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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내가 너의 장례식에 갈게 _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그냥_ 2023. 10.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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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추억하는 우리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테스와 보낸 여름 :: Mijn bijzonder rare week met Tess』입니다.

 

 

 

 

 

# 1.

 

가족 여행을 온 '샘'이 휴가지에서 만난 '테스'와 보낸 1주일입니다. 평화롭고 귀엽고 안전한 가족 영화 혹은 어린이 영화라 소개해도 무리는 없을 작품이죠.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들의 하루가 다른 성장기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성장기이며, 이들의 휴가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될 우리들의 성장기입니다.

 

아이들은 유치하지만 심오하고, 섬세하지만 거침이 없습니다. 전반부의 모호한 전개는 그 자체로 아이들의 세계를 은유합니다. 감독은 샘과 테스를 묘사함에 있어 각기 다른 방법론을 선택하고 있는 데요. 샘의 경우 생각을 독백으로 먼저 들려준 후 독특한 행동을 보여주는 데 반해, 테스는 독특한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후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죠.

 

이 같은 방법론의 대비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저마다의 진지함이 숨어있음을 역설합니다. "내가 너의 장례식에 갈게"라는 괴상한 표현에 담긴 애정 어린 마음은 이 같은 의미를 상징한다 할 수 있겠죠. 두 아이가 교차적으로 벌이는 허황된 거짓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며 느끼는 어른들의 위화감을 표현하는 것이라 보는 게 보다 합리적일 겁니다. 

 

 

 

 

 

 

# 2.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진지함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얼마 전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과 인간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아빠도 엄마도 형도 그렇고 나도 말이다."라는 고민은 금세 "최후의 공룡은 죽을 때 알았을까? 자기가 마지막이었다는 것을?"이라는 새로운 고민들로 확장됩니다.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아이들은 침대머리에서까지 1초 1초 다르게 성장합니다. 성장의 속도는 그 이름도 거창한 외로움 적응 훈련의 계획서를 통해 위트 있게 은유됩니다. 월요일은 2시간, 화요일은 4시간, 수요일은 6시간. 빠르기도 하죠.

 

아이가 독특한 생각을 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그 생각에 잠식된 채 혼자 발전시키도록 방치하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오프닝의 모래사장에 만든 무덤자리는 소년의 고민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 홀로 누은 소년을 끄집어내는 것은 가족이었지만, 아빠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형이 다리를 다치고 맙니다. 소년의 고민이란 곧 위험한 공간이라는 뜻이죠.

 

혹은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생선튀김을 먹자 하지만 소년은 팬케이크를 먹겠다 하는 장면이죠. 사소한 메뉴 선택처럼 보이지만 관객은 가족과 거리를 두려는 외로움 적응 훈련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 아이의 부모는 그들의 자상함과 별개로 아들의 속마음을 모르고 있죠. 이와 같은 누적된 위험은 이후 발이 빠진 갯벌의 씬을 통해 과격하게 증명됩니다.

 

 

 

 

 

 

# 3.

 

비현실적인 수평선의 바다는 소년의 사유를 투영하는 내면의 공간입니다. 바다에서의 장면만 뚝 떼어놓고 보자면 작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의 소년은 홀로 모래사장에 앉아 외로움에 적응하려 합니다. 테스를 사귄 후 그녀와 함께 멀리서 지켜만 보던 바다에 온몸을 던져 놀죠. 테스와 다툰 후 다시 혼자 남겨지는 데요. 외로움을 상징하던 건조한 모래사장은 사라지고 그녀의 흔적과도 같은 질퍽한 갯벌이 드러납니다. 뻘에 발이 묶인 소년은 도움을 청하고, 어느 할아버지에 의해 구출됩니다. 할아버지는 갯벌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느냐 묻지만, 사실 그 대사는 애써 소중한 사람들을 외면하며 혼자 외로움에 잠식되는 것이 위험한 줄 몰랐느냐 묻는 것에 가깝습니다.

 

도입에서 소년은 작은 움막을 하나 세우는데요. 이튿날 보면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져 있죠. 감독은 '움막과 외딴집의 관계''소년과 노인의 관계'를 병렬적으로 나열함으로써 두 인격을 '누적된 시간의 변화'로 규정합니다. 소년은 화들짝 놀라 달아납니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한 미래라기엔 너무 무서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반면, 갯벌에서 구출된 후에는 달아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았던 상황을 겪었다는 면에서 비로소 두 인격은 동등해졌으니까요. 소년은 할아버지로부터 외로움 적응 훈련을 대신할, 인생을 지탱하는 깊은 뿌리로서의 추억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그토록 궁금해하던 마지막 남은 최후의 공룡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군요.

 

중간중간 가족과의 평범한 여름휴가 장면이 인서트 되고 있는데요. 이는 소년이 깨달은 추억이란 없던 화목을 실현하는 것이 아닌, 이미 주변에 가득한 화목을 발견하는 이야기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소년은 그저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죠. 부차적으로 아빠의 유쾌함은 추억의 온기를, 엄마의 편두통은 추억의 유한함을 부드럽게 은유합니다.

 

 

 

 

 

 

# 4.

 

'추억의 소중함'이라는 주제의식은 당연히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추억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니까요. 마지막 파티는 영화가 주장하고자 하는 추억의 가치를 증명하는 눈부심의 순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감독은 그 공간에 의식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샘과 테스의 소년기, 형으로 대변되는 청소년기, 여자친구와 여행 온 휘호의 청년기, 가족을 이끄는 부모님의 장년기와, 할아버지의 노년기까지. 영화의 마지막을 이들 모두의 축제로 채운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화합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살아가며 겪게 될 인생의 과정들을 분리해 하나의 공간에 중첩시켜 공존시키는 문학적 결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할아버지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파티를 즐겼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 또한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했을 것이고 이는 그 순간에조차 성장했음을 뜻합니다. 영화의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1주일의 휴가만큼 성장합니다. 샘과 테스는 물론이거니와 샘의 가족과, 휘호와 여자친구, 테스의 엄마까지 모두는 조금 더 풍부한 추억, 조금 더 깊은 생각을 가진 인격이 되었을 겁니다. 글의 서두에서 비단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성장기라 말씀드린 이유죠.

 

 

 

 

 

 

# 5.

 

오프닝으로 잠시 돌아가볼까요. 뜬금없게도 연이 하나 등장하는 데요. 소년은 손가락으로 멀리 떠 있는 연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실제 크기는 크지만 멀리 있어서 작아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카메라는 이내 모래무덤에 홀로 누은 소년을 부감으로 작게 잡아 연의 이미지를 연결하는데요. 이 같은 구도는 영화 내에서 수차례 반복됩니다. 작품의 핵심이 샘과 테스라는 특별한 아이들만큼이나, 그 아이들이 작아 보이거나 커 보이게 만드는 거리의 변화에도 닿아있음을 추측케 하죠.

 

천진난만한 두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게만 보이는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보호하는 어른의 역할입니다. 다친 아이를 보살피는 장면이라거나, 다치게 만든 아이의 근심을 덜어주는 장면, 아이의 무례를 포용하는 너그러움의 장면들인 것이죠. 특히 흥미로운 것은 히치하이킹 씬입니다. 굳이 차가 아니라 말에 태우는 건 영 수상하거든요. 감독은 말이라는 이색적인 요소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뙤약볕에 혼자 걷는 아이를 보호하는 어른들을 기억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복적인 보호의 이미지는 역시나 갯벌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클라이맥스로 소집되어 작품의 주제의식에 기여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 인물이 딱 하나 있는데요. 테스의 피크닉 제안을 거절한 사람이자, 눈치 없이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 말하는 사람, 휘호죠. 자기 딸이 있는 줄도 몰랐던 휘호는 아직 어른이 아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결말에서 테스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데요. 다행히도 이내 딸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죠. 휘호는 12년 전 아르헨티나라는 저 멀리 부감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까마득한 거리를 건너 비로소 딸에게 도달한 사람입니다. 영화는 두 아이뿐 아니라 회호라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그런 휘호의 성장은 영화가 느슨하게 바라는 영화를 보고 있을 우리들의 성장이기도 합니다.

 

 

 

 

 

 

# 6.

 

유치하지만 심오하게, 섬세하지만 거침없이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 성장을 적절한 거리를 오가며 따뜻한 모습으로 품어내는 어른들입니다. 테스와 보낸 '엑스트라올디너리'한 여름은 그 자체로 유기적인 사회적 관계라는 공간과 인생이라는 시간을 통합적으로 은유합니다.

 

아이들의 엉뚱한 진지함은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 추억의 가치는 작품을 지배하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관객에게 요구되는 어른스러움은 느슨한 의무감으로 승화된다는 면에서 대단히 감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훨씬 깊고 드넓은 바다, 다른 수많은 배들을 지켜보는 엔딩은 동화적인 이야기를 현실의 세계로 확장하며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한평생 특별한 여름을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채우며 휴양하는 사람들인 것이죠.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테스와 보낸 여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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