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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스무고개 _ 더 나은 선택, 제니퍼 팡 감독

그냥_ 2023. 1.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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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더쳐스 캐리는 누구인가

 

 

 

 

 

 

 

 

제니퍼 팡 감독,

『더 나은 선택 (어드벤테이저스) :: Advantageous입니다.

 

 

 

 

 

# 1.

 

어린 딸과 친구들의 스무고개로 시작됩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 몇 가지만 빼고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 크루아상과 크랩애플을 먹는 사람. 협력을 해서는 안됩니다. 한 명만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커닝하면 승자는 없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며 수수께끼의 인물 더쳐스 캐리에 대해 고민하던 소녀들의 걸음 맞은편엔 붉은 드레스의 엄마, 아니 엄마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 '그웬'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영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반갑게 손 흔드는 이 여자에 대한 스무고개인 것이죠.

 

작품 초반 경제적 문제에 봉착한 그웬은 전화 속 드래이크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데요. 그의 대답이 수상하다 여긴 그웬은 인간이 맞냐 질문하지만 사실 그가 인간인지 AI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다시 등장하지도 않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드래이크가 되묻는 [인간의 정의定義]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질문입니다. 감독은 관객이 '그웬 코'라는 인물뿐 아니라 그녀에 비추어 인간의 정의와 그런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의 가치 따위에 대해 복합적으로 고민하길 기대합니다.

 

 

 

 

 

 

# 2.

 

녹음이 가득한 정원입니다. 살펴볼까요. 사람은 없습니다. 정적이고 차분합니다. 빼곡한 나무들이 기하학적 패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상성을 벗어난 듯한 바이올린 독주도 들리네요. 대체로 이런 뉘앙스의 공간은 관념적인 영역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며 점검하면 적중률이 썩 좋습니다. 정원엔 그녀와 그녀의 딸뿐입니다. 딸은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가족관을 이야기하며 딸과 엄마의 관계를 은은하게 설명합니다.

 

실직하게 된 그웬은 난자를 판매할 것을 제안받습니다. 딸 몰래 통화하는 것을 노숙 중인 소녀가 엿듣더니 승낙해라 말합니다. 소녀는 부양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의 딸을 은유합니다. 즉 그녀가 느끼는 책임감 혹은 부담감이 투영된 존재인 것이죠. 고민 끝에 소녀에게 다시 돌아간 그웬이 봉투와 음료를 두는 장면은 일련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 나름의 대답인 셈입니다.

 

다시 정원으로 돌아갑니다. 딸은 이렇게 힘겨운 세상에 자신을 왜 낳았냐 묻습니다. '너를 낳으면 내 인생이...'라는 말을 가로챈 딸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라 말하지만, 그웬은 '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라며 말을 완성합니다. 그웬이라는 인물이 가진 모성에 대한 보다 확고한 대답이라 할 수 있겠군요.

 

 

 

 

 

 

# 3.

 

부엌입니다. 일상적인 순간에 들려오는 아동 성매매라는 끔찍한 라디오는 엄마로서 딸 쥴스를 성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보호해야 한다는 상시적 부담을 은유합니다. 그웬은 쥴스를 위한 소소한 요리를 하고 딸은 새로운 스무고개, '어디서 난 레시피인가'를 질문합니다. 그웬은 릴리로부터 배웠다 답합니다. 릴리는 그웬의 오래전 친구이자 전 남편 '한'의 아내인데요. 레시피는 먹고사는 방식이자, 물려받고 전달되는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묘하게 미니멀한 고급 레스토랑입니다. 이곳에서의 관계는 다분히 경쟁적입니다. 직업인으로서의 경쟁에 대한 부담이 발견되는 위로 미국 사회에서의 이민자, 특히 동양인 이민자로서의 차별이 취조라도 당하는 듯한 위압적인 추궁들로 구체화됩니다. 노골적인 형태의 인종적 위계에 대한 묘사도 발견되구요.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종속적인 여성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일부 발견됩니다. 난자를 파는 전화를 엿듣던 노숙자 소녀가 경쟁이 도태됨에 따라 남겨지게 될 가상의 딸을 은유하듯, 레스토랑의 왼편에 앉아 말 한마디 못하는 어딘가 아픈 듯한 아시안 여성은 그녀가 두려워하는 경쟁에서 도태된 가상의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

 

다시 숲의 정원입니다. 이번엔 그웬이 그녀의 엄마와 전화합니다. 이번 스무고개의 질문은 '돈이 얼마나 필요하니?'라는 것이군요. 대답은 4만 달러. 본인의 버거움을 드러내는 연약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개념 혹은 아버지와 같은 코드들은 여성이자 이민자이자 직업인이자 홀어머니이기도 한 그웬이 극복하고 싶어 하던 고전적 규율 따위들을 폭넓게 상징입니다. 가면을 쓴 어린 소녀는 붉은 힐 대신 갈색 단화를 갈아 신으며 차가운 가면을 벗습니다. 실망한 표정을 가리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다소 난해합니다만 저는 어린 시절의 그웬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가면을 쓰고 규율의 굴레를 벗어나려 했지만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말았다는 것이죠.

 

이처럼 중반부까지의 전개란 오프닝에서 예고한 대로의 스무고개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정원을 넘나드는 동안 그녀의 인식, 관계, 책임, 부담, 뿌리, 감정, 가족, 인종, 여성, 이민자, 정체성, 계급 등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질문들과 그에 대한 조심스럽고 섬세한 대답들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서사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죠.

 

 

 

 



# 5.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그녀는 결국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대단히 역설적인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의식이 이전되는 것처럼 홍보되지만 사실은 기억을 새로운 그릇에 복제한 후 본래 본인은 사망하는 상품이었으니까요. 즉, 그녀는 딸의 미래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관념적으로 본다면 마냥 죽는다기보다는 [분화된다]는 개념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하게 됩니다. 기억의 총채로서의 '그웬 2.0'. 그녀가 가진 책임감과 행복의 산물이자 정서적 흔적으로서의 딸 '쥴스'. 관계로서의 '한'과 '릴리'의 가족 등으로 말이죠. 후반부는 앞서 나열된 그녀의 수많은 대답들을 대변하는 분화된 존재들이, 주인공이 건너야 했던 모든 불안과 눈물에 대한 책임을 놓고 갈등하다 결국 화해하는 과정으로 귀결됩니다.

 

끝으로 이젠 더 이상 그웬이 존재하지 않는 정원에서 다시 모입니다. 숲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뒤로 바이올린 선율이 흐릅니다. 모여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그웬이라는 인물의 편린으로서의 음계音階입니다. 한 인간이 매 순간 선택하게 될 치열한 대답들이 홀로 연주되는 것이 생生이라는 진단은 담백하면서도 묵직합니다. 영화의 시작, '그웬 코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적 결론이란 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입체적인 독주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6.

 

한 인간에 대한 담담하지만 깊이 있는 탐구를 이토록 두텁게 구현했다는 것은 분명 인상적입니다. 엄마라는 관계, 이민자라는 입장, 나이라는 한계, 여성이라는 정체성 중 특정한 하나를 짚어 인물을 꼬라박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뚝심은 인정받아도 좋은 거겠죠. 그것을 한 인간에 대한 드라마를 넘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로 확장하고, 다시 인간을 위한 사회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반문하고 지적하는 흐름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알레고리들을 다루는 방식들이 상당히 불친절해 난해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클라이맥스의 시술 장면에서 머리에서 뻗어나가는 무수히 많은 튜브들처럼 인물의 입체성이 곧 작품의 정체성인 탓에 하나하나 짚느라 산만한 맛도 있고, 이를 적절히 완화하기 위한 플롯의 조력이 충분한가라는 데에도 의문은 있습니다. 후반부 고찰의 밀도가 떨어지며 영화가 사그라드는 듯한 느낌도 지적할 수 있어 보이구요, 미니멀하면서도 미학적인 미장센 속을 배회하는 그웬 역의 '재클린 킴'의 감정 표현이 주 동력인 특성 탓에, 그녀가 사라진 후반부가 더 지루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제니퍼 팡 감독, <더 나은 선택 (어드벤테이저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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