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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에펠탑의 뒤편 _ 오 머시!,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그냥_ 2024. 3.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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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어두운 밤 보다 더 어두운 에펠탑의 뒤편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오 머시! :: Oh Mercy!』입니다.

 

 

 

 

 

# 1.

 

통상 영화 속 사건과 인물은 창작된 것이라며 도망갈 길을 열어두기 마련인데요. 되려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소소한 것이든 큰 비극이든 실화라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실존하는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고발성 작품이라는 것이죠. 배경인 프랑스 루베(Roubaix)는 감독 데플리솅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강한 비판 아래로 자전적이고 온화한 시선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밥 딜런의 앨범(Oh Mercy(1989))으로부터 끌고 들어온 듯한 영화의 제목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숙연한 기도로서 감독의 지향을 엿보게 하죠.

 

오프닝의 선언처럼 전반부는 다양한 범죄 사건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범죄의 모자이크로 그려지게 될 퇴폐한 도시의 맥락입니다. 루베는 한 때 번창했던 섬유산업이 붕괴하며 함께 몰락해 버린 전공업도시로서, 경제적 궁핍과 이민자 갈등이 첨예한 곳으로 진단됩니다. 벨기에 국경에 인접한 도시라는 지정학적 입지로 인해 사회 시스템 사각지대에 노출된 약자성과 불안정성이 더해져 있기도 하죠. 영화는 정체성 갈등을 겪는 이민자와 생계에 절실한 저소득층의, 때론 피의자로서 때론 피해자로서 겪게 될 위험을 선입견 없이 건조하게 수집합니다.

 

영화를 지배하는 '불안한 붉은 화염'과 '창백한 푸른 경찰' 사이에 놓인 루베는 단순히 한 도시의 위기를 넘어 프랑스 국기의 색감처럼 읽히기도 하는데요. 그 사이에서 일련의 갈등을 중재하는 다우트 서장(로시디 젬 분)의 걱정과 다정을 노란색의 온화함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때문에 육중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작품의 톤은 상당히 서정적인 맛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산문시 같은 느낌마저 전달될 정도죠. 영화의 뒤를 떠받치는 클래식 음악 또한 비장하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효과적으로 보조합니다.

 

 

 

 

 

 

# 2.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적 없는 어두운 밤. 폭력적인 차량 화재 현장은 도시를 소개하는 이미지입니다. 눈앞의 화재를 두고 '별일 없다'는 인사말은 여느 소개보다 서늘하죠.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데요. 크리스마스에조차 평화로울 수 없는 도시의 우울을 대비시키는 장치로 이해됩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기념일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후 벌어지게 될 사건들 역시 특정한 개인의 타락이나 위기라기보다는 공동체와 관계의 위기에 근거하고 있음을 느슨하게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반부는 방화, 자동차 보험 사기, 지하철 강간, 혼혈 2세의 정체성 불안 등이 쭉 나열되는데요. 각각의 사건이 엄혹한 현실이라면 다우트 서장의 가족은 현상의 기저에 깔린 내부인의 갈등을 은유합니다. 적응에 실패하고 체포된 조카, 적응을 포기하고 알제리로 돌아간 가족, 적응을 위해 홀로 분투하는 다우트는 이민자들이 벌이는 범죄와 별개로 그들 역시 치열하게 투쟁하고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고 해체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비극은, 비단 이민자뿐 아니라 클로드와 마리로 대표되는 궁핍한 현지인 또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죠.

중반부터 장르는 심문 드라마로 급격히 변모합니다. 노인 루세트 살인 사건의 용의자 클로드(레아 세두 분), 마리(사라 포어스티어 분)에 대한 심문이죠. 두 사람의 혼란스러운 증언과 고통스러운 심문이 후반부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때문에 관객 역시 사건의 전말과 관련된 반전 스릴러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만, 보다 보면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지향하는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라쇼몽과 같은 미스터리는 더더욱 아니구요. 오히려 중간중간 등장하는 경찰들의 '그래봐야 아무것도 달라질 것 없다'는 말이 보다 핵심에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조리한 현실 안에서 개인의 고통과 혼란은 그들의 절실함과 별개로 부질없는 짓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 3.

 

감독은 루베에서의 삶을 경마에 비유합니다. 경마장에는 다양한 출신의 말이 도열해 있습니다. 처음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듯 보이지만 결말은 제각각입니다. 누군가는 패배하고 누군가는 승리하겠지만 그래봐야 달리는 목적은 결국 돈입니다. 각각의 말들은 품종과 환경과 관리와 레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경마장의 말이라는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루베의 사람들 역시 각자의 기질과 배경과 환경과 기회에 따라 탈선하기도 하고, 탈선하는 누군가에 의해 공격받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살아남기 위한 푼돈을 차지하기 위해 보험을 사기치고 빈집을 털며 투쟁할 뿐입니다. 다우트 서장은 말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도박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도시의 사람들을 범죄 이력이나 문제 요인으로 여기지 않는 인격임을 은유하고, 감독의 페르소나인 다우트의 인격은 곧 감독의 생각이기도 하죠.

 

클로드와 마리의 끔찍한 범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유년기에 막다른 길에 막혔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탈선과 별개로 각자의 '말'들은 막다른 길을 달아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을 뿐입니다. 그 발버둥이 하등 부질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구치소에 갇힌 용의자에게 다우트가 건네는 "나도 인생은 마법 같아야 한다고 믿어요. 당신의 어린 시절처럼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라는 말은, 루베의 미래란 사람들의 마법 같은 어린 시절을 현실로 이어나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작품의 주제의식입니다.

 

... 다만 여기까진 최대한 호의적으로 이해한 것이구요. 전반적으로 크게 어수선한 작품이긴 합니다. 루베를 제대로 지적하는 것도 아니구요, 수렁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순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구요, 다우트에 투영된 주제의식에 힘을 실은 것도 아닙니다. 세 마리 토끼를 쫓다 모조리 놓쳐버린 이도저도 아닌 구성은, 적잖은 관객으로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힘들다는 평을 부르고 말았죠. 로시디 젬의 진중한 연기와 별개로 다우트는 감당하지 못할 설정을 짊어지고 있고, 레아 세두와 사라 포어스티어의 폭발적인 연기와 별개로 두 캐릭터 모두 과도하게 납작해 시시합니다. 도입의 방화 사건이라거나, 혼혈 소녀의 갈등, 지하철 강간 사건 따위의 서브플롯의 활용 역시 지나치게 편의적입니다.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 <오 머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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