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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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개봉 36

비겁한 감독, 비열한 영화 _ 100세 예술가,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 0. '카르멘 에레라'가 고령에서야 빛을 발하는 건지, 고령이어서 빛을 발하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감독은 그녀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감독은 그녀가 대단한 예술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채 이 대단한 예술가가 살아온 과정과 노쇠한 모습을 대조적으로 담아내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가 아닌 . 감독의 눈에 비친 예술가 '카르멘 에레라'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녀가 평생 표현하고자 했던 '질서의 예술'이 아니라 100살이라는 나이입니다.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100세 예술가 :: The 100 Years Show』 입니다. # 1. 카르멘 에레라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빈곤하다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

Documentary/Art 2019.09.08

꽃을 찢고 질문하다 _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독특합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부여잡습니다.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설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매력을 지키되 따로 놀지 않습니다. 완성도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을 다른 영화에서 얻기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요르고스 탄티모스'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할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요르고스 탄티모스' 감독, 『더 랍스터 :: The Lobster』입니다. # 1. 기괴하고 불편합니다.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뜁니다. 서사에 깊은 개연성..

Film/Romance 2019.09.03

무지개는 이미 아이의 손에 _ 레인보우, 나게쉬 꾸꾸누르 감독

# 0. 너의 성지엔 언제나 네 개의 등이 빛나네. 이제 내가 다섯 번째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도다. 다섯 번째 등을 밝히러 내가 왔도다. 빨간 가운의 신이여. 신이시여, 신드와 세환의 친구이자 왕이여. 내 안에 숨 쉬는 신이시여, 영광 받으소서. '나게쉬 꾸꾸누르' 감독, 『레인보우 :: Rainbow, Dhanak』입니다. # 1. 가난으로 눈을 잃은 소년과, 동생의 눈을 뜨게 해 주고픈 누나가 무지개를 찾아 나서는 영화입니다. 런타임 내내 화면 너머 기분 좋은 순풍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에 빠져듭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와 같은 여유롭고 시원한 순풍이 아니라, 추운 겨울 마음까지 녹여줄 것만 같은 따뜻한 훈풍 말이죠. 기존의 인도하면 떠오를 법한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비루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

Film/Drama 2019.07.10

독일의 용기, 독일의 자신감 _ 그가 돌아왔다, 데이비드 우넨트 감독

# 0.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시종일관 진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언변에 감화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한다 소리치기도 합니다. 독일 영화에서, 그것도 군복을 입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의 히틀러에게 말이죠. 아시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다수의 유럽 국가에선 나치식 경례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만, 히틀러에겐 알 바가 아닙니다. 경례를 하지 않는 2014년의 요즘 사람들을 예의 없다고 불평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담은 간결한 오프닝으로 감독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금기에 거침없이 도전하겠노라 선언합니다. 영화 속 히틀러는 원래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서 최대한 선의로 해석합니다. 과격한 표현은 메서드 연기로 시대착오적 언동은 풍자로 받아들여집니다. 정신..

Film/Comedy 2019.04.10

역설로 빚은 잔혹동화 _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 0. 빈방이 있습니다. 각진 빈방을 노려보던 감독은 창문과 문이 거꾸로 매달리게끔 방을 뒤집습니다. 침대를 거꾸로 천장에 붙입니다. 협탁과 수납장 역시 천장에 뒤집어 붙입니다. 책상도 의자도 붙입니다. 이불과 배게, 카펫, 거울, 그 외 사소한 장식 모두 빠짐없이 거꾸로 매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앨리스를 방에 들여보냅니다. 눈 앞에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보입니다. 어지럽네요. 다행히 감독의 생각을 이해한 성실한 주인공은 스스로의 몸도 천장에 거꾸로 매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나.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잔인하리만치 똑바르게 보이지 뭐예요. '안국진'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Earnestland』 입니다. # 1. 모든 것을 뒤집어 세상을 적나라하게 비추려 드는 ..

Film/Drama 2018.12.10

밀려나 버린 것들, 지워져 버린 것들 _ 이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전쟁이 할퀴고 간 참혹한 상처. 원래의 길에서 밀려나 버린 것들, 지워져 버린 것들. 그들이 만들어 낸 공백입니다. 세상은 정적이고 엄숙하고 삭막하며 육중합니다. 색과 온기를 잃습니다. 사람들은 얼굴만 겨우 보일 정도로 밑바닥으로 끝으로 밀려납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이다 :: Ida』 입니다. # 1. 어디서 뭘 하는지 원망스러운 신을 모시는 수도원입니다. 대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귀퉁이로 밀려나는 동안 빈자리는 건조하고 차가운 여백이 차지합니다. 카메라는 픽스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은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목소리는 앵글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생동감은 극단적으로 제한됩니다. 관객은 메마르게 정지된 시간을 관찰하게 됩니다. # 2. '안나'는 정식 수도자가 될 서원식..

Film/Drama 2018.11.22