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Thriller

정체와 요행의 미스터리 _ 9명의 번역가, 레지 루앙사르 감독

그냥_ 2023. 2. 28. 06:30
728x90

 

 

# 0.

 

왜 문학이어야 했을까. 왜 번역이어야 했을까.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 :: Les Traducteurs입니다.

 

 

 

 

 

# 1.

 

장르와 소재의 연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걸맞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문학과 번역이라는 코드는 작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왜 문학이어야 했는지, 왜 번역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이 크게 부족하는 것이죠.

 

어떤 수학 난제가 있고 그걸 풀어낸 누군가가 있어 이를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아뒀다 가정해 봅시다. 사실 진짜 난제를 풀어낸 건 무명의 젊은 친구였고, 그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검토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겁니다. 혹은 회사 병합을 하는 데 관련된 기밀이 있어 관계자들이 밀실에 모여 비밀리에 계획을 검토한다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억울하게 회사를 잃게 생긴 상대 회사의 젊은 대표가 가짜 신분을 만들어 무리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역시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죠. 그나마 번역이라는 테마가 활용된 장면이라 한다면, 총 든 에릭을 가운데 놓고 번역가들이 여러 나라 말로 몰아세우는 장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마저도 서사 속에서 역할하기보다는 장르적 목적 하에 소비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 2.

 

그래봐야 출판사인데요. 제 아무리 대단한 베스트셀러라 하더라도 지하 벙커까지 만든다는 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설정은 아닐 겁니다. 우크라이나 쳐들어가기도 바쁠 러시아 아재들 데려다 총 꺼내드는 설정은 더더욱 설득이 어렵구요.

 

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장 작업 끝나고 나면 각기 다른 국적의 번역가들 거리에 내놔야 하는데요. 이 사람들이 모여 학대, 협박, 감금, 성희롱에 심지어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다고 기자회견이라도 열면, 책 장사는 물론이거니와 출판사 모두 무사할 리가 없다는 걸 생각 못할 사람이 메인 빌런이면 사건에 몰입될 리가 없다는 것 역시 지적할만합니다.

 

 

 

 

 

 

# 3.

 

번역가 가둬놓고 난리를 피운 이유는 어쨌든 보안이라는 건데요. 일반적으로 영화가 제시하는 것처럼 지하벙커 만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은 '원래부터 공개되어선 안될 정보'에나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어디 횡령과 같은 경제 범죄를 획책한다거나 첩보 계획과 같은 군사 보안이라거나 하는 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안에 집착하는 원고는 어차피 때 되면 대중에게 풀릴 거잖아요?!

 

물론 정식 출간 전에 원고가 풀리면 매출이 떨어지기야 하겠죠. 그런데 공개되고 나서도 책 산 사람 중 누군가가 스캔 떠서 온라인에 돌리는 건 어차피 막지 못할 겁니다. 유출본을 읽고 책을 안 살 사람이라면 어차피 정식 출간이 된다 하더라도 스캔본을 훔쳐 읽을 가능성이 높을 테구요. 역으로 9개 언어 동시 번역을 할 정도의 인기 베스트셀러의 팬이라면 유출본을 먼저 읽었다 하더라도 소장을 위해서라도 정식 판본 역시 구매할 가능성이 크죠. 사전 유출의 여부에 차이가 없다 할 수야 없겠지만, 지하 감옥에 수영장 볼링장 만들고 총 쏘고 목메고 난리를 피울 만큼, 전재산 협박범에게 가져다 바칠 만큼 큰 차이가 날 리가 없다는 건 너무 쉬운 상상일 겁니다.

 

# 4.

 

이상한 점을 또 찾아볼까요. 작가의 필명은 대중을 상대로만 쓰입니다. 실무적인 데이터베이스에는 원 저자가 버젓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작권은 어떡할 것이며 무엇보다 인세는 어떻게 할 건가요. 출판사가 낼름 먹는다는 건가?!

 

에이~ 그건 할아버지가 자기 이름으로 다 처리했겠지~ 라구요? 그렇다면 적어도 '큰 인세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할아버지가 '새로운 저서가 출판되기 직전 급작스레 사망한 사건'이 허접하게 수사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무려 세계적인 명저 '디덜러스' 저자 사망 건이니까요. 치밀하게 준비한 살인 계획도 아니고. 기껏해야 돈미새 사업가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텐데 경찰이 그런 잡범(?) 하나 색출하지 못했다는 건 말도 안 되죠.

 

 

 

 

 

 

# 5.

 

밀실로 들어가 볼까요. 번역가 라인업도 영 어색하고 편의적입니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들이 번역가인지 케이퍼 무비 속 범죄자 집단인지 모호할 지경이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번역을 맡기는 거라면 당연히 번역가들은 커리어와 신분이 검증된 양지의 인물들로 채우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인터넷을 막고 스마트폰을 뺏고 총과 러시아 용병으로 협박하고 감시하는 것보다, 유명 대학 교수님 같은 양지의 전문가들을 거액의 위약금이 걸린 계약으로 묶어 놓는 것이 훨씬 상식적이라는 것이죠. 에이~ 그렇게 하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지 않냐구요? 네. 그렇다면 '양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신원이 불분명한 각국의 번역가를 모아야만 했던 이유'라는 것을 제시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이 영화 속에 보다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죠.

 

# 6.

 

저라면. 자기 인생 걸려있는 사업의 번역가를 모셨다면 빈말로라도 글재주가 좋다 말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번역하고 이후에 네가 쓴 작품도 하나 같아 하자고 살살 달래는 게 낫지, 눈앞에서 원고 태우며 자존심 뭉개 놓으면 퍽이나 좋은 번역이 나오겠다 싶죠. 협박으로 돈을 받는 데 계좌 이체하라는 것도 뭐 하자는 건가 싶구요. 그 계좌가 대포 계좌가 아니라 실명 계좌, 그것도 에릭의 계좌였다는 걸 확인도 안 했다는 것 역시 황당합니다. 총 맞고 뻗은 여자라거나 목메고 죽은 번역가는 관객을 낚아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도 불쾌하구요. 그나마 둘은 미끼로라도 쓰이지, 아부쟁이나 투정쟁이를 비롯한 나머지 대부분의 번역가는 누구 하나쯤 중간에 집에 가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습니다.

 

 

 

 

 

 

# 7.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트릭이 아니라 정체 공개와 요행으로 흘러갑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었다', '사실 나였다',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다 노린 거였다' 라는 방식의 전개 앞에 관객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무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미래 예지 능력을 가진 천재를 동의어처럼 쓰는 방식도 지루합니다. 가슴팍에 총 맞는 데 책 있었다는 설정은 지루합니다. 가장 깝쭉거리는 주인공이 사실 베일의 작가였다! 라는 결말 역시 너무 상투적이죠. 취조실에서 가슴팍에 녹음기 달고 들어온 건 어떻게 아는 것이며, 손을 떼자마자 정확히 원하는 말을 넙죽넙죽 해주는 결말까지 가면 모든 전개가 운으로 흘러가 허탈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런 생각들을 하는 그만큼, 저는 영화의 미스터리로부터 멀어져야 했습니다. 글쎄요. 그게 제 잘못은 아닌 거겠죠. 레지 루앙사르 감독, <9명의 번역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