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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혼자 강한 사람은 없단다 _ 룸,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그냥_ 2022. 7.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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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스토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화자의 시점과 작가의 관점, 이를 통할하는 서술의 방식이 때론 더 많은 것들을 말하기도 하죠. 이 영화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토리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납치 범죄극에 불과하지만 해결을 앞당겨 사건 이후의 시간에 30분을 더 투자하겠다는 사소한 선택에 힘입어 전혀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의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룸 :: Room』입니다.

 

 

 

 

 

# 1.

 

보통의 납치 범죄극은 납치된 주인공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는가에 대한 묘사와, 이를 겪는 동안 주인공이 느낄 불안과 공포, 심리적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감행하게 되는 탈출의 스펙터클로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는 어드벤처가 될 수도 있고, 악당에게 되갚는 복수극이 될 수도 있고, 탈출한 주인공이 세상에 윽박지르는 고발극이 될 수도, 탈출에 실패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 절망을 보여주며 호러를 만들 수도 있을 테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작품의 성패란 탈출하는 순간의 파괴력에 종속되어 있음에 분명합니다.

 

영화 <룸>은 납치와 탈출이라는 아이템의 장르적 파괴력을 과감히 포기합니다. 감금당한 조이가 닉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생략한다거나, 가스 라이팅에 대한 절제된 묘사, 조이의 저항을 플래시 백으로 인서트 하지 않는 등은 작품을 통제하고 있는 감독의 강단을 엿보게 하죠. 악마라고 밖엔 달리 이야기할 수 없을 닉의 디자인과 체포되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매우 소극적이라는 점은 상징적입니다.

 

의도적으로 건조하게 덜어낸 티가 역력한 묘사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편집입니다. 감독은 탈출을 작품 정중앙에 배치합니다. 클라이맥스가 아닌 분기점에 불과하죠. 레니 애브라함슨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납치라는 폭력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 안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 드라마입니다.

 

 

 

 

 

 

# 2.

 

영화는 룸에 갇힌 전반부와 룸을 탈출한 후반부로 나눠볼 수 있을 텐데요. 각 부의 결말만 놓고 보자면 사실 다른 위상에서 벌어지는 동일한 구조의 반복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룸'에 있던 모자가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전반부의 룸은 닉에 의해 감금된 창고입니다. 물리적인 감옥으로서 '고립'을 의미하죠. 협소한 공간의 크기는 곧 인식의 크기이자 삶의 크기로 연결됩니다. 창고에는 두 개의 창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천장의 창이구요, 다른 하나는 텔레비전 화면이죠. 창 밖은 Real이고 텔레비전은 Fake여야 합니다만, 고립된 잭에겐 천장의 창과 텔레비전 모두 Fake입니다. 소년에게 Real은 좁은 방 안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 뿐이었고 그만큼 세계관과 인생관은 왜곡되어 갑니다.

 

후반부의 룸은 7년 전 그대로 남아있는 조이의 방입니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감옥으로서 '단절'을 의미하죠. 가장 달리기가 빨랐던 과거의 자신은 제자리에 남겨둔 채로 7년 치만큼 앞서 달리고 있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좌절하는 대목은 친절합니다. 장소 역시 병원이라는 완충 영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집 안으로 통제되고 있는데요. 두 주인공 모두 물리적 감옥에서는 탈출했지만 정신적인 감옥에서까지 벗어나는 데에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간 연출을 통해 표현합니다. 후반부의 방에도 창들은 존재합니다. 훨씬 크고, 많고, 손에 닿으며, 다양한 것들을 비추고 있지만 창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함부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3.

 

이처럼 창은 기본적으로 '분리'를 의미하지만 작품의 전개에 따라 '관계'와 '용기'로 승화됩니다. 도입에서 평생을 룸에서 자란 잭에게 엄마 조이가 안과 밖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탈출을 위한 계획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습니다만, 안과 밖이라는 개념을 관객에게 짚어 주고자 한다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창은 바깥을 바라보는 창구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엄마는 아들을, 아들은 엄마를 바라보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창의 이미지는 탈출에 앞서 둘둘 감긴 카펫 속에서 마지막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는 구멍으로 연결됩니다. 잭이 경찰차 안에서 구출된 조이를 향해 두드리는 것도 창이구요. 후반부 병원에서 돌아온 조이가 친구와 놀고 있는 잭과 재회하며 열어젖히는 공간 역시 창이었죠. 단절을 의미하는 물리적인 '벽'과 대칭되는 정신적인 '창'은 서로에 대한 용기와 사랑. 사건으로서만 보자면 모자가 함께 룸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만, 정서적으로 보자면 창 안팎에 있는 모자가 서로를 끄집어내고 끌어당기는 구원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서로에게 힘을 주는 거야. 혼자 강한 사람은 없단다." 라는 대사는 과연 작품의 메시지를 단숨에 정의하는 명대사라 할 수 있겠죠.

 

 

 

 

 

 

# 4.

 

각각 전후반을 지배하는 물리적인 방과 정신적인 방의 대조, 변모하는 창의 의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만 장르적 재미 역시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전반은 사건의 폭력성만으로도 충분히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듯 부드럽게 전개됩니다만, 후반 들어 잭의 감각을 묘사하는 연출은 확실히 인상적입니다. 거의 1인칭에 가까울 정도의 거리감으로 몇몇 시퀀스를 이끌고 있음에도 위화감은 살리되 불편함을 통제하는 솜씨는 능숙합니다. 섬세한 디렉팅이 빛을 발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눈부십니다.

 

전반부 엄마의 응원을 상징하는 '이빨'을, 후반부 아들의 응원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으로 받아내는 구성 등도 인상적입니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입니다만, 알게 모르게 상당히 많은 문학적 은유가 숨어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 <헤어질 결심>을 이야기하며 상당히 대칭적이고 반복적이고 자기실현적인 작품이라 말씀드렸었는데요. 결은 다르지만 이 작품에서 역시 비슷한 재미를 찾아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살짜리 여자 아이의 시간과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의 시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방식의 의미, 병원에서 깨어난 아이의 무릎에 난 상처와 반창고, 친구와 개의 의미 정도의 키워드를 적당히 남겨두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죠.

 

 

 

 

 

 

# 5.

 

드라마는 연기빨이라는 말처럼 연기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전반부는 아들을 중심으로, 후반부는 엄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답게 표현 역시 구성과 연동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룸 안에 있는 동안은 잭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탓인지는 몰라도 브리 라슨의 연기는 기대보다는 덜했다는 생각입니다. 7년간 갇혀 있던 인물이라는 설정을 감안할 때 해석이 플랫하다는 인상이었달까요. 다만, 탈출 이후부터 극의 주도권을 틀어쥐며 격정적인 연기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합니다. 구설과 별개로 연기력만큼은 역시 출중한 배우죠.

 

잭 역의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는 놀랍습니다. 전후반 가릴 것 없이 어쩌면 이렇게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아역들은 캐릭터보다는 상황과 감정을 연기하기 마련이거든요. '엄마가 아파. 그러면 슬프겠지? 그 생각하면서 울어봐.' 라는 식이죠. 반면 제이콥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요소요소에서 선명히 주고 있습니다. 흔한 경험이 아닌 것이죠.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의 성취에는 아역의 연기에 상당 부분 빚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괜히 유수의 평론가들이 어린 배우를 짚어 미래가 기대된다 하는 것이 아니었달까요.

 

 

 

 

 

 

# 6.

 

막판 언론 인터뷰는 조이를 정서적으로 흔들려는 목적 하나만 보고 억지로 넣은 듯한 느낌은 있습니다. 술술 넘어가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이물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만, 뭐. 이 정도를 가지고 트집 잡을 완성도의 작품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뚝심 있게 이끌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배려와 관객에 대한 배려에 모두 충실합니다. 특별하지 못한 지점은 있을지언정 크게 부족한 점은 발견하기 힘든, 균형이 뛰어난 수작이라 평가합니다.

 

앤딩은 훌륭합니다. 작품이 가진 드라마적 깊이를 완성합니다. 극복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 제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 한들 잊으려 하거나 외면하려 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존재했음을 받아들이고 안녕이라 말하고 돌아서는 용기라는 결말은 감동적입니다. 누군가의 처참한 경험에 대한 장르적 소비 이상의 드라마적 가치를 확보하는 작품의 정석적인 마무리랄까요. 레니 애브라함슨 감독, <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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