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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빛과 노름 _ 수요 기도회, 김인선 감독

그냥_ 2020. 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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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기도회와 화투판과 마스크팩입니다. 화사한 햇살과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중년 여성과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앳된 얼굴의 엄마입니다. 이내 누군가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여자. 능청스럽게 말을 걸며 쫓아가는 남녀. 화장실 핑계로 숨어든 애기 엄마의 집과 신앙이 아니라 용돈벌이를 이유로 소개되는 기도회.

 

아! 이거 도박장이군요.

 

 

 

 

 

 

 

 

'김인선' 감독,

『수요 기도회』입니다.

 

 

 

 

 

# 1.

 

아무래도 도망가던 여자는 기도회로 가장 된 도박장을 운영하는 장주인 듯합니다. 홀로 가정을 꾸리는 처지가 딱한 애기 엄마를 업장의 일꾼으로 써 주려는 듯하군요. 쫓아가는 남녀는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경찰 정도로 보면 자연스러울 것 같구요. 우연한 계기로 도박장에 발을 들이게 된 순수한 애기 엄마가 도박에 점점 빠져들게 되고, 그 순간 경찰이 업장을 덮치면서 곤욕을 치른다는 식의 서스펜스쯤 될 테죠. 영화가 시작한 지 10 분도 채 되지 않아 그림이 싹 그려지는데요. 이대로 흘러간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울 겁니다.

 

# 2.

 

하지만, 짜잔!

나이브한 예상은 완벽히 빗나갑니다.

 

경찰인가 싶었던 남녀는 더 큰 도박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고, 수요기도회는 단순히 동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박장이 아니라 보다 큰 판으로 호구들을 들어다 바치는 중간책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애기 엄마가 동네에 숨은 도박판에서 출발해 교외에 자리 잡은 도박장을 지나 야밤의 컨테이너까지 손대게 됩니다. 방점을 딱 찍는 순간, 이전의 순수한 표정과 정갈한 모습은 간데 없이 하나뿐인 아들마저 내팽개친 채 도박장에서 발견된 엄마의 모습과 연기는 충격적입니다. 솔직히 런타임을 생각할 때 볼륨이 이렇게 확장될 줄은 몰랐는데요. 역시 단편이라고 함부로 얕잡아보면 큰 코를 다칩니다.

 

인물을 배치하고 소개하고 관계를 설정하고 대사를 만들고 공간과 시간의 디테일을 설정하여 이야기의 구성을 짜임새 있게 갖춰 나가는 솜씨가 훌륭합니다. 창조적이라거나 도발적이지는 못하지만 대신 상당히 능숙하다는 인상입니다. 도박에 빠진 엄마가 아들 손을 잡고 벗어나나 싶었던 찰나, 깊게 저물었던 해가 떠오르려나 싶었던 찰나에서의 반전은 주제 의식을 육중하게 떠받칩니다.

 

 

 

 

 

 

# 3.

 

몇 가지 지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우선은 감독의 ‘절제력’이었습니다.

 

잡다한 미장센들을 쳐덕쳐덕 발라두는 것 대신 빛의 질감에 확실히 힘을 싣습니다. 몰락하고 타락하는 동안의 물리적, 정서적 상황과 회생의 기회와 '그럼에도'의 비극을 연출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 외의 오브젝트들, 이를테면 애기 엄마가 만든 거울이나 아들의 천진난만한 사진과 같은 것들은 최대한 친절하게 활용함으로써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는 동안 피로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은 대조적이죠. 많은 감독들이 욕심에 못 이겨 온갖 작위적인 연출을 과용하다 길을 잃는 것과도 대조적입니다.

 

# 4.

 

다음은 공공기관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가지고 있는 선입견. 공무원들이 개입해 만든 것들 특유의 무책임함과 무신경함이 영화에 묻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솔직히 중간에 경찰이 후다닥 들이닥쳐서 잡아가고, 경찰들이 하이파이브하고, 마지막에 반성하면서 엄마와 아이가 손 맞잡고 "엄마! 우리 함께 이겨나가요!!"라고 외치는 걸로 화면이 슬며시 정리되며, 세상 촌스러운 <도박, 한순간의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따위의 캠페인성 멘트를 굴림체 자막으로 대문짝만 하게 날리는 식의 정신 나간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달까요.


도박의 위험성과 경고라는 직설적이고 명확한 목적의 주제 의식 위에서 창작자의 자율성이 최대한 확보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특히나 종교라니요. 종교에 매몰된 사람들의 비이성적 행태와 맹목성을 과감하게 도박과 연결 짓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경전을 손에 쥐고서 타락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강렬한 대조와 비교가 함께 보이기도 하는군요. 솔직히 말해서 앤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걸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이거 종교계에서 알면 지랄 좀 했겠는데?’ 였습니다.

 

# 5.

 

호들갑을 좀 떨긴 했습니다만 막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명작!! 까지는 못 됩니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좋은 영화임엔 분명하다는 거죠. 기도회와 업장과 밤의 가건물에서의 공간 연출은 주어진 조건에 비하면 밀도 높구요. 인물의 배치도 좋고 배우들의 마스크와 배역의 밀착감과 연기 모두 훌륭합니다. 서사와 플롯과 배치와 캐릭터와 연출과 여운과 주제의 밸런스가 좋습니다. 특장점은 없다 하더라도 이런 육각형 영화가 주는 안정감은 평가되어도 좋은 거겠죠. '김인선' 감독, 『수요 기도회』였습니다.

 

# +6. 아무리 저예산 단편이라지만 공식 포스터도 없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님들아?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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