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영화란 나의 불완전함을 치열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김지홍 감독,
『번개가 떨어졌다 :: Lightning Fell』입니다.
# 1.
번개에 맞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깨어난 남자가 역할 대행 서비스를 신청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불행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이면에 영화에 대한 영화로 보인다. 실제 영화 속에 담긴 장면들은 남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여자와 함께 연기하는 순간들로 점철된다. 캐스팅과 디렉팅과 리허설과 본 촬영이 축약된 모습은 미니멀리즘적인 마이크로 시네마다.
영화 속에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 최기욱은 번개 맞은 남자를 연기할 뿐 남자가 아니다.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남자는 고등학생이 아니다. 그가 기억하는 누나와의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번개에 맞았다는 것조차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배우 조수연은 김지홍의 영화에서 역할대행일을 연기하고, 역할대행으로서 다시 남자의 누나를 연기한다. 역할대행도 남자의 누나도 아닌 그녀는 마찬가지로 과자를 탐내는 고등학생 또한 아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쌍둥이 누나는 정작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기에 관객은 끝까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한 바 없다. 관객이 경험한 모든 것은 시나리오로 연기된 모습에 미루어 상상한 것으로서 현실로 오인된 픽션이다. 첫 등장에서 남자의 요청과 달리 여자는 불쑥 누나를 연기하는 데, 관객은 그 순간 이 인물이 진짜 누나인지 역할대행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자는 남자의 시나리오를 연기하지만 그 모습은 주관적이다. 남자 역시 과거의 누나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고 주관적인 것이다. 굳이 그냥 누나도 아닌 '쌍둥이' 누나인 것은 관객이 머릿속에서 그리게 될 누나는, 남자와 다르지만 같은 또 다른 남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불완전한 나의 이면을 상상해 분열하는 과정과 다름이 아니다.
# 2.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좌우가 좁은 프레임은 이 모든 것들이 검증된 현실의 재현이 아닌 주관적으로 왜곡된 기억임을 강조한다. 감독은 처음엔 인물을 프레임의 외곽으로 밀어내고 빈 공간을 던져 관객에게 상상할 여백을 열어둔다. 전개됨에 따라 인물들은 점점 프레임 중앙을 장악하고 상황에 따라 카메라를 응시하는 등 구체화되지만, 그 모습은 현실적 사건의 구체화가 아닌 관객마다의 상상의 구체화다.
영락없이 번개에 맞아 벌어진 사고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관객의 상상은 후반부 반전과 함께 장렬히 전복된다. 자살을 기도한 누군가와 부딪히는 사고를 겪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관객의 머릿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던 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은 번개가 떨어졌다. 존재하지 않는 번개가 떨어진 영화는 이렇게나 유쾌하고 도발적이다.
영화란 나의 불완전함을 치열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도,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배우도, 연기된 모습을 보는 관객도 모두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이 된 남매를 상상하고, 식물인간이 된 남자를 어루만지던 각기 다른 세 손길을 상상하고, 덤덤이 전해지는 잔인한 말을 들은 남자의 마음을 상상하던 관객은, 다소 서먹한 모습으로 만나게 될 남자의 가족을 상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끝으로 여자는 "아무도 번개에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한다. 다행히 사건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라 그녀의 소망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저 시나리오를 쓴 남자와 남자를 본 관객들만이 각자의 상상을 재구성한 끝에 해맑은 식사와 같은 내면의 치유를 얻어갔을 뿐이다. 영화를 하는 이유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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