’. ‘토니 타키타니’의 본명은 정말로 ‘토니 타키타니’입니다. '이치카와 준' 감독, 『토니 타키타니 :: トニー滝谷』입니다. # 1. 까슬한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는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건조해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찢어질 ..

Film/Drama 2020.01.08

빛과 노름 _ 수요 기도회, 김인선 감독

# 0. 기도회와 화투판과 마스크팩입니다. 화사한 햇살과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중년 여성과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앳된 얼굴의 엄마입니다. 이내 누군가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여자. 능청스럽게 말을 걸며 쫓아가는 남녀. 화장실 핑계로 숨어든 애기 엄마의 집과 신앙이 아니라 용돈벌이를 이유로 소개되는 기도회. 아! 이거 도박장이군요. '김인선' 감독, 『수요 기도회』입니다. # 1. 아무래도 도망가던 여자는 기도회로 가장 된 도박장을 운영하는 장주인 듯합니다. 홀로 가정을 꾸리는 처지가 딱한 애기 엄마를 업장의 일꾼으로 써 주려는 듯하군요. 쫓아가는 남녀는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경찰 정도로 보면 자연스러울 것 같구요. 우연한 계기로 도박장에 발을 들이게 된 순수한 애기 엄마가 도박에 점점 빠져들게 되고, ..

Film/Drama 2020.01.06

해부학 실험실 _ 비브르 사 비, 장 뤽 고다르 감독

# 0. 실험적이고 과감한 기법이 영화 전반을 지배합니다. 자유를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하게 몰락해가는 여인 ‘나나’의 삶이라는 핵심 서사보다 감독의 철학과 색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뭐랄까요. 이를테면 영화적 기법들을 전시해 놓은 듯한 인상이랄까요. 지금의 기준에선 다소 작위적이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 영화들의 체계적으로 훈련된 표현들의 유려함에 비하면 당시의 기법이란 아직 제시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명하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장 뤽 고다르’ 감독, 『비브르 사 비 :: Vivre sa vie』입니다. # 1.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기법과 효과가 1 대 1로 매칭 되며 그 작용 관계에 대해 진중하게 고찰합니다. 마치 영화..

Film/Drama 2020.01.04

It's Different _ 넷플릭스 드라마 EASY

# 0. 늘씬한 다리에 팬티가 반쯤 걸쳐진 썸네일처럼. 진하게 새겨진 새빨간 미성년자 관람불가 마크처럼. 드라마는 섹슈얼한 아이템들을 가감 없이 다룹니다. 만, 짜잔! 흔한 성인 드라마들이 추구하는 관능적 이미지를 예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19금은 어디까지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과감함은 이야기의 지평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두는 느낌이랄까요. “우린 주제에만 부합한다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달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이지 :: EASY』 입니다. # 1.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에피소드들은 독립적입니다. 최소한의 연결을 위한 등장인물이나 배경, 설정조차 없습니다. 30분여의 ..

Series/Drama 2020.01.02

신발 튀김 _ 콩나물, 윤가은 감독

# 0. 화면은 정갈하니 좋습니다만 이야기의 완성도는 글쎄요. 솔직히 별로입니다. 아이의 모험에 자연스러움이라곤 없습니다. 발로 뛰어 아이들의 하루를 취재하고 관찰한 것을 엮었다기보다는, 어른인 감독이 테이블에 앉아 상상한 후 무신경하게 이어 놓은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인과는 완전히 박살 나있고 모든 상황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가며 감독의 의도에 편리하게 복무하고 있죠. 앞뒤가 맞는 대목이 없다 보니 인물의 설득력 역시 망가집니다. 관객은 아이를 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아이의 하루를 상상한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요. '윤가은' 감독, 『콩나물 :: Sprout』 입니다. # 1. 영화가 시작되기 위해 아이는 심부름을 나섭니다. 모험 같아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가 한대 지나갑..

Film/Drama 2019.12.08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_ 무드 인디고, 미셸 공드리 감독

# 0.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 상징과 직설적 은유가 쏟아집니다만 감흥은 없습니다. 영화와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합니다. 스타일만 널브러져 있는 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나름의 정서가 있긴 합니다만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법이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메시지만큼 공허한 것도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리드할 선명한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나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무드 인디고 :: Mood Indigo』입니다.     # 1. 미친 것 같습니다. 미친 듯이 피곤합니다. 피아노를 치며 칵테일을 만드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영화 시작 5분여 정도만 오호라? 하고 솔깃한 뿐입니다. 이후부터는 넘쳐나는 과잉에 체력이 쭉..

Film/Romance 2019.12.07

밤의 우유니 사막 ⅱ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밤의 우유니 사막 ⅰ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 0.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떠올렸습니다. 낮의 그것도 아닌 야경이 깊게 드리운 우유니 사막 말이죠. 수분이 메마른 건조하고 morgosound.tistory.com # 6. 세 번째 파트는 '블랙'입니다. 파트의 주제는 '순응'이죠. 수줍음이 많던 샤이론은 마약상이 되어 있지만 타락이나 절망감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성인이 된 샤이론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 보다 정확히는 '복무'하는 인간이 되어 있다는 데 더 가깝습니다. 터렐을 가격한 데 대한 처분을 받고 난 후 샤이론은 멘토 후안과 같은 건장한 남자가 되어 있습니다. 후안 대신 대모 테레사를 아들처럼 듬직하게 지키고 있죠. 엄마 폴..

Film/Drama 2019.12.02

밤의 우유니 사막 ⅰ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 0.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떠올렸습니다. 낮의 그것도 아닌 야경이 깊게 드리운 우유니 사막 말이죠. 수분이 메마른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과 같은 소년의 삶에 쏟아질 듯 슬픔의 비가 내리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온 세상은 푸르른 달빛에 물들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바다에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소년의 숨 막힐 듯한 고독감과 쓸쓸함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군요. '배리 젠킨스' 감독, 『문라이트 :: Moonlight』입니다. # 1. 영화는 세 파트의 옴니버스 구조를 가집니다. 각각 소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대응되죠. 파트의 제목은 '리틀', '샤이론', '블랙'입니다. 서사는 '리틀'로 불리던 소년 '샤이론'이..

Film/Drama 2019.12.01

용두사미 _ 높은 풀 속에서, 빈센조 나탈리 감독

# 0. 두 남녀가 차를 타고 인신매매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오빠는 햄버거를 혼자 맛있게 먹고 그 꼴이 뵈기 싫었던 임산부 동생은 토를 하죠. 동생의 헛구역질에 입맛이 떨어진 오빠는 차를 세우는데요. 때마침 찝찝하기 그지없는 풀떼기들 사이에서 웬 꼬마 아이의 "도움!" 소리가 들립니다. 오지랖이 발동한 임산부는 뱃속의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고 남의 아이를 구하겠다 말하는군요. 동생은 갓 구운 피자 옆에다 읽던 책을 살포시 내려놓고 오빠는 먹던 햄버거를 남깁니다. 꼬마의 미끼에 낚여 풀 숲에 갇히게 된 오누이는 결국 아이언드래곤에게 빨래질을 당한 박무석이 되죠. 네. 이 작품은 햄버거를 남기면 변사체가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 『높은 풀 속에서 :: in the Tall G..

Film/Horror 2019.10.12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

Film/Drama 2019.10.03

다섯 번째 유령 ⅱ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morgosound.tistory.com # 7. '모린'의 정체성은 다면적입니다. 영매가 주목될 수도 있었구요. 쌍둥이가 핵심이 될 수도 있었죠. 날아다니는 혼령에 대한 이야기를 심화할 수도 '루이스'에 엮인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굳이 영화의 제목으로 를 결정합니다. 타인을 위해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 그런 직업적 역할 관계를 내면화한 삶과 영혼에 대한 내제적 접근을 풀어 보겠노라 규정합니다. 돌이켜 보면 영..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집요한 탐구입니다. 매력적인 반전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퍼스널 쇼퍼 :: Personal Shopper』입니다. # 1. '모린'은 '키라'의 퍼스널 쇼퍼입니다. 모린은 그녀에게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복무합니다. 모린의 시간과 땀은 키라의 삶을 더욱 화려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값비싼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를 구매하는 순간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결정을 내리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라면 볼 일 없었더라면 ..

꼭. 이렇게. 어려워야만. 속이 후련했냐! _ 아니마,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미술관에 갈 때가 있습니다. 친구 없는 찐따가 혼자 다니면서 쪽팔리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쥐뿔 아는 게 없더라도 온 바닥청소 다하고 다닐 것만 같은 롱코트와 와인색 스웨터에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엔 전시 브로셔를 든 채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면 손쉽게 지적인 느낌의 쿨한 인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꿀팁이니 메모해 두세요. 요즘엔 워낙 갤러리도 많고 양질의 전시도 많다 보니 사진전이나 고전 미술, 조형예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전시들이 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만만한 현대미술입니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2/3 지점 즈음 후미진 곳에 영상을 무한 반복해둔 암실 같은 게 곧잘 있는데요. 그런 모퉁이진 곳..

Film/Drama 2019.09.24

영상물 _ 걸프렌드 데이,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 0. 『Daum Movie』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운한 기념일 카드 작가가 불행을 당하는 영상물. 정확합니다. 저 문장이 전부입니다. 주인공은 불운하게 실직한 이혼남이구요. 기념일용 카드 문구를 만드는 작가였구요. 이야기 내내 불행하구요. 결과물은 영화가 아닌 '영상물'이죠.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걸프렌드 데이 :: Girlfriend's Day』 입니다. # 1. 고전적 화면비의 기념품 카드 광고. 시도 때도 없이 대문짝만 하게 들이미는 주인공의 얼굴. 과감하다면 과감하고 과격하다면 과격한 설정들. 정적인 구도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핸드헬드 카메라. 미친놈인가 싶은 부엉인지 올빼민지 모를 닭둘기와 섹스하는 전 마누라에, 월세 대신 맡겨진 짐덩어리 꼬맹이가 제각각 따로 놉니다..

Film/Comedy 2019.09.23

내가 너를 놓쳤어 _ 먼 훗날 우리, 유약영 감독

# 0. 왕가위 감독의 , , , , 진목승 감독의 , 혹은 오우삼 감독의 시리즈와 같은 냄새입니다. 개인의 곤궁함으로 모자이크 된 화려한 도시를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 표류하는 사람들의 위태로움과 발버둥. 그 아래 흐르는 처연하고 섬세한 서정성과, 처절하고 육중한 고독감 등을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빛나는 불꽃처럼 눈부시게 그려내던 그 시절의 그 영화들 말이죠. 유약영 감독, 『먼 훗날 우리 :: 後來的我們』 입니다. # 1. 물론 정서의 결은 살짝 다릅니다. 홍콩 영화는 반환을 앞두고 거대한 집단이 통째로 입양되는 듯한 긴장감,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불안함, 정착하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의 고독감,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에 대한 짙은 회의와 허무함..

Film/Romance 2019.09.20

삶이란 무겁고 허무한 것 _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 0. '소영'은 박카스 할머니입니다. 박카스이면서 할머니죠. 곤궁하고 비굴하고 비참한 창부로서의 정체성과, 넘치는 나이가 되어버린 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첩된 사람입니다. 각 정체성이 분리되어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겹쳐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죠. 소영이 민호의 고사리 손을 잡고 자신을 사줄 노인들을 찾는 장면. 손님과 일을 치르기 전 아이를 여관 프런트에 맡기는 장면은 이 인물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마냥 냉소적일 것만 같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복잡 미묘한 내면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도덕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진단하고 결정지은 후 방치한 삶들 안에도 일반과 다르지 않은 나름의 깊이가 있었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감독은 박카..

Film/Drama 2019.09.18

단편 몰아보기 _ 기대 / 바빠서 / 한수탕 / 여름의 소리

# 0. 혹자는 예술의 이유를 '언어의 불완전성을 메우기 위해'라 하더군요. 절묘한 말입니다. 언어가 모든 정서나 개념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예술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난임 부부의 오래도록 기다렸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평생 해오던 일을 마무리 짓는 순간, 죽일 듯 미웠던 사람의 비참한 마지막을 지켜보는 순간, 시한부 판정을 받는 어떤 이의 하루. 우린 그런 순간들을 상상하고 서술해 묘사할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의 특별한 정서들을 말로 풀어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박은정' 감독, 『기대』입니다. # 1. 국어사전은 '기대감'을 '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림'이라 정의합니다. 담백하고 정확한 것 같긴 합니다만 우리가 통상 이해..

Film/Drama 2019.09.16

팔자 좋네 _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 0. 팔자 좋은 영화입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건지 요리사를 준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늙은이 '혜원'이나, 수틀린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고향 내려가 번듯한 과수원 사장님이 된 '재하'나, 지 승질 못 이기고 부장 머리에 탬버린을 내려쳐도 별 탈 없는 '은숙' 모두 팔자가 좋습니다. 하나뿐인 자식 내팽개치고 훌쩍 집 나가 버린 엄마도, 반찬 몇 개 던져주고 농사일에 조카를 부려먹는 고모도 모두 팔자 좋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팔자가 좋은 사람은 감독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은 감독이거든요. 임순례 감독, 『리틀 포레스트 :: Little Forest』 입니다. # 1. 살다보면 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지갑이 빈곤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야윌 수도 시간에 쫓길 수도 있습니..

Film/Drama 2019.09.05

나디아 여행기 _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들랜드 제작

# 0. 제목 속 러시아 인형은 아마도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말하는 거겠죠. 꺼무위키에서는 '어머니를 뜻하는 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ешка의 결합을 어원으로 하는 전통인형으로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기원하는 러시아의 상징물'이라고 기술합니다만... 대부분 "그 왜, 오뚝이 같이 생겨 가지고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는 거"라고 하면 알아먹는 목각인형 말하는 게 맞습니다.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 :: Russian Doll』 입니다. # 1. 다복과 다산의 상징답게 인형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론 각각의 인형이 다음 인형을 낳는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만, 보기에 따라선 모母인형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이 안으..

Series/SF & Fantasy 2019.09.04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보단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만..

Film/Comedy 2019.09.02

본건 있어 가지고 _ 대만 TV 시리즈 괴기특급

# 0.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은 뭐하는 사람인지 이전에 존재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193분에 걸쳐 방향성 없는 이미지 과잉이 펼쳐집니다. 중2병 돋는 앵글에 뒤틀린 어미 같은 과장된 연기가 담깁니다. 구청에서 찍어낸 관광지 기념품 같은 싼마이 질감과, 스노우 어플 느낌의 뽀샤시 필터와,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싸이월드 감성 흑백처리가 애저녁에 죽은 기괴함을 살려보려 인공호흡을 합니다. 감독 자신조차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합니다. 어디선가 본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카피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대만 TV쇼 넷플릭스 시리즈, 『괴기특급 :: Til Death Do Us..

엄마의 이야기 _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

# 0. 운영 중인 학원은 접었습니다. 사별한 남편은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잔소리를 쏟아내던 엄마에게 가슴 아픈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런 '효진'이 죽은 남편의 하나뿐인 혈육을 거두기로 합니다. 그녀는 16살 아들 '종욱'을 빌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를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한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해." '이동은' 감독, 『당신의 부탁 :: Mothers』입니다. # 1. 살다 보면 아프지만 일을 해야만 하는 날들이 더러 있죠. 현실은 마음 같지 않고 숨만 쉬어도 지치고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버겁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그런 날. 영화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

Film/Drama 201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