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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독의 도미노 _ 뱀에 물린 자들, 안토니 예롄 감독

그냥_ 2023. 10.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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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유혹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윤리의 도미노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 :: Inherit the Viper입니다.

 

 

 

 

 

# 1.

 

84분짜리 짤막한 인디 영화입니다. 우연히 생긴 자투리 시간을 태울 겸 포스터가 느낌 있길래 골랐죠. 대충 검색을 해 봤는데요. 리뷰는커녕 그 흔한 한줄평조차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소하다지만 블로그를 굴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를 굳이 글로 옮긴다는 건 바보짓임에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남들 가는 길 똑같이 가면 왠지 지는 것만 같은 홍대병자들에게 요런 영화들이란 마치 뱀에 물린 것만 같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마이너 한 외화들이 수입되는 경우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미련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원제부터 확인하는 것이 착한 영화팬의 바람직한 자세죠. 작품의 제목은 Inherit the Viper인데요. 억지로 직역한다면 독사를 계승한다? 정도의 의미가 될 겁니다. 통상 마약과 총이 빗발치는 류의 영화라면 Addicted to Poison 내지 Addicted to Drugs 정도의 제목이 걸리는 게 훨씬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웠을 텐데요. 굳이 에둘러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 2.

 

마약을 다루는 일반적인 영화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심리를 다루기 마련인데요. 영화 <뱀에 물린 자들>은 '마약상'에 중독된 사람의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바이퍼는 곧 마을 사람들에게 독을 뿌리는 독사, 마약상의 비유였던 것이죠. 실제 마약을 다루는 영화치곤 헤롱거리는 중독자들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 데요. 약쟁이들이 약을 하는 순간 픽픽 죽어나가 버리는 건 감독이 의식적으로 해당 캐릭터들을 영화 밖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반즈음 주점의 주인 클레이가 킵에게 어릴 적 독사에 물려 죽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독사에 물렸는 데 혼이 나는 게 무서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일화인 데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킵에게 손을 씻을 것을 조언하죠.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 중독자가 아닌 마약상이라면, 클레이의 우화 속에서의 독 역시 단순히 마약을 뜻하는 것이 아니리라 추측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영화는 독사를 계승하게 만드는 계기, 그것을 '독'이라 규정합니다. 여기서의 독은 다시 마약상이 되려는 유혹뿐 아니라 마약상과 연루된 모든 종류의 부정을 통할하죠.

 

마약을 사기로 해놓고 총을 꺼내 돈과 마약을 모두 빼앗는 장면들은 모두 돈의 유혹이라는 독에 의해 독사가 되는 순간들입니다. 부츠가 마약을 훔치고 가족을 속이는 장면들은 그릇된 자존감이라는 독에 의해 독사가 되는 순간들입니다. 조시가 경찰을 찾아가 키스하는 장면 역시 살인을 무마하고 싶은 유혹이라는 독에 의해 독사가 되는 순간입니다. 앤딩에서 킵이 조시를 죽인 후 경찰과 딜을 하는 장면, 경찰은 제안을 거절하고 킵을 체포하려 하는 데요. 킵은 조시와의 불륜을 폭로하겠다 압박하고, 결국 경찰은 굴복하고 맙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킵을 지켜보는 경찰의 표정은 분노에 가득한데요. 그 순간 그 역시 불륜과 약점이라는 독에 의해 독사를 계승한 셈입니다.

 

반면 코에 호스를 걸고 휠체어를 탄 클레이의 모습은, 그가 오래전 독사에 물렸으나 팔을 잘라내는 데 성공해 살아남은 인물임을 은유합니다. 이는 자신의 펍에서 싸움이 나자 돈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내쫓음으로써 독과 단절했음을 증명합니다.

 

 

 

 

 

 

# 3.

 

킵은 결국 조시라는 팔을 잘라내는 것으로 가족이라는 몸통은 지키려 하는 데요. 막내 부츠가 마약상으로 활동 중이라는 비극적인 반전이 결말을 통해 공개됩니다. 부츠로 이어진 독사의 계승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순수해 보이던 킵의 아내 이브가 이를 알고 있고, 심지어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킵의 바람과 무관하게 부츠는 삼 남매의 단란했던 추억이라는 독, 이브는 미용실과 공장일만으로는 건사할 수 없는 경제적 문제라는 독에 의해 독사를 계승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악행의 연쇄는 아직 새하얀 눈과 같은 아기에게도 이어질 수 있다는 암시와 함께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영화 내내 삼 남매는 나름의 최선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음에도 그들과 접촉한 모두는 독사가 됩니다. 계기는 바로 유혹에 못 이겨 윤리가 무너지는 순간들이었죠. 유혹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마약에 의한 유혹일 수도 있고, 술에 대한 유혹일 수도 있고, 돈에 대한 유혹일 수도 있고, 이성에 대한 유혹일 수도 있고, 심지어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영웅처럼 보이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같은 긍정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마약의 주변에서 윤리가 무너져 내려가는 사람들의 불안, 단절, 합리화, 무모함 따위의 심리상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이고, 역으로 그러한 상황에 내몰리게 만드는 마약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이야기는 다소 앙상하고 엉성해 전개에 둔탁한 감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쉬 하트넷의 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추적하며 그들이 느낄 감정의 공통분모를 점점 탐색하듯 본다면 썩 재미있게 즐기실 수도 있을 듯하군요. 안토니 예롄 감독, <뱀에 물린 자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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