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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_ 손님, 윤가은 감독

그냥_ 2020. 1.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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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불'과 '륜' 사이 좁은 틈을 스크린에 옮겨냅니다. 어른들의 사정이란 핑계로 간과되는 사람들의 긴장과 불안과 상처와 고통, 그 가운데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본질적인 순수성을 탁월한 감각으로 포착합니다. 『우리들』과 『우리집』에서 보여준 낮은 눈높이를 묘사하는 세심함은 이 영화에서부터 빛나고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

『손님 :: Guest』 입니다.

 

 

 

 

 

# 1.

 

섬세한 영화입니다. 6살 배기 여자 아이, 9살 배기 남자아이, 교복 입은 소녀 그리고 아빠입니다.

 

순수성의 기준에서 명확한 위계를 가지는 인물들 간의 입장과 관점의 대조가 다각적으로 펼쳐지며 단편적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부한 긴장감은 장르의 기능적 목적 뿐 아니라 주제 의식에도 충실히 기여합니다.

 

화가 치민 소녀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와, 음료를 권하는 아이에게 꺼지라 말하며 잦아드는 목소리의 간극은 파괴적 감정과 양심의 균형을 은유합니다. 거친 숨소리에 얹은 날카로운 추궁과, 남자아이의 경계심과, 여자아이의 순수함은 인물 간 분별 뿐 아니라 인격이 변화되어 나가는 흐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 2.

 

화단에 내뱉는 가래침과, 쏟아진 음료를 무릎 꿇고 정성껏 닦아내는 걸레질. 아빠의 라이터를 켜는 소녀의 상처와, 위험으로부터 동생을 지키는 남자아이의 물리적 긴장감. 남자아이의 일기장에 엿보이는 본연의 공손함과, 자신의 장난감을 망가트린 동생에게 내비치는 폭력성의 간극. 모두 불륜으로 상징된 가정의 붕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정서적 연쇄를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모질어야 한다 수차례 다짐했음에도 차마 모질지 못하는 소녀와, 학대적 환경 하에서 점점 모질어져 가는 남자아이 간의 대조는 인상적입니다. 소녀의 막말들과 전혀 다른 무게감의 남자아이가 처음 내뱉은 "개새끼야"라는 폭언. 깊은 상처에도 선풍기 앞에서 장난치는 여자 아이의 천진난만함. 아빠의 칫솔을 보는 순간의 절망감. 언니의 흉터를 걱정하는 온기가 차근차근 관객의 정서를 연민과 부채감으로 유도합니다.

 

주고받는 날 선 상처들과 선량한 마음의 회복력 간에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구체적인 갈등 양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상처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아이들 사이를 오가고, 그 생채기들을 아이들 서로의 순수성으로 치유하고 다시 상처 내기를 반복합니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의 누적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 3.

 

영화는 어른들의 파괴적인 선택으로 인해 본디 유대감을 근거로 맺어져야 할 '관계'가 힘의 지배라는 구렁텅이로 처박히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집으로 쳐들어 가는 순간부터 소녀는 공간을 지배합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나이와 힘에 근거해 공간을 빼앗기죠. 소녀의 과격한 행동에 남자아이는 힘으로 저항하고, 동생의 행동 역시 힘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힘의 세기로 관계가 규정되는 세상에서 소녀가 누구인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리죠. 공간을 지배하던 소녀 역시 아빠가 돌아오자 좁고 어두운 방에 숨어버립니다. 아빠가 다가설 때마다 남자아이 역시 뒷걸음질을 치죠. 아빠가 사라지자, 짓눌려 있던 남자아이는 장난감을 내던져 버립니다. 힘의 관계에서 유대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가장 어린 6살 배기 아이밖에 없습니다.

 

아빠가 다녀간 후 모든 아이들이 같은 상처와 짐을 짊어진 피해자임이 명확해집니다. 힘의 논리로만 규정되던 공간에 유대감이 생겨납니다. 같은 라면을 나눠먹고 남자아이의 일기장에 비워진 보호자 확인란을 채웁니다. 그 모습 뒤로 비치는 동질감과, 미움과, 야속함과, 불쌍함 따위의 정서적 교집합은 영화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힘의 관계는 다행히 유대의 관계로 회복되고 그제야 언니에게 누구냐는 질문을 건넵니다만, 본질적 문제 해결이 동반되지 않은 관계는 지속되지 못합니다. 엄마가 돌아올 때가 되자 함께 밥을 먹고 상처를 치료해주던 언니와 아이들은 다시금 손님과 남으로 되돌아가고 말죠.

 

 

 

 

 

 

# 4.

 

올라갈 때보다 더욱 무겁게 내딛는 내리막길을 멈춰 세우는 남겨진 아이의 흔적입니다. 침몰된 정서로 하강하는 소녀의 뒷모습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죽일 듯이 찾아갈 땐 언제고 엄마가 온다는 말에 차마 대면하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소녀. 누구냐는 말에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라는 소녀.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마라 말하는 순간의 짙고 어두운 잿빛의 성장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군요.

 

때론 모두가 행복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더러 있습니다. 옳지 않은 행동과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 또한 더러 있죠.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 선택에 앞서 아직 스스로를 오롯이 지키지 못하는 어린 존재들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의 궤도가 뒤틀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은 해야 합니다. 6살은 이마에 상처가 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9살은 홀로 빨래를 개고 손님을 맞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교복을 입은 소녀는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윤가은' 감독, 『손님』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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