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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삶이란 무겁고 허무한 것 _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그냥_ 2019. 9.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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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소영'은 박카스 할머니입니다. 박카스이면서 할머니죠. 곤궁하고 비굴하고 비참한 창부로서의 정체성과, 넘치는 나이가 되어버린 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첩된 사람입니다. 각 정체성이 분리되어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겹쳐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죠.

 

소영이 민호의 고사리 손을 잡고 자신을 사줄 노인들을 찾는 장면. 손님과 일을 치르기 전 아이를 여관 프런트에 맡기는 장면은 이 인물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마냥 냉소적일 것만 같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복잡 미묘한 내면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도덕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진단하고 결정지은 후 방치한 삶들 안에도 일반과 다르지 않은 나름의 깊이가 있었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감독은 박카스 할머니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박카스 할머니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합니다.

 

 

 

 

 

 

 

 

'이재용' 감독,

『죽여주는 여자 :: The Bacchus Lady』입니다.

 

 

 

 

 

# 1.

 

소영은 솔직한 사람입니다. 긍부정과 별개로 말이죠. 밑바닥으로 추락한 아니 밑바닥에서 출발해 지킬 것이라는 걸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어지러울 정도의 솔직함입니다. "공병이나 주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라는 말은 분명 거짓말은 아녔을 겁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를 거두고, 풍에 쓰러졌다는 손님을 찾아가고, 아이 엄마 승소 가능성에 자신의 일인 양 고맙다 말하고, 치매에 걸린 종수의 마지막을 위해 기꺼이 산을 오르는 소영. 저게 대체 무슨 오지랖이야 싶다가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몰인간적이고 이기적일 것이라는 폭력적 선입견을 관객 스스로 발견하게 되죠.

 

다큐멘터리 감독은 선의로 포장된 폭력적 선입견 일반을 대변합니다.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정돈된 표현을 고르면 고를수록 당사자인 소영은 더욱 모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를 무턱대고 구원하고 교정해야 하며 동시에 그럴 수 있다 믿는 선민의식은 타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재단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걸 확인합니다. 젊은 청년과 소영의 도덕성 차이는 압도적이겠지만 그것이 삶의 값어치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관객은 은연중에 젊은 청년의 존재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과연 무엇이 우리가 그를 불편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인가란 질문은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2.

 

재우는 스스로 친절한 사람을 자처하지만 자신의 삶만 쏟아낼 뿐 단 한 번도 소영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치매에 걸린 친구 종수의 마지막과 자신의 마지막을 모두 소영에게 떠넘긴 재우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동시에 '저런 여자'에게는 이런 짐스러운 감정을 버려도 되는 듯 대하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고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덕성 이전에 압도적인 단절감이 절망적입니다. 재우가 죽은 후 경찰과 언론은 소영을 당연히 고작 백만 원을 위해 사람을 기꺼이 죽일 수 있는 '그런 여자'라 확신합니다.

 

 

 

 

 

 

# 3.

 

감독은 노인을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반드시 나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포착합니다. 평생을 무거운 삶에 짓눌려 살아오다 더 이상 들어 올릴 힘이 없어진 노인들. 먹고살기 위해 창부 일을 하고 있는 소영보다 겉보기에 더 멀쩡해 보이는 노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통해 정서적으로 고립된 노인들의 삶을 진중하게 또 담담하게 조명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 이전에 그저 삶이 무겁다. 참 무겁다라는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죠.

 

세비로 송의 입에 약을 밀어 넣는 씬에서 숨길 수 없는 슬픔과 절망감과 무거움과 버거움과 비겁함과 이기심과 그 이상의 정서들이 폭발합니다. 절벽 아래로 종수를 미는 소영의 시선과 눈빛과 껌뻑거림과 거친 호흡에 관객의 내면마저 같이 무너져 내립니다. 배우 '윤여정'은 미쳤습니다.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들을 소위 '젊고 싱싱한' 배우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만 소비하는 것이 얼마나 낭비적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 4.

 

누차 말씀드린 대로 감독은 도덕성 논쟁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작품에는 특별히 착한 사람도 특별히 나쁜 사람도 없죠. 감독의 눈에 소영은 살아남아보려 온갖 일을 하다 그곳까지 흘러간 사람일 뿐입니다. 재우는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죠. 종수는 치매로 자신을 잃은 후가 두려운 독거노인이고, 세비로 송은 보이는 것에 모든 자존감을 걸었다 병과 함께 무너져 내린 사람일 뿐입니다.

 

티나는 모진 편견과 모욕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이고, 민호의 엄마는 남편을 찾으러 왔을 뿐이고, 도훈 역시 다리가 없을 뿐입니다. 감독은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도덕적 심판을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올바름에 관한 잣대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이유로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인 다양한 사람들을 같이 한번 들여다보자 말합니다.

 

세비로 송의 자녀들과 코피노 민호의 아버지인 병원 의사는 이례적으로 악마적인 인물들입니다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주요 인물들이 영화에 안착하기 위한 도구적 캐릭터일 뿐입니다. 의사는 민호를 소영의 손에 쥐어주기 위한 인물이고, 세비로 송의 자식들은 성매매 노인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 자평하는 사회적 시선을 대변하기 위해 무례함을 짊어진 인물일 뿐이죠. 필요한 만큼 쓴 감독은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습니다. 의사의 가슴에 가위로 구멍을 내버린 것도, 자식들을 해외로 내 쫓아 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래요, 캐릭터를 쓸 거라면 이렇게 써야 합니다. 

 

 

 

 

 


# 5.

 

비루한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관객과 함께 적극적으로 비극적 정서를 북돋우는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이나 '이창동' 감독의 『밀양』,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같은 영화들과는 썩 대조적이죠. 특유의 담담함이 낳는 역설적 효과가 상당합니다. 사람이 하나하나 죽어나갈 때마다 치킨에 피자에 갈비까지 먹는 장면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합니다. 외로운 도훈이 티나와 잠자리를 가지는 걸 보며 웃으면서도 뒷맛이 좋지만은 않죠. 감독이 냉혹한 현실 속에 숨은 서글픈 희극을 하나하나 찾아낼 때마다, 냉소적인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뽕짝 음악이 깔릴 때마다, 비참함은 더더욱 배가됩니다.

 

억지로 현학적인 척 애쓰지 않는 순간순간 머쓱하게 만드는 유머가 일품입니다. 대단히 무거운 이야기를 올곧게 따라가면서도 감독이 특정 정서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 대단합니다. 마치 시장판에서 과장된 각설이 분장을 하고서 비 맞은 듯 땀을 흘리는 광대의 진지한 표정을 보는 기분입니다. 독특하죠. 확실히 이 영화는 한국 드라마 영화들의 보편성을 벗어나 있습니다.

 

 

 

 

 

 

# 6.

 

격앙된 비극의 감정 이면에 숨은 허무함을 잡아내는 능력 또한 탁월합니다. 자신을 버린 버린 아빠와 구치소에 수감된 엄마 아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 내팽개쳐진 코피노 '민호'와, 다리를 잃은 곤궁한 처지의 청년 '도훈'과, 유쾌한 성격 이면에 수많은 갈등과 번뇌를 지나왔을 트랜스젠더 호스티스 '티나'와,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 함께 둘러앉아 남들처럼 밥을 먹는 모습이, 한없이 나약하고 위태롭고 빈곤하고 또 소박한 희망을 보는 듯합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고 싶었던 걸 텐데요. 역시나 한나절의 피크닉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녀린 희망은 쉽싸리 꺼져버립니다.

 

... 교도소에 수감된 '소영'의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듯한 마지막 앤딩은 영화의 허망함을 가장 잘 표현한 백미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비로송'의 마지막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차 앞으로 위태롭게 뛰쳐나간 '민호'와, '소영'이 처음 차려준 밥상과, 이쁜 단풍잎 아래서의 매춘과, 절간 앞에서 '재우'의 명복을 빌어주던 기도와, 경찰차에서 피우던 마지막 담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이 영화는 여러분께 1시간 50분 동안 드라마라는 장르가 전해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동을 선사할 겁니다. '이재용' 감독, 『죽여주는 여자』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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