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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그냥_ 2023. 2.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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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트리아의 대배우죠. 처음으로 감독한 데뷔작인데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해 보고야 말았습니다. 미리 변명부터 하자면, 작가주의적인 감상을 썩 선호하진 않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배우가 감독한 영화, 특히 데뷔작에서 작가주의적 감상의 적중률이 너무나 좋거든요.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보다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왜 굳이 영화를 찍었던 걸까? 라는 질문은 작품을 이해하는 첫 질문으로 썩 훌륭합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남이 써준 시나리오를 읽고 남이 연출하는 무대를 연기하다 보니 묵혀 왔던 나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식이죠. 도저히 참다못해 표현하는 이야기이니 만큼 대부분은 창작이기 마련입니다. 김윤석의 <미성년>처럼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을 표현한다거나, 정진영의 <사라진 시간>처럼 직업 철학적 고뇌를 고유의 세계로 형상화한다거나, 문소리의 <여배우는 오늘도>처럼 직업인으로서의 애환을 디테일하게 녹여내는 식이라는 것이죠.

 

반면, 크리스토프 왈츠가 선택한 데뷔작은 이례적이게도 실화를 기반합니다. 아내를 살해하고 징역을 살고 있는 알브레히트 게로 모트라는 인물을 가공한 울리히 모트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우연히 알게 된 어느 출세주의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 참지 못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라는 것은 그리 설득력 높은 설명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봐야겠죠.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왜 굳이 '울리히 모트'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를 찍었던 걸까. 대답을 찾으려면 일단 울리히 모트가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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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울리히 모트는 '열등감과 망상이 심한 사기꾼'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온 평판의 사상누각을 발판 삼아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 출세를 향해 폭주하다 파멸하는 인물이죠. 어머니 뻘인 아흔 넘은 아내를 꼬셔 그녀의 부와 명예를 활용하는 것은 이 인물이 얼마나 맹목적인 존재인가를 선언적으로 증명합니다. 결말에서의 살인은 막다른 길에 내몰린 사기꾼의 응축된 스트레스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 불과하기에, 그를 살인범이라 규정하는 것보다는 사기꾼이라 규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겠죠.

 

이처럼 울리히 모트가 극단적인 사기꾼이라는 것은 상황과 맥락을 복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만약. 상황과 맥락을 제거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는 끔찍한 사기꾼임에 분명하지만, 탁월한 연기자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디렉팅 하에 순간적으로 상황에 몰입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인물이니까요. 그가 평판을 쌓아 올리는 과정과 배우가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과정은 무대의 유무와 정직성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동일합니다. 어떤 면에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대단히 회의주의적인 재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테죠.

 

실존 인물을 모티브 삼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 가상의 인물이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커리어를 다시 연기하는 영화라는 면에서, 영화 속의 영화이자 연기 속의 연기를 탐구하는 메타 영화 같아 보이는 맛도 있습니다. 감독하는 자연인 크리스토프 왈츠와, 현실 속 연기하는 직업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와, 알브레히트 모트로부터 모티브 된 울리히 모트를 연기하는 순간의 크리스토프 왈츠와, 글로벌 NGO 대표로 설정된 임의의 울리히 모트를 재차 연기하는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다양한 레이어로 구축된 연기의 바다를 입체적으로 오가는 동안 영화인으로서의 응축된 스트레스가 조금씩 해갈되는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썩 합리적이여 보이죠.

 

 

 

 

 

 

# 3.

 

감독은 왜 이 영화를 감독한 걸까에 대한 대답은, 알브레히트 게로 모트라는 인물을 통해 연기하는 자신을 일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누적되고 응축될 수밖에 없는 불안과 긴장, 슛이 들어간 순간 의심을 지우고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압박감, 연기가 끝난 후 담배 한 대를 찾게 되는 허무함 따위인 것이고. 그것은 실화 속 구체적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특정 범죄자의 이야기를 통해 억눌린 충동을 발견하게 된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주인공으로 다른 누군가를 캐스팅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연기했다는 것이죠.

 

작품의 내러티브란 결국 각기 다른 상황, 각기 다른 정서, 각기 다른 장르에 던져진 배우가 펼쳐내는 연기의 성찬입니다.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독에게 있어 다양한 위상의 억눌림을 배설해 내며 정화되는 파편적 순간들로 점철되고 있다는 면에서 거대한 카타르시스처럼 전달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죠. 울리히 모트를 대배우 크리스토프 왈츠가 생각하는 연기하는 자아들이라 상상하며 영화를 곱씹으면 썩 흥미롭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으로서의 고뇌와 고충과 모순과 자기혐오는 스스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엘사, 아네트 베닝의 아만다 등 주변인물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서도 두텁게 표현됩니다. 어째 평이 정진영 감독의 <사라진 시간>과 썩 비슷한데요. 액자식의 구조뿐 아니라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같은 장면에 대한 감상전후 다른 해석이라는 측면에서의 수미쌍관적인 결말인 거겠죠.

 

 

 

 

 

 

# 4.

 

다만, 영화의 목적이 감독 본인의 필요에 강하게 종속된 만큼 구조가 단순해 명배우의 연기를 원 없이 즐긴다는 것 이상의 완급은 다소 부족합니다. 차갑게 말하자면 이미 뻔히 알고 있는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이 반복되기만 하는 영화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죠. 연출 역시 배우 출신 감독의 작품답게 배우의 손에 닿는 반경이 허락하는 수준에 국한된다는 점은 한계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것이 자주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이야기가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구조가 조금만 더 입체적이었다면 배우의 힘으로 정면승부를 본 수작이라 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조력 없이 배우 한 명의 개인기만으로 끌고 나가기에 장편 영화는 조금 버겁습니다.

 

구태여 의의를 찾자면 심드렁한 이야기를 강하게 견인하는 배우의 연기력이 승부처라 해야 할 테고, 배우가 배우이니 만큼 연기 구경하는 맛은 의심 없이 끝내주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란, 끝을 알 수 없는 인물의 깊이감과 그 깊은 곳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는 동안의 긴장감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를 담아내는 강인한 표정과 대사 처리는 언제나처럼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연기 즐기시구요. 덤으로 주인공을 연기하는 감독의 내면에 대한 공감을 조금 더 얻어 갈 수 있다면 훌륭하겠네요.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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