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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그냥_ 2019. 10.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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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집요한 탐구입니다. 매력적인 반전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퍼스널 쇼퍼 :: Personal Shopper』입니다.

 

 

 

 

 

# 1.

 

'모린'은 '키라'의 퍼스널 쇼퍼입니다. 모린은 그녀에게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복무합니다. 모린의 시간과 땀은 키라의 삶을 더욱 화려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값비싼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를 구매하는 순간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결정을 내리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라면 볼 일 없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손에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쥐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서서히 내면의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일을 하는 동안 그녀의 내면은 찢어지고 벌어진 틈 사이는 공허함이 스며듭니다. 호화로운 의상을 한 아름 안고 다니는 그녀는 가녀린 체구만큼이나 작은 스쿠터를 탑니다. 값비싼 보석들이 가득 담긴 쇼핑 가방들을 울러 매지만 정작 신발 하나 신어보는 것에도 전전긍긍해야 하죠.

 

모린이 키라의 집에 드나들 때면 어김없이 경보음이 울립니다. 건조한 경고음에서 상실감과 허무함과 소외감이 짙게 묻어납니다. 키라의 방으로 들어가 새로 산 옷들을 아무리 걸어 놓아도 푹신한 고가의 침대에 기대 누워도 여전히 그녀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린에게 키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틀어 쥐고 있지만 정작 만나볼 수도 가져올 수도 뺏어올 수도 없는 유령과 같습니다. 키라에게 모린은 남편의 고릴라 한 마리만도 못한데 말이죠.

 

 

 

 

 

 

# 2.

 

쌍둥이 '루이스'는 심장병으로 죽었습니다. 모린과 마찬가지로 영매였던 루이스. 둘은 죽기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이 사인을 보내기로 약속합니다. 모린은 루이스의 혼령과 만나기 위해 파리에 석 달이 넘도록 남아 있습니다. 애인과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감수하고서 말이죠.

 

하지만 영화 내내 왜 만나고 싶어 하는 건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인을 보내기로 약속했으니까 무작정 기다린다는 건 훌륭한 설명이 아니죠. 단순하게 루이스에 대한 집착은 요절한 형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걸까. 글쎄요. 혼령의 신호를 받은 후엔 어떻게 할 거냐라는 '잉고'의 질문에, 모린은 "앞으로 살아가며 잊어야겠죠"라 답합니다. 기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루이스에 목을 매는 게 아니라는 거죠. 되려 그녀는 잊기 위해 '루이스'를 찾습니다. 자, 다시. 그녀는 루이스로부터 무엇을 듣고 싶었던 걸까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요. 무엇을 잊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루이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을 붙잡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모린은 시종일관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호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제발 들려달라고 애원니다. 루이스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그녀가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대상이죠. 루이스를 찾는 그녀의 태도에는 엔제나 불안함과 공포심이 짙게 묻어납니다. 선천적 심장질환이란 아이템이나 쌍둥이라는 설정에서 미루어 보건대 모린은 심장병에 대한 공포와 쌍둥이의 상실로 인한 분리불안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요. 루이스의 존재는 일련의 부정적 정서를 투사한 유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메신저와의 대화에서 모린은 살인자에 쫓겨 숨는 여자의 공포심을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인자에 쫓기며 위태롭게 몸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녀는 루이스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불안과 공포라는 살인마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걸까요.

 

 

 

 

 

 

# 3.

 

모바일 속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는 발신자 표시제한 뒤에 숨은 미지의 존재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게리'도 있죠.

 

모린의 애인 게리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죠. 루이스나 키라가 죽은 후, 심적으로 힘들 때면 모린은 애인에게 페이스 타임을 거는데요. 물론 남자 친구라는 구체적 인간관계 때문이기는 하겠습니다만, 불안을 회피하며 영혼의 안식을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 존재로 여기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게리를 사랑하고 신뢰하지만 그와 별개로 진심을 모두 털어놓지는 않습니다. 정작 누군지도 모를 '메신저'에게는 온갖 얘기를 다 함에도 말이죠. 남자 친구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내면의 안식처를 두려움과 불안으로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리는 몇 달씩이나 떨어져 지낸 여자 친구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데 산에 가기로 했다며 훌쩍 사라져 버립니다. 하필 그가 왠지 모를 인도 풍의 영적 평화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과, 애인이 찾아오자 산에 들어가 버렸다는 설정은 절대 우연처럼 보이지 않죠.

 

 

 

 

 

 

# 4.

 

'메신저'는 '모린'과 가장 적극적으로 솔직하게 소통하는 유령인데요. 그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다 보면, 주체가 뒤바뀐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대상이 제 아무리 초현실적인 영적 존재라 하더라도 어쨌든 타자他者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데요, 둘의 대화는 마치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듯하기 때문이죠.

 

문자 속 상대의 정체성을 되짚다 보면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린이 질문이라는 형태로 확정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린은 익명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익명은 모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영화의 반전을 이해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앞선 유령들과는 달리 '메신저'는 진득하게 그녀가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돕습니다. 는 모린 안에 내재된 금기에 대한 욕망을 노출시킵니다. 키라에게 억압된 폭력적 정서와 루이스에게 투사한 부정적 정서들로 인한 깊은 스트레스의 반작용이랄까요.

 

 

 

 

 

 

# 5.

 

작중 가장 강렬한 장면은 누가 뭐래도 키라의 드레스를 입어보는 씬일 겁니다.

 

물욕 따위가 아닌 자기애에 대한 강한 갈증이 느껴집니다. '키라'의 드레스를 입고서 '키라'의 침대에서 자위를 하는 모습은 선정성마저 가릴 만큼 강렬한 해방감이 지배합니다. 전반적으로 음악의 사용에 인색한 영화가 과감하게 음악을 끼얹듯 토해내는 지점이기도 하죠. 심장 검사를 하는 동안 보이는 젖가슴과, 이 장면에서 보이는 젖가슴은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감각입니다. 전자의 그것이 남들 모르게 깊이 숨겨둔 불안처럼 보인다면, 후자는 숨겨둔 욕망이 터져 나오는 순간의 해방감으로 전달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자기 파괴는 본질적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메신저의 부추김을 핑계로 키라라는 유령을 잠시 손에 쥐어 보지만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는군요. 일탈의 밤이 지나고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후 모린은 혼령이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이며 혼란스러워한다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 가장 화가 나 있고 가장 폭력적이며 가장 혼란스러운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죠. 이 지점부터 메신저와 그녀를 괴롭히는 혹은 그녀가 기다리는 혼령과 그녀의 경계가 급격히 모호해집니다.

 

 

 

 

 

 

# 6.

 

도입에서부터 네 명의 유령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다섯 번째 유령이 있습니다. 가지고 싶지만 벗어나버린 의미와,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불안과, 애써 외면하지만 숨길 수 없는 욕망과, 스스로 불러낸 허구로 인한 공백과,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메마른 영혼으로서의 유령. 바로 '모린'이죠. 그녀는 영화 내내 생기 없는 표정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껍데기만 남은 내면의 채울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방황하며 갈구합니다.

 

중요한 캐릭터들은 다 모인듯합니다. 구도도 얼추 보이는 것 같구요. 감독은 이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상징들을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유령 ⅱ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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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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